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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악/클래식

관현악의 대가 베버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1. 12. 16.

저음 현악기들이 낮은 신음을 토해내며 음산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여기저기서 목관악기들의 기괴한 비명소리가 들려옵니다. 1821년 6월 18일, 베를린 왕립 극장에서 칼 마리아 폰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86~1826)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가 초연되던 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침한 음악에 청중과 음악평론가들은 몹시 당황했습니다. 이 오페라는 확실히 기존의 오페라와는 뭔가 달랐습니다. 고전적인 취향에 젖어있던 당대 청중들은 베버의 새 오페라에서 그저 명랑하고 달콤하기만 한 음악을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들은 것은 초자연적 마법의 세계를 담은 독특한 음악이었습니다.


베버 이전에는 그 누구도 이토록 독특한 오케스트라 음향을 창조해내지 못했습니다. 베버는 베토벤과는 달리 하나의 통일적인 음향을 만들어내기 위해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 소리를 결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베를리오즈가 오케스트라 성부를 세분화하기 훨씬 전부터 성부 분할기법을 터득해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냈고, 멘델스존이 목관 솔로의 탁월한 효과를 인식하기 훨씬 전부터 목관악기가 빛나는 찬란한 음악을 선보였습니다. 신비롭고 마술적인 음향으로 가득한 베버의 오페라가 없었다면 바그너의 음악극이 탄생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베버는 베토벤의 오케스트라 음향을 넘어 19세기 음악의 새로운 오케스트라 이디엄을 개발해낸 비범한 음악가였습니다.

 

 

 

낭만주의 관현악의 선구자


베버는 어린 시절부터 유랑극단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각 도시를 순회하며 각 도시의 문화 예술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미하일 하이든을 비롯한 여러 음악 스승들의 지도와 여러 음악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빠르게 성장한 베버는 14살이 되던 해에 벌써 첫 번째 오페라 [숲의 소녀]를 작곡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미 10대의 나이에 두각을 보인 베버는 18세가 되기도 전에 브레슬라우 시립 오페라극장의 악장으로 임용됐고, 곧바로 슈투트가르트의 루트비히 공작의 개인비서로 자리를 옮겨 오페라 [실바나]를 작곡했습니다. 

 

1807년에는 교향곡 두 곡을 연달아 내놓으며 오케스트라 악기에 대한 음향에 대한 독창적 감각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칼스루에에 있는 오이겐 공의 성에서 지휘자로 일하고 있던 베버는 이 성의 행사를 위해서 두 곡의 교향곡을 비롯한 몇 곡의 기악곡들을 작곡했습니다. 베버의 작곡 속도는 대단히 빨라서 1806년 12월 22일에 [교향곡 1번]을 쓰기 시작해 1807년 1월 2일에 [교향곡 1번]을 완성했고, [교향곡 2번]은 1807년 1월 22일에 시작해서 일주일 만에 완성해냈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완성된 두 교향곡을 들어보면 20대 초반의 베버가 이미 그 자신만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창조해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교향곡 금관악기의 엄숙한 주제와 목관악기의 아름다운 솔로가 돋보이는 [교향곡 1번]의 2악장은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또 [마탄의 사수]에서 종종 등장하는 전원적인 느낌의 호른 앙상블이나 비올라의 극적인 트레몰로(현악기들이 활을 빠르게 움직이며 빠르게 떨리는 음을 만들어내는 연주법)도 그의 교향곡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대가 칼 마리아 폰 베버. <출처: wikipedia>


 

 

no아티스트/연주

  1. 1[교향곡 1번] 2악장 / 에리히 클라이버, 쾰른 라디오 심포니오케스트라, 1956듣기

 

 

 

 

1811년에 완성한 2곡의 [클라리넷 협주곡] 역시 베버의 개성을 보여줍니다. 당대 최고의 클라리넷 연주자인 하인리히 요제프 베르만의 연주에 감명을 받은 베버는 2곡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작곡해 이 뛰어난 클라리넷 비르투오소를 더욱 빛나게 했습니다. 일찍이 멘델스존은 베버의 관현악 기법에 감탄하며 ‘낭만주의 관현악의 무기고’라 말하기도 했는데, 이런 특징은 이미 베버가 20대 초반에 작곡한 교향곡과 협주곡에도 충분히 드러납니다. 하지만 베버의 본령은 역시 오페라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탄의 사수]의 관현악법 – 어둠과 저주의 음색


1816년에 드레스덴의 궁장악장에 임명된 이후 독일 음악의 부흥에 힘쓴 베버는 본격적으로 오페라에 헌신했습니다. 그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 바로 그의 일곱 번째 오페라인 [마탄의 사수]입니다. [마탄의 사수]는 본질적으로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입니다. 19세기 독일 오페라의 전형적인 특징을 이루는 야생의 숲과 마법의 세계, 순수한 여성이 나타날 뿐 아니라 독일 민요를 연상시키는 친근한 선율은 민족주의적 특징을 나타냅니다. 시골의 소박한 풍경과 악마적이고 마술적 요소가 공존하는 것이야 말로 [마탄의 사수]의 매력입니다.


 

 

 

이  두 가지 대조적 요소 중에서도 악마적인 어둠의 음악은 이 오페라를 더욱 독특한 음향으로 채색합니다. 베버는 1막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악마의 음악을 효과적으로 사용했습니다.

 

1막이 시작되면 사격시합에서 농부 킬리안에게 연거푸 패한 주인공 막스가 내일 있을 사격대회에 우승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만일 그가 패한다면 사랑하는 아가테와 결혼할 수 없게 되니 그의 괴로움은 커질 수밖에요. 혼자 남은 막스는 아가테와의 즐거웠던 추억을 노래하지만 이내 절망에 빠져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저주받은 힘에 사로잡혔다!’(Doch mich umgarnen finstre Mächte!) 이 구절에서 막스가 부르던 아름다운 아리아 선율은 어둡고 음울한 악마의 음악으로 급격히 전환됩니다. 작곡가 베버는 이 장면을 적절한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무척 고심한 모양입니다. 그는 이 부분의 작곡과정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이 ‘어둠의 힘’을 음색과 멜로디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런 저주받은 성격을 어떤 음색으로 표현해야할지 내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당연히 이 장면은 어둡고 우울한 색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음역의 바이올린과, 비올라와 베이스, 특히 낮은 음역의 클라리넷을 사용했습니다. 낮은 음역의 클라리넷은 ‘저주’를 묘사하는 데 특히 적합해보였습니다. 그리고 애도하는 듯한 바순 소리와 호른의 가장 낮은 음을 이용했습니다.”


베버는 절묘한 관현악법으로 어둠의 힘, 기괴한 저주의 분위기를 극적으료 묘사해냈다. <출처: NGD>


 

 

 

no아티스트/연주

  1. 1[마탄의 사수] 1막 '나는 저주받은 힘에 사로잡혔다!' / 푸르트벵글러, 빈 필, 한스 호프, 1954듣기
  2. 2[마탄의 사수] 2막 마법 탄환 제조 장면 / 푸르트벵글러, 빈 국립오페라합창단, 빈 필, 쿠르트 뵈메, 1954 듣기

 

 

 

 

[마탄의 사수] 1막에 선보인 어둠의 음악은 2막의 ‘늑대 계곡’ 장면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2막에서 막스는 카스파르의 꾐에 빠져 결국 악마 자미엘이 있는 무시무시한 늑대 계곡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악마에게 사로잡힌 카스파르는 몇 가지 도구들을 이용해 악마를 불러냅니다. 검은 돌을 쌓아 원형을 만들고, 해골 바가지를 쌓아놓은 다음 교수형에 쓰는 끈을 매달아 놓습니다. 이 부정한 의식을 행하는 동안 귀신들의 야만스러운 합창이 들리고, 시끄러운 유령들과 부엉이의 비명 소리가 합세합니다. 그때 악마 자미엘이 나타나고 흥정이 시작됩니다.


하나의 탄환이 만들어질 때마다 흉측한 새와 파충류들이 질러대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옵니다. 7개의 마법의 탄환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음악 또한 점점 더 기괴해집니다. 첫 탄환이 완성되었을 땐 고음 현악기들이 살랑거리는 16분 음표만을 연주하지만 두 번째 탄환이 만들어지자 어두운 음색의 바순과 더블베이스가 출렁이는 선율을 연주하고 현악기들은 극적인 트레몰로를 선보입니다. 6번째와 7번째 탄환이 완성되었을 때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들은 크고 우렁찬 소리로 넓게 도약하는 선율을 격정적으로 연주하면서 초자연적인 마법의 힘을 뿜어냅니다.

 

 

 

[오베론]의 관현악법 – 요정과 인간의 세계


베버 오페라 [오베론] 역시 베버 특유의 오케스트레이션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이 오페라는 바그너가 시도한 음악극의 길을 미리 보여준 중요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베버 자신은 [오베론]을 작곡하는 동안 유치한 대본을 비롯한 여러 난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마탄의 사수]로 인기가 높아진 베버는 영국으로부터 [오베론]의 작곡을 의뢰받게 되었지만, 이 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영국의 대본작가와의 공동 작업을 강요받았을 뿐 아니라 작곡료를 받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버는 인내심을 갖고 작업을 계속해 영감에 찬 오페라 [오베론]을 15개월 만에 완성해냈습니다. [오베론]에선 특히 극적인 효과와 회화적인 자연 묘사, 그리고 색채적인 관현악과 대담한 반음계가 돋보입니다. 비록 오페라가 공연되는 일은 드물지만 콘서트에서 종종 연주되는 오페라 원작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오페라 [오베론]에서도 두 가지 대비되는 세계가 공존합니다. 바로 ‘요정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입니다. 베버는 오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서곡에서도 이 두 세계를 각기 독특한 음향으로 표현해냈습니다. 서곡을 여는 호른 소리는 마치 마법의 뿔피리처럼 울려 퍼집니다. 이윽고 약음기를 낀 바이올린이 이에 화답하며 신비로운 요정 세계의 환상을 그려냅니다. 다시 호른과 바이올린의 문답이 이어진 후 목관악기들이 요정의 날갯짓과 같은 재빠른 음형을 연주하고 현악기가 이를 아름답게 마무리합니다.


아다지오의 느린 템포로 지속되는 서주 부분은 요정의 왕 오베론과 그의 부인 티타니아가 다스리는 요정 나라의 환상을 묘사하듯 신비로운 음향으로 가득합니다. 이 환상적인 요정 나라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요정나라도 인간세상과 다르지 않은 모양입니다. 오베론과 티타니아도 인간세상의 여느 부부들처럼 부부싸움을 합니다. 끊임없는 싸움에 지친 그들은 급기야 인간 세상에서 서로에게 충실한 한 쌍의 커플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다시 서로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결정합니다.


[오베론]의 요정과 인간의 세계를 묘사하는 관혁악법도 역시 혁신적이다. <출처: NGD>


 

 

 

no아티스트/연주

  1. 1[오베론] 요정세계 - [오베론] 서곡 도입부 / 푸르트벵글러, 빈 필하모닉, 1950듣기
  2. 2[오베론] 인간세계 - [오베론] 서곡 중 Allegro con fuoco 도입부 / 푸르트벵글러, 빈 필하모닉, 1950듣기
  3. 3[마탄의 사수] 서곡 종결부 / 푸르트벵글러, 빈 필하모닉, 1954듣기

 

 

 

 

이를 지켜보던 오베론의 시종 드롤은 사랑을 시험해볼 커플로 보르도의 휘온 백작과 바그다드의 레차아 공주를 점찍습니다. 서곡의 템포가 알레그로 콘 푸오코(Allegro con fuoco, 불같이 빠르게)로 바뀌면 인간세상의 음악이 나타나고 약음기를 뺀 현악기들이 관악기의 리드미컬한 반주에 맞추어 매우 빠른 템포로 용솟음치듯 열정적인 주제를 연주합니다. 이는 휘온과 레치아의 모험과 사랑의 여정을 그린 음악입니다. 요정 세계와는 사뭇 다른 현실적인 음향이지요. [오베론] 서곡의 마지막 부분은 사랑의 환희를 나타내듯 폭발적인 기쁨으로 용솟음칩니다. 현악기와 플루트의 도약하는 선율과 관악기의 리드미컬한 반주 음형이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이 활기 찬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때때로 베버의 음악에서 전체 오케스트라의 합주는 폭발적인 환희로 끓어오르곤 합니다. [마탄의 사수] 서곡 마지막 부분에서 현악기들이 표현해낸 광적인 환희도 좋은 예가 됩니다.


베버의 관현악은 다양한 색채를 뿜어내며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습니다. 그의 관현악 기법은 항상 분명한 효과를 지향하고 있기에 듣는 이들에게 확실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곤 합니다. 관현악법의 기교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했던 베버는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의 대가이자 낭만주의 관현악의 새로운 장을 연 선구자라 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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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규 / 음악 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및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부천필,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음원 제공 소니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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