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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악/클래식

관현악의 대가 멘델스존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1. 12. 16.

 

생전에 멘델스존만큼 존경과 영광을 누린 작곡가도 드물 겁니다. “19세기의 모차르트”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던 멘델스존은 15세가 되기도 전에 이미 4편의 오페라와 여러 실내악곡과 피아노곡, 협주곡 작곡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의 몇 작품들을 모차르트가 그와 같은 나이에 작곡한 작품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니 그가 얼마나 조숙한 음악가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환경에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자라난 멘델스존에게 음악공부에 대한 제약은 거의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오케스트라를 집안으로 초청해 연주회를 열 정도였으니까요. 멘델스존은 일찍부터 자신의 작품을 실제 오케스트라 소리로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들의 음색과 효과에 대해서 일찍부터 귀가 틔었던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유복한 환경과 타고난 재능


1821년 2월, 멘델스존의 12번째 생일에도 그의 저택에서 열린 음악회에 왕실 카펠레 단원들로 구성된 정식 오케스트라가 멘델스존의 오페라 [병사들의 연애사건] 등을 연주했습니다. 그때 어린 멘델스존의 음악에 감격한 어머니 레아는 친척에게 보내는 편지에 “어린아이가 오케스트라의 각 악기들을 이용해 그토록 자신 있게 작곡할 수 있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라 썼습니다. 단지 어머니만이 어린 멘델스존에게 감탄한 것은 아닙니다. 당대 최고의 음악가이자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65세의 케루비니도 어린 멘델스존의 재능에 크게 감탄해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싶어 했고, 노년의 괴테 역시 어린 멘델스존을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유복한 환경과 타고난 재능, 그리고 그 자신의 쉼 없는 노력이 더해지면서 멘델스존의 음악적 발전은 가속화됐습니다. 아마도 악기 음향에 대한 멘델스존의 탁월한 감각이 개성적인 음악으로 나타난 최초의 예는 [현악8중주곡]일 겁니다. 멘델스존이 1825년에 발표한 [현악8중주곡]은 16세 소년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운 놀랄만한 작품입니다. 현악4중주를 정확히 두 배로 늘린 현악8중주라는 특이한 구성 덕분에 그 음색은 매우 풍부하고 다채롭습니다. 섬세하고 가벼운 음향으로부터 교향곡과 같은 웅장함에 이르기까지 다이내믹의 표현범위가 매우 넓어서 실내악이라기보다는 관현악 같은 음악이지요. 멘델스존 스스로도 “이 8중주는 모든 파트가 마치 교향곡과 같은 양식으로 연주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전 악장 가운데서도 특히 3악장 ‘스케르초’의 독특한 음향은 멘델스존 음악 특유의 가벼우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잘 전해줍니다. 이 곡은 괴테의 [파우스트] 중 ‘발푸르기스의 밤’을 묘사한 일종의 표제음악인데, 일찍이 멘델스존은 그의 누나 파니에게 이 스케르초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어린 시절 멘델스존의 초상화. <출처: wikipedia>


 

“이 악장 전체는 스타카토와 피아니시모로 연주되어야 하며, 작은 떨림은 용솟음쳤다가는 다시 수그러들듯이, 트릴은 가볍고도 재빠르게 사라지도록 연주되어야 한다. 모든 것은 새롭고 이상하지만 그와 동시에 은근하면서도 기쁨에 차있다. 사람들은 이 음악에서 공기 중을 떠도는 영적인 세계를 가까이 느낄 것이며 어떤 이들은 빗자루를 잡아타고 공기 중으로 날아오를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제1바이올린이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면 모든 것은 사라져버린다.”


 

no아티스트/연주

  1. 1멘델스존 현악8중주 3악장 스케르초 / 야나첵 4중주단 & 스메타나 4중주단, 1959듣기

 

 

 

현악8중주 3악장에서 들을 수 있는 현악기의 가벼운 음향은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서곡에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집니다. 현악8중주곡을 완성한지 1년 후인 1826년, 멘델스존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읽고 나서 “내일부터 나는 ‘한여름 밤의 꿈’을 꾸기 시작할 것입니다”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는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을 완성했습니다.

 

 

 

악기 음향에 대한 멘델스존의 탁월한 감각


이 곡에 표현된 멘델스존의 꿈은 지극히 환상적이고 매혹적입니다. 그는 어떻게 두 대의 플루트만으로 음악을 시작한다는 기발한 생각을 해냈을까요! 플루트의 맑고 순수한 음색에 오보에와 클라리넷, 바순, 호른이 더해지며 요정의 세계로 들어가는 네 개의 코드가 완성되면,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주자들이 깃털처럼 가벼운 음색으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냅니다. 멘델스존의 스승인 첼터가 ‘모기떼’라 표현했던 이 환상적인 음향은 때로는 불빛으로 모여드는 작은 곤충들 같기도 하고 작고 귀여운 요정의 날갯짓 같기도 합니다.


 

 

no아티스트/연주

  1. 1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 서곡 / 조지 셀,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1957듣기
  2. 2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 중 ‘스케르초’ / 프리츠 라이너, 로빈 후드 델 오케스트라, 1951듣기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을 완성한지 17년 후, 멘델스존은 이 서곡을 연극 공연에 사용하기 위해 연극 부수음악을 덧붙여 [한여름 밤의 꿈]을 완전한 극음악으로 완성해냈습니다. 서곡과 부수음악 사이에는 무려 17년의 세월이 놓여있음에도 유기적으로 연결된 느낌입니다. 특히 부수음악 중 ‘스케르초’에서 목관악기들의 경쾌한 움직임은 어쩐지 요정들의 춤을 연상시키고 있어 서곡의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이 곡에서 멘델스존이 플루트를 비롯한 고음 목관악기의 음색을 얼마나 상큼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됩니다.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숲 속의 요정들. <출처: wikipedia>

 

 

멘델스존의 관현악곡에선 플루트가 중요한 멜로디를 연주할 때가 많습니다. 종교개혁 30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작곡된 [교향곡 5번 종교개혁] 4악장에서도 플루트는 이 곡의 핵심적인 선율인 루터교의 찬송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를 연주합니다. 맑고 순수한 플루트가 연주를 시작하면 다른 목관악기들도 차례로 연주에 끼어듭니다. 이윽고 현악기들이 찬송가를 이어가는데 특이하게도 주제를 연주하는 현악기는 바이올린이 아닌 비올라입니다. 멘델스존은 종종 비올라와 목관악기의 음색을 섞어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내곤 했는데, 여기선 비올라에 플루트, 클라리넷이 합쳐지면서 독특한 색채를 뿜어냅니다. 비올라는 특유의 비음 탓에 관현악곡에서도 주요 멜로디를 연주하는 일이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교향곡에서 비올라의 비음은 플루트의 신선함과 클라리넷의 진중함과 합해지며 놀랄 만큼 광채를 발하고, 여기에 트럼펫까지 가세하면서 화려하고 장중하게 변모합니다. 만일 여기서 비올라가 빠진다면 신을 향한 벅찬 감격의 느낌은 훨씬 줄어들었을 겁니다.


멘델스존이 이탈리아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교향곡 제4번 ‘이탈리아’]의 2악장에서도 비올라와 목관악기의 혼합은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엄숙한 이탈리아 종교의식을 연상케 하는 도입부의 멜로디에 이어 오보에와 바순, 그리고 비올라가 연주하는 구슬픈 선율을 들으면 누구라도 장송행진곡의 분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1833년 5월, [이탈리아 교향곡]의 영국 초연 당시에도 특히 주목을 받았던 2악장의 독특함은 악기 음색을 배합하는 그의 탁월한 감각에서 비롯된 듯합니다.


 

 

no아티스트/연주

  1. 1멘델스존 [교향곡 제5번 ‘종교개혁’] 4악장 /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NBC 심포니오케스트라, 1953듣기
  2. 2멘델스존 [교향곡 제4번 ‘이탈리아’] 2악장 /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NBC 심포니오케스트라, 1954듣기

 

 

 

 

두 차례의 긴 여행에서 얻은 음악적 영감


흥미롭게도 멘델스존의 대표적인 관현악 3곡은 모두 여행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탈리아 교향곡]을 비롯해 [핑갈의 동굴]이란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헤브리디스 서곡]과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는 여행의 산물입니다. 집안이 부유해서 어린 시절부터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멘델스존은 20세가 되던 1829년부터 1832년까지 두 차례의 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no아티스트/연주

  1. 1멘델스존 [교향곡 제4번 ‘이탈리아’] 4악장 /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NBC 심포니오케스트라, 1954듣기
  2. 2멘델스존 [교향곡 제3번 ‘스코틀랜드’] 2악장듣기

 

 

 

7개월 동안 계속된 첫 여행에서 런던과 스코틀랜드, 웨일스를 여행한 그는 1831년부터 32년까지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습니다. 그때 잉태된 [이탈리아 교향곡] [스코틀랜드 교향곡]은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완벽주의자였던 멘델스존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오케스트레이션을 다듬고 또 다듬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인지 이 두 교향곡은 각기 독특한 음향 세계를 형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교적으로도 매우 어려워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긴장하면서 연주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교향곡] 4악장은 오케스트라 주자들의 기량을 겨루는 경연장이라 해도 좋을 만큼 불꽃 튀는 기교가 펼쳐집니다. 이탈리아의 빠른 춤곡인 ‘타란텔라’의 리듬을 타고 여러 악기들이 서로 얽히며 숨 가쁜 연주를 벌이는 동안 청중 역시 호흡을 멈추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기교도 만만치 않습니다. 2악장의 민요적인 주제가 다시 한 번 크게 연주될 때 바이올린뿐만 아니라 호른 역시 재빠른 주제를 함께 연주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이렇게 빠른 템포로 정확히 연주하는 것은 호른 주자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런 일입니다. 하지만 호른이 바이올린과 똑같이 빠른 음표를 연주하고 팀파니까지 함께 동참하고 있기에 청중은 이 부분에서 좀 더 폭발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멘델스존은 어떻게 하면 오케스트라가 빛나는 소리를 낼 수 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독일의 유서 깊은 악단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활동했던 그의 경력이 오케스트라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발전시킬 기회가 되었을 겁니다.


스코틀랜드 헤브리디스 제도에 있는 동굴. [핑갈의 동굴] 서곡에 영감을 준 풍경이다. <출처: wikipedia>


 

그는 지휘자로서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비롯한 위대한 고전음악의 걸작을 세상에 알리는 한편, 관현악 작곡가로서는 고전 오케스트라의 바탕에서 새로운 음향을 지향했습니다. 그의 위대함은 베를리오즈처럼 특수한 악기들을 사용하거나 악기편성을 확장하지 않고서도 새롭고 신비로운 음향을 개발해냈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하이든과 베토벤 시대의 고전적인 악기편성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그 자신만의 비범한 음향 감각으로 마법과 같은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만들어냈습니다. 옛 오케스트라로부터 새로운 소리를 이끌어낸 멘델스존은 진정한 관현악의 달인이라 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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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규 / 음악 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및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부천필,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음원 제공 소니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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