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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취재] 등산화 중창 파손 사고, 산행안전 위협!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1. 5. 4.

 

[긴급 취재] 등산화 중창 파손 사고, 산행안전 위협!
신발장에 모셔둔 오래된 등산화가 오히려 더 위험
PU 중창 가수분해가 원인… 생산 후 5년 넘은 제품은 주의해야
▲ 등산장비점의 진열대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종류의 등산화들. / 사진 허재성 기자

지난 겨울 한라산에서 산행을 즐기던 P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설경을 구경한 뒤 하산하다가 신발창이 통째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외피는 물론 바닥창도 깨끗한 신발인데 중창이 부서지면서 분리된 것이다. 그가 신었던 등산화는 외국의 유명 브랜드인 T사의 최고급 모델로 워낙 고가에 구입한지라 애지중지하며 겨울철에만 잠깐씩 사용해왔다.

실제 사용 횟수만 따지면 30일도 안 되는 제품이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궁금증을 증폭시킨 것은 이러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접하면서부터다. 장거리 산행 중에 양쪽 리지화의 중창이 완전 분해되어 고생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샌들을 신고 갯벌에 들어갔다가 몇 조각으로 분리돼 맨발로 나온 이들도 있었다.

중창이 파손되는 사례는 사용 중에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남대문에서 장비점을 운영하는 K씨는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던 등산화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수입한 지 오래됐지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인데 신발창에 길게 금이 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손을 대면 댈수록 점점 틈이 벌어지더니 급기야 커다란 구멍이 나 버렸다. 물건을 판매도 하지 못하고 폐기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PU 중창의 수명은 평균 5년

등산화 중창의 파손 사례는 모두 폴리우레탄(PU) 소재를 사용한 제품들이다. PU 소재는 가볍고 충격흡수력이 좋아 등산화나 운동화의 중창으로 적합하다. 발에 전해지는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이 뛰어난 데다 제품의 무게까지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PU 소재는 가수분해(加水分解)로 인한 부식이 쉽게 일어난다는 것이 문제다.


▲ 1. PU 중창의 부식으로 바닥창이 벌어진 등산화. 2. 등산화 중창 부식 사례. 깨지거나 가루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 산행 중 등산화 중창이 깨지며 바닥창이 떨어진 사례. 4. 밑창의 접착 부위가 완전히 분해되며 떨어진 경우.
가수분해는 물분자가 작용해 일어나는 화학반응의 한 종류다. 금속염이 물과 반응해 산성 또는 알칼리성 물질이 되거나 사람의 소화기 내에서 음식이 소화되는 과정 등이 대표적인 가수분해 반응이라 하겠다. PU의 가수분해는 공기 중의 습기로 인해 진행된다. 제조사들은 이를 막기 위해 코팅을 하거나 공정에서 내가수분해제를 사용한다. 하지만 신발연구소의 등산화 관련 분야 연구원은 근본적으로 PU 소재는 가수분해에 의한 열화를 막기 어렵다고 말한다.

모든 소재는 경년열화(經年劣化)를 피할 수 없다. 오래된 천이나 가죽이 삭아 떨어지는 것도 이러한 현상의 하나다. 자연 소재의 제품은 관리만 잘하면 대를 이어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석유화학 계열의 소재는 그 기한이 상대적으로 짧다. 일반적으로 열경화성 플라스틱이나 PU와 같은 소재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수명을 5년 정도로 보고 있다.

산행 중 중창 파손 심각한 문제 야기

등산화 PU 중창의 부식현상은 몇 해 전부터 본격적으로 보고되기 시작했다. 2007년 동서대학에서 발표한 신발 A/S와 관련된 논문에 따르면, 신발의 수선 항목 가운데 중창의 파손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수선 대상 제품은 PU를 중창으로 사용한 모델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등산화는 물론 수입품까지 전 브랜드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문제는 등산화의 중창 파손이 사용자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착용하는 운동화나 스니커즈는 신발창이 파손되더라도 주변의 도움을 얻거나 쉽게 대처가 가능하다. 하지만 산행 도중 등산화 중창이 떨어져 나갈 경우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조난을 당할 수도 있다. 또한 등산화 중창 파손은 순식간에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문제를 인지할 즈음 거의 손을 쓸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PU 중창의 부식은 사용하지 않은 등산화에서 더욱 빨리 진행되기도 한다. 같은 날 출시된 제품도 주기적으로 사용한 것이 등산장비점 진열대에 놓여 있던 것보다 수명이 길다는 보고가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일정한 압력과 스트레스가 PU 조직의 분리를 막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란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중창뿐 아니라 PU 계열의 접착제를 사용한 바닥창 역시 유사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어느 정도 열화가 진행되면 더 이상 접착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 위험하다. 이는 신발 바닥창이 통째로 분리되거나 떨어져 나가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문제점과 대처방안 알릴 필요 있어

당연한 말이지만 등산화는 사용에 앞서 반드시 점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특히 제조한 지 5년이 넘은 등산화는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갑피나 D링, 고리, 신발 끈은 물론 PU 소재의 중창은 열화 여부까지 확인해야 한다. 사실 중창이나 접착제의 열화 정도는 자세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확인이 어렵다.

PU 중창의 경우 코팅된 겉면의 주름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면 더욱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열화가 심한 중창은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조금만 힘을 가하면 부서지며 쉽게 가루가 된다. 살짝 긁어서 가루가 떨어지는 중창도 어느 정도 열화가 진행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접착제는 색깔의 변화로 열화 정도를 알아낼 수 있다. 오래된 접착제는 누렇게 ‘황변’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견되면 반드시 사용을 중지하고 해당 업체를 통해 신발창을 교체해야 한다.

▲ 일본 아웃도어 매장에 붙어 있는 PU 중창 수명에 대한 안내문.

케이투와 트렉스타, 캠프라인 등 국내의 유수 등산화 제조업체들은 이미 PU 중창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파손되거나 노후된 제품의 중창 교체를 적극 권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제품 수명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대처방안 제시는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등산화도 수명이 있음을 소비자에게 적극 알리는 구체적인 활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이제 거의 모든 아웃도어 매장에 PU 중창 등산화의 파손에 대한 경고 문구를 부착한 상태다. 각 업체들의 연락처를 명기한 이 안내장에는 PU 중창이 파손되는 원인을 알려주고, 사고 예방을 위해 위급시 대처방법까지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일본 업체들이 제시한 방법에 따르면, 중창의 부식이 발견됐을 때는 루트를 변경해 신속히 하산할 것을 권한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예상보다 훨씬 빨리 파괴가 일어나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밑창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철사나 코드슬링, 테이프 등으로 응급조치를 하는 방법도 소개했다. 이렇게 임시변통한 경우 바닥창의 마찰력이 떨어져 미끄러지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관리와 보관방법에 따라 수명 좌우

자동차 타이어와 마찬가지로 등산화를 구입할 때도 구형 모델이나 제고품인 경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특히 PU 중창 제품의 경우 얼마 신지도 못하고 파손될 가능성도 높다. 가능하면 최근에 제작된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장비점이나 제조업체도 등산화를 판매할 때 수명을 고지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 일본의 안내문에 표기된 중창 파손시 대처방안과 관리 및 보관 방법.
최근 출시되는 등산화 중 많은 수가 PU를 대체하는 소재인 파일론(PHYLON)을 사용하고 있다. 압축된 EVA 스펀지인 파이론은 PU처럼 가볍고 충격흡수력이 뛰어나지만 가수분해에는 강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제품은 특유의 미려한 외관과 가공성, 부드러운 착화감 때문에 PU 중창을 사용하고 있다. 오랫동안 신을 등산화라면 구입시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PU 중창의 열화는 높은 열과 습기가 주요 원인이다. 따라서 사용 전후의 관리와 보관방법이 수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스키부츠 등에 열화억제제를 뿌리기도 하지만 등산화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대신 등산화가 습기와 열에 노출되지 않도록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행 후 오염된 등산화는 물에 씻어 이물질을 완전히 제거한 뒤 건조시킨다. 이때 직사광선이나 직접적인 열을 가하는 것은 부식의 원인이 되므로 피해야 한다.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진 곳에서 등산화를 말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건조된 신발은 발수 스프레이를 뿌려 관리한다. 등산화 보관시에는 비닐로 싸거나 박스에 넣어두는 것은 피해야 한다. 통풍이 잘되는 건조하고 서늘한 장소에 두는 것이 가장 좋다. 어떤 장비나 마찬가지지만 등산화 역시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수명이 달려 있는 물건이다.


/ 글 김기환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