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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캠핑,기타자료/수도권 명산 30선

(15) 청계산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1. 8. 19.

 

<수도권 명산 30選>높지도 깊지도 않은 산세… 反骨 선비들도 품안에 넉넉히

(15) 청계산

장마가 그친 지 오래지만 올해는 여름 내 장마 같다. '긴-비(長雨)'로 산행을 하는 이들도 훨씬 줄었다. 요즘 근교산을 다녀보면 등산로들이 적지 않이 물길에 휩쓸린 것을 본다. 계속되는 비에 주변의 장사하는 이들이 울상이지만 나무들도 축 처져 지친 모습이다. 모처럼 반짝 갠 18일 청계산을 찾았을 때 휴식터에 앉아 쉬는 등산객들의 화제도 비 얘기다. 비 때문에 모처럼 산행을 나왔다는 초로의 여성은 "여름마다 이러면 어쩔까? 작물들이 녹아날 테니…"하고 한숨을 짓는다.

↑ 얼마만인가? 모처럼 비가 그친 18일 청계산 망경대에 서니 서울대공원 등 과천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청계산은 산세 자체는 크지 않지만 사방으로 전망이 좋다. 김낙중기자 sanjoong@munhwa.com

청계산(淸溪山·615m)은 서울 서초구, 경기 과천·성남·의왕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네 도시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도 다양하고 오르는 데 부담이 없어 주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연간 등반객수가 500여 만명으로 휴일에는 6만명 이상이 이용한다. 전체적으로 육산(肉山)이지만 과천 쪽에서 보면 정상인 망경대가 제법 날카로워 골산(骨山)으로 비치기도 한다.

네 도시를 경계로 하다 보니 청계산을 종주하다 보면 흥미로운 차이를 보게 된다. 서초구에서 등산을 시작하면 등산로며 휴식, 안전시설들이 잘돼 있다. 그러다가 매봉을 지나 과천과 성남을 가르는 혈읍재쯤 가면 마치 고속도로를 달려오다 비포장도로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예산이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서초구나 과천 쪽은 등산로를 가꾼 흔적이 나지만 성남과 의왕 쪽은 그만 못해서일 것 같다.

청계산을 찾을 때면 의아한 게 하나 있다. 나지막하고 산이 깊지도 않으며, 솔직히 그다지 볼품 없는 산인 청계산에 의외로 조선 초에 유명한 선비 여럿이 몸을 은거했기 때문이다.

고려 말 문신 송산(松山) 조윤(趙胤·1351~1425)은 조선 초 이태조가 벼슬을 내렸지만 끝내 사양하고 청계산으로 숨었다. 그는 청계산의 제 1봉인 망경대(望京臺)에 자주 올라 옛 도읍 개경(開京·개성)을 바라보며 슬피 울다가 그 아래 마왕굴 샘물로 갈증을 풀었다고 한다. 원래는 '萬景臺'였으나 이후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또 고려 말 삼은(三隱) 중 한 명인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과 변계량(卞季良·1369~1430)도 이 산에서 은거했다고 전한다.

청계산의 국사봉(國思峰·542m) 역시 이들이 고려를 사모해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 국사봉이란 이름의 봉우리가 많은데, 거의 대부분 나라를 대표하는 스님을 일컫는 국사(國師)를 쓰는 것과 다르다.

조선조에도 유교적 이상사회를 꿈꾸던 정여창(鄭汝昌·1450~1504)이 연산군무오사화에 연루됐으나 청계산 하늘샘에 은거하면서 두 번이나 목숨을 건졌다고 전한다. 이수봉(貳壽峰·545m)은 두 번 목숨을 건졌다 해서 후학인 정구(鄭逑)가 붙였다는 지명이다. 혈읍재(血泣-)는 바로 이상사회가 좌절된 정여창이 피눈물을 흘리며 넘었다는 고개다. 왜 하필 청계산에 숨어 들었을까. 찾지도 못할 만큼 깊지도 않고 한양과의 거리도 지척인데 말이다. 그 '거리'가 뭔가 얘기하지 않을까?

청계산은 시내가 맑아 청계(淸溪)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본다. 과천읍지(1899)에는 청룡산(靑龍山)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과천 관아의 진산을 관악산으로 볼 때 그 왼편 청계산이 풍수지리의 '좌청룡'이었고, 오른편 수리산이 백호산(白虎山)으로 불렸던 데서 연유한다.

청계산은 의왕 쪽에서는 원터를 들입목으로 해서 국사봉으로, 성남에서는 옛골에서 이수봉으로, 과천에선 서울대공원에서 이수봉으로 오른다. 서초구 쪽에서 오르자면 양재역에서 버스를 타고 트럭터미널이나 개나리골, 청계골, 원터골을 들입목으로 주로 삼는다. 이날은 트럭터미널 부근 개나리골에서 올랐다. 이쪽은 현재 화장장 공사가 한창이어서 어수선하다. 이 코스는 다른 들입목이 초입부터 계단으로 시작하는 것과 달리 완만하고 솔밭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30분 정도 소요되는 데 맨발로 걸을 수 있도록 황토가 깔려 있다. 첫 봉우리인 옥녀봉(376m)을 앞두고 다소 경사가 있는 계단길과 돌길이 나온다. 봉우리가 예쁜 여성처럼 생겨 이름 지었다고 한다.

평이한 길들이 이어지다 원터고개부터 나무계단길이 나온다. 매봉(582m) 부근까지 계단수는 1400여 개나 된다. 계단길을 싫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정신을 집중하고 한발 한발 오르면 마음이 편해진다. 이 계단길은 가수 이효리가 'S라인'을 가꾼 길이라 해서 '효리 코스'로 불리는데, 이후에도 요즘 잘나가는 엑스파이브(X-5) 등 여러 아이돌 그룹들이 데뷔하기 전에 여기서 몸을 만들었다.

조금 더 오르다 보면 매바위 못미처 돌문바위가 나오는데, 이 돌문을 다섯 바퀴 돌며 소원을 빌면 바라는 게 이뤄진단다. 그 다음에 만나는 매봉은 좁은 만경대보다 사실상 정상 대접을 받는다. 여기에서 혈읍재를 지나 10여 분 가다 보면 석기봉과 망경대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다소 가파른 바윗길을 오르면 바로 망경대가 나온다. 바위 위에 서면 서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요즘은 이수봉과 국사봉을 거쳐 수원 광교산까지 종주산행을 하는 이들도 많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수도권 명산 30選>신라때 창건說 청계사 우담바라꽃 피어 화제

여기, 아세요 ?

문화일보 | 엄주엽기자 | 입력 2011.08.19 14:11 | 수정 2011.08.19 15:01 |

청계산은 유서 깊은 사찰인 청계사를 품고 있다. 의왕시 청계동 청계산 남쪽 자락에 있는 청계사(사진)는 봉은사의 사적을 기록한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에 신라 때 창건됐다는 기록이 있지만 구체적 근거자료는 없다. 하지만 사찰 경내의 석등과 부도 일부는 신라 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284년(충렬왕 10년) 당대의 세력가였던 평양부원군 조인규(趙仁規·1227~1308)가 사재를 들여 중창하면서 청계사가 크게 부각됐다. 경내에는 국가보물 제11호인 동종과 경기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135호인 목판이 있다. 조선 연산군이 도성 내에 있는 사찰을 폐쇄했을 때 봉은사를 대신해 선종의 본산으로 정해졌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또 청계사는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 선사의 출가지로 경허 선사의 선맥을 이은 만공, 금오, 월산 선사의 체취가 남아있는 사찰이다.

청계사는 2000년 10월 극락보전의 아미타삼존불 중 관음보살상의 왼쪽 눈썹 주변에 우담바라꽃이 피어 큰 화제가 됐었다. 우담바라는 여래나 전륜성왕이 나타나는, 3000년에 한 번 핀다는 전설의 꽃이다. 당시 1㎝ 크기의 꽃이 21송이가 피었다. 육안으로 관찰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한 줄기가 버섯 모양으로 솟아올랐다. 청계사는 108일 동안 전국의 불자들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법회를 열었고 매일 5000여 명의 불자들이 다녀가는 바람에 불자들이 줄을 서 1㎞의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곤충학자들은 청계사의 우담바라는 풀잠자리의 알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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