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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캠핑,기타자료/수도권 명산 30선

(12) 북한산 ‘숨은벽’ 능선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1. 8. 2.

 

<수도권 명산 30選>거대한 암봉 깎아지른 벼랑 꼭꼭 숨어 있었네

(12) 북한산 ‘숨은벽’ 능선

문화일보 | 엄주엽기자 | 입력 2011.07.29 14:21 | 

 

병자호란 때 척화 항전을 주장하던 김상헌이 청나라로 인질로 잡혀가며 지었다는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에서 보듯, 옛적부터 한양의 상징은 삼각산과 한강이었다. 북한산의 원래 지명인 삼각산(三角山)은 한양에서 바라볼 때 뾰족한 세 개의 바위 봉우리인 백운대·만경대·인수봉에서 나온 이름이다.

↑ 지난 25일 숨은벽능선의 전망대바위에서 바라본 숨은벽 슬랩(가운데)이 왼쪽 인수봉 설교벽과 오른쪽 백운대와 함께 운무에 가려 있다. 숨은벽 슬랩은 여러 명이 장비를 갖추고 올라야 한다. 김낙중기자 sanjoong@munhwa.com

어릴적 자란 인천에서도 세 봉우리가 보였는데 어른들이 '저것이 서울의 삼각산이다' 했던 기억이 있으니, 수도 한양의 상징이 될 법하다. 그런데 백운대와 인수봉의 뒤태는 고양 쪽에서 올라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왼쪽 인수봉과 오른쪽 백운대 사이에 그 너머에서는 볼 수 없는 칼날 같은 봉우리가 하나 더 나타나는데 그것이 '숨은벽'(정상 768m)이다. 지금도 공식 지도에는 '무명'이다. 서울 도심쪽뿐 아니라 북한산의 동·남·서쪽에서 보이지 않게 숨어 있는 봉우리라 해서 '숨은벽'이라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봉(峰)'이 아니라 '벽(壁)'이라 이름 붙은 것도 까닭이 있다.

대개 봉우리 이름은 그 유래나 연원을 정확히 모르지만, 숨은벽은 그곳의 코스를 개척한 사람들이 지었다. 옛 자료나 신문을 찾아봐도 '숨은벽'이란 이름은 아예 없다. 과거 삼각산 하면 '바위꾼'(클라이머)'들은 인수봉을, '뚜벅이(하이커)'들은 백운대를 최고로 쳤지 그 사이 무명의 봉우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1973년 고려대OB산악회의 백경호씨를 비롯한 동료들이 한달여에 걸쳐 이 봉우리의 루트를 처음 개척하고 이름을 숨은벽으로 붙였다. 루트를 찾은 뒤 몹시 기뻤는지, 백씨가 노래까지 지었으니 그 노래가 지금도 산악인들 사이에 애송되는 '숨은벽 찬가'다.

'바위야 기다려라 나의 손길을/ 영원히 변치 않을 산사람 혼을/ 울리는 메아리에 정을 엮어서/ 젊음을 노래하세 숨은벽에서.'

'봉'이 아니라 '벽'이라 한 것은 처음 루트를 개척한 이들이 암벽(岩壁)을 타는 클라이머였기 때문이다. 걸어서 오를 수 있었다면 진즉에 '숨은봉'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생겼을 터다. 근래에는 이곳이 등산학교들의 리지교육 코스로 흔히 이용되고 찾는 사람도 하도 많다보니 숨은벽이 아니라 '들킨벽'이란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숨은벽에서 흘러내려 효자동과 사기막골로 떨어지는 능선이 숨은벽능선이다.

인수봉(810m)이나 백운대(837m)도 뒤태는 분위기가 다르고 이름도 달리 불린다. 백운대 쪽에서 인수봉은 대포알을 세워놓은 듯 깔끔하지만 뒤에서 보면 용의 등처럼 울통불퉁한 암릉으로, 이를 '설교벽(雪郊壁)'이라 부른다. 북향이어서 눈이 가장 먼저 쌓이고 가장 늦게 녹아 '눈 쌓인 성 밖의 벽'이란 의미다. 위압감을 주는 백운대도 뒤에서는 녹록해 보이는데, 죽 아래로 연결된 능선이 이름도 예쁜 '파랑새능선'이다.

지난 25일 끄물끄물한 날씨 속에 효자2동(밤골입구)을 들입목으로 숨은벽을 찾았다. 불광동이나 연신내, 구파발역에서 704번이나 34번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정류장을 지나 효자비, 밤골입구, 사기막골 정류장 중 한 곳에서 내려 들입목을 삼으면 된다.

들입목에서 20~30분 정도를 오르다보면 삼거리 안부 갈림길을 만나는데 여기서 왼편길로 내려서서 조금 더 가면 밤골공원지킴터와 백운대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온다. 왼편이 밤골계곡을 건너 본격적으로 숨은벽능선을 만나는 코스다. 능선을 타기 직전에 된비알 너덜길을 만난다. 본격 암반 능선이 시작되는 해골바위를 거쳐 전망대바위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이면서 인수봉과 숨은벽, 백운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부터도 숨은벽까지 100여m의 암릉지대가 이어진다. 전망이야 좋지만 오른쪽으로 깎아지른 벼랑이라 특히 요즘처럼 비가 자주 올 때는 주의해야 한다.

마침내 거대한 벽처럼 가로막는 45m 길이의 대슬랩이 눈앞에 펼쳐진다. 빨래판 슬랩이라고도 부른다. 리지를 하자면 장비를 갖추고 팀을 이뤄 올라야 한다. 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이 지키고 있어 무작정 오를 수 없다. 이곳에서 바위에 붙어 오르는 이들을 보면 '빨리 등산학교에 등록해야지' 하는 생각이 굴뚝같다.

하지만 굳이 슬랩을 밟지 않더라도 거대한 암봉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설교벽 암릉과 백운대 암릉이 가파르게 밑으로 흘러내리며 숨은벽과 협곡을 이룬 모습은 장관 그 자체다. 대슬랩 앞에서 오른쪽 밤골계곡 방향으로 빠진다. 50m 정도 내려오다가 왼편으로 백운대와 숨은벽 정상인 768봉 사이의 V안부로 올라 위문을 거쳐 백운대로 가거나, 안부 오른쪽 호랑이굴을 통과해 백운대로 직접 오르는 방법이 있다. 호랑이굴은 10m 정도를 통과하는 좁은 굴로 다소 슬랩이 있어 아슬아슬하지만 요즘은 너도나도 찾는 인기 코스로 자리 잡았다. 백운대에서 북한산 입구나 원효봉 쪽으로 내려오면 된다. 아니면 그냥 밤골계곡으로 가파르게 내려오면 원점산행이 된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수도권 명산 30選>여기, 아세요 ? 빚어 놓은 듯한 해골 모습… 이젠 ‘반들반들’

문화일보 | 엄주엽기자 | 입력 2011.07.29 14:21 |

 

숨은벽능선에서 된비알 너덜길을 숨이 차게 올라 본격 암반 능선이 시작되는 곳에 해골바위(사진)가 있다. 바위 옆에선 모르고 더 위로 올라와 전망대 바위에서 돌아보면 마치 빚어 놓은 듯한 해골의 모습이다. 누워 있는 해골은 휑하니 두 눈 구멍이 깊게 파여 있고 요즘은 비가 자주 와 그곳에 항시 물이 고여 있다. 원효가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득도여행을 가는 길에 밤에 오래된 무덤에서 자다가 잠결에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이 세상의 온갖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며, 모든 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를 생각나게 하는 바위다.

또는 40대 중반 이후인 분들은 어릴적 흑백TV에서 '황금박쥐'라는 만화영화를 보았을 텐데, 딱 그 모습이다. 이 바위에 올라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아 이번에 가보니 반들반들해졌던데, 그냥 멀리서 감상만 하는 것은 어떨지….

< 수도권 명산 30選 > 거대한 암봉 깎아지른 벼랑 꼭꼭 숨어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