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등산,캠핑,기타자료/수도권 명산 30선

⑩ 북한산 삼천사-청하동-진관사 계곡산행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1. 7. 16.

 

<수도권 명산 30選>서울안에 이런 시린 풍경이… 더위도 놀랐다

(10) 북한산 삼천사-청하동-진관사 계곡산행

문화일보 | 엄주엽기자 | 입력 2011.07.15 14:51

 
여름에는 아무래도 능선보다 계곡 산행이 수월하고 제격이다. 북한산에는 정릉계곡, 구천계곡, 소귀천계곡, 육모정계곡, 효자리계곡, 구기계곡, 산성계곡 등 이름난 계곡이 적지 않지만, 삼천사계곡과 진관사계곡을 잇는 길이 계곡 산행 코스로는 제일이 아닌가 싶다. 그 중간에 지금은 부왕사지 코스라 부르는 청하동(靑霞洞) 골짜기를 끼워 넣으면 비봉능선까지 고루 맛보는 뻐근한 등산 코스가 된다. 역사·문화 유적지도 덤으로 살필 수 있다.

↑ 지난 11일 북한산 삼천사계곡이 장마철을 맞아 시원한 물줄기를 내려보내는 가운데 한 등반객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하지만 비가 많이 내릴 때 계곡 산행은 주의해야 한다. 김낙중기자 sanjoong@munhwa.com

단 요즘 같은 장마철 계곡 산행은 물 구경이야 좋지만 주의를 요한다. 지난해 8월 초 태풍 뎬무가 왔을 때 삼천사계곡 입구가 폭우로 갑자기 불어 야영객 2명이 물에 휩쓸려 숨진 바 있다. 지난 11일 장맛비를 뚫고 삼천사 계곡을 찾았을 때도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이 '우중 등반객'들을 쫓다시피 하며 주의를 주고 있었다.

북한산 덩어리의 서쪽인 삼천사계곡과 진관사계곡은 응봉능선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놓여 있다. 예전에 아직 자동차와 레저 문화가 퍼지지 않았을 때, 진관사는 서울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 유명했고 계곡은 한여름이면 물놀이나 캠핑하는 사람들로 몹시 붐볐던 곳이다. 요즘이야 등반객들이나 지나다니지만. 삼천사계곡은 1968년 1·21사태 이후 한동안 출입이 통제됐다가 1990년대에 열린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문에 사람의 발길을 덜 탔다는 느낌이 조금 드는 계곡이다.

7211번이나 704번 버스를 타고 삼천리골 입구에서 내리면 삼천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10여분 올라가면 '삼각산 삼천사(三角山 三千寺)' 현판을 단 일주문이 나온다. 삼천사계곡은 세 개의 골(谷)이 만난다. 그래서 옛 문헌에는 삼천사(三川寺)라고도 돼 있다. 원래 삼천사는 지금의 자리가 아니고 더 올라가 부암동암문에 못 미쳐 왼쪽으로 증취봉 아래에 있었다. 지금은 '절터'라고 불리는 자리 두 곳에 거대한 석축 등이 남아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유북한기'에는 이곳이 고려시대에 삼천승동(三千僧洞)으로 불렸다고 했는데 무려 3000여명의 승려가 머물 정도로 거대한 사찰이 있었다는 얘기다.

삼천사계곡은 장맛비로 인해 물이 지천이다. 삼천사에서 20여분 오르면 계곡에 널찍한 너럭바위가 나오고 그 위로 흐르는 물줄기가 볼만하다. 줄을 쳐 들어가는 것은 막았다. 좀 더 오르면 삼거리 부근에 비봉 쪽으로 폭포가 하나 있다. 한 등반객이 웃통을 벗어젖히고 물놀이를 하고 있는데 몹시 추워 보인다. 여기 세 갈림길 중 맨 오른쪽은 비봉능선 승가봉과 비봉 사이인 사모봉 옆으로 오르게 되고, 가운데는 청수동암문-문수봉으로 바로 향하게 된다. 왼쪽이 부암동암문으로 오르는 길이다. 사모봉으로 바로 오르면 비봉 직전에서 진관사계곡으로 곧바로 내려갈 수 있어 가장 짧은 코스다. 하지만 청하동 골짜기를 보기 위해 왼편 코스를 택했다.

의상봉능선 중간에 있는 부암동암문을 넘어서면 바로 증흥사지 부근 북한산성계곡으로 내려가는 청하동계곡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등산로가 있지만, 계곡물은 변변치 않아도 이곳 길이 호젓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북한산을 찾을 때마다 들르게 된다. 동(洞)이란 '아름다운 골짜기'를 가리킨다. 선능의 북한지(北漢誌)에 보면 북한산에는 백운동·중흥동 등 18개의 '동'이 있는데, "청하동은 동문(洞門)이 그윽하고 고요하여 다른 것은 모두 이와 짝하기 어렵다"며 북한산 18동 중 최고로 치고 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청하동은 봄에는 신록, 여름엔 녹음, 가을엔 단풍과 낙엽 등 계절마다 빼놓을 데 없이 아름답고 그윽하다.

청하동 아래에서 오른쪽이 대남문으로 오르는 코스다. 대남문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가다 청수동암문을 통과해 깔딱고개에 내려서면 그때부터 비봉능선이 시작된다. 비봉능선은 볼거리가 많지만 걷기에도 편하다. 승가봉을 거쳐 사모바위와 만나게 된다. 사각 모양을 가리키기도 하는 '사모'는 옛적 벼슬아치의 의관인 사모관대(紗帽冠帶)의 모자 '사모'와 비슷하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사모바위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여 있다. 점심 즈음이면 으레 여기서 도시락을 편다.

비봉 직전에 오른쪽으로 진관사계곡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비봉은 국보 3호인 진흥왕순수비가 세워진 곳이다. 물론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전해 보관돼 있고, 현재 있는 비석은 복제한 것이다. 비봉 일대도 언제부터인가 사적으로 지정해 일반인 출입을 제한하고 있지만 대개 한번쯤은 올라 본다.

진관사계곡은 삼천사계곡만 못하고 길이도 짧다. 마지막 진관사로 내려서는 구간이 가파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계곡은 그렇다 쳐도 사찰의 멋은 진관사가 한 수 위라는 생각이다. 비구니들이 있는 곳이라서일까. 사찰의 분위기가 정갈하고 편안하다. 삼천사가 좁은 공간에 이것저것 대리석 조성물을 장식해 어지러운 것과 대비된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수도권 명산 30選>산에서 만나는 역사… 진관사-‘1000년 역사’ 서울 근교 4대 명찰

삼천사-‘중후한 인상’ 마애여래입상 유명

문화일보 | 엄주엽기자 | 입력 2011.07.15 14:51 |

진관사(津寬寺·사진)는 서울 동쪽의 불암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예부터 서울 근교의 4대 명찰(名刹)로 꼽혔다. 고려 제8대 현종이 1011년에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했다. 영조 21년(1741년)에 쓰인 '북한지'에는 '진관사가 지금은 피폐되었다'고 적혀 있어 여러 차례 성쇠를 거듭한 듯하다. 다시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가 복구됐다. 이 사찰에는 고려 7대 왕 목종 때의 전설이 전한다.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千秋太后)는 외척 김치양과 사통해 사생아를 낳은 뒤 고려의 대통을 잇게 하기 위해 유일한 후계자 대량원군을 암살하려 했다. 12세의 대량원군은 암살을 피해 삼각산 진관대사에게 숨었다. 천추태후가 자객을 보낼 때마다 진관대사는 부처님 단 아래에 굴을 파고 대량원군을 숨겨 그 목숨을 구해 줬다. 강조의 정변으로 7대 목종이 폐위되자 대량원군은 8대 현종으로 등극한다.

삼천사는 신라시대 원효가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이 있는 것으로 미뤄 최소한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지'에 '삼천사는 폐사되었다'고 적혀 있어 이 또한 여러 차례 유실됐다가 1960년대 지금 자리에 사찰이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마애여래입상은 보물 제657호로 지정돼 있다. 편편한 바위 면에 얕은 융기선으로 조각됐으며 그 융기선을 따라 금분을 칠해 화려한 느낌을 준다.

 


'등산,캠핑,기타자료 > 수도권 명산 30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 북한산 ‘숨은벽’ 능선  (0) 2011.08.02
⑪ 도봉산 오봉능선  (0) 2011.07.22
⑨북한산 의상능선  (0) 2011.07.08
⑧동두천 소요산  (0) 2011.07.03
⑦양주 불곡산  (0) 2011.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