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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 산에 가는 최효범 대장] “주5일은 기본이고 17일 연속으로도 산에 갔어요"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4. 6. 8.

[주5일 산에 가는 최효범 대장] “주5일은 기본이고 17일 연속으로도 산에 갔어요"

  • 글·신준범 기자 사진·이경호 차장, 이현우 미투리산악회 회원
  • 월간<山> 코스가이드 기사의 오랜 모델, 미투리산악회 20여 년간 이끌어

	일주일에 5일은 기본으로 산에 가는 최효범 대장. 산타클로스를 닮은 그의 수염은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 일주일에 5일은 기본으로 산에 가는 최효범 대장. 산타클로스를 닮은 그의 수염은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남들은 주5일 근무하고 주말에 산을 간다는데, 주5일 산에 가는 남자가 있다. 미투리산악회 최효범 대장(64)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안내산악회를 운영해 온 그는 일주일에 5일 산행은 기본이고, 17일 연속으로 산에 간 적도 있다. 주7일 산행도 잦은 편이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일요일은 산악회 정기산행을 운영한다. 일요일은 45인승 대형버스로 명산을 찾고, 수요일과 토요일은 12인승 승합차로 이동한다. 수요일과 토요일은 고정적으로 오는 이들이 있어 가족적인 분위기로 운영한다.


미투리는 안내산악회 사이에서도 산행이 세다고 소문이 났다. 최효범 대장이 산행을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해서 보통 13~15km 거리가 기본 당일산행이다. 미투리를 찾는 회원들도 6시간 산행은 기본이고 8시간은 산행해야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특징은 “알려지지 않은 명산을 가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가령 철쭉이 필 때 지리산 바래봉을 가면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그 이유다. 스스로 “사람 너무 많은 데를 싫어해서 그런 곳을 피해서 산행지를 잡는다”고 한다.


월요일은 신세계백화점 등산동호회 산행을 10년 넘게 이끌고 있다. 금요일은 한 달에 두 번 암장 사람들과 암벽등반을 하러 가고 한 달에 4일은 월간<山> 박영래 기자의 취재산행에 동행한다. 이밖에도 산행 같이 하자는 요청이 오면 언제든 나선다. 월·수·토·일요일은 고정적으로 산에 가고 나머지 요일도 산에 가는 일이 잦아, 주7일 산행도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었다.


경기도 광주가 고향인 그는 9남매 중 셋째로 20대이던 1970년대부터 산에 다녔다. 취미로 산에 다니던 그가 깊게 빠지게 된 건 월간<山> 때문이다.


“1980년대 초에 월간<山>을 접해서 읽게 되었죠. 특히 박영래 기자의 산행코스가이드 기사를 좋아해서 늘 기사에 나온 대로 산행을 했어요. <山>지에 등산 정보가 많잖아요. 그걸 보면서 독학으로 산을 다녔어요.”


주로 혼자서 산행을 했던 그가 산악회를 세운 것은 1995년이다. 부동산업을 했는데 당시 “사업이 엉망으로 기울고 아내는 집을 나갔다”고 한다. 때문에 “산이 아니었으면 미쳐버려서 노숙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모든 걸 다 잃은 그는 산밖에 없다고 생각해 안내산악회를 만들어 주5일 산에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산악회가 어려워요. 돈 벌겠다는 마음으로 산악회를 하면 집어치워야 되는 거예요. 용돈 정도로 만족하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죠. 생활은 어렵지만 산에 다닐 수 있으니 내가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돈 많은 부자보다 마음은 제가 훨씬 부자거든요.”



	히말라야 얄라피크 (5,732m)를 오르는 최효범 대장. 8,000m대 고산을 오르는 것이 그의 꿈이다.
▲ 히말라야 얄라피크 (5,732m)를 오르는 최효범 대장. 8,000m대 고산을 오르는 것이 그의 꿈이다.

미투리산악회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차 안에서 음주는 결코 안 된다는 것과 산에서 취사하거나 담배 피우는 것 역시 금지다. 문란한 이성관계도 허용치 않는다. 산행 때는 도시락보다는 가급적 행동식을 준비하라고 하며, 산에서 빨리 가기보다는 즐기며 가는 걸 원칙으로 한다. 또 산행에 나와 달라고 회원들에게 전화하는 일도 없다.


“대장들이 말이 대장이지 술집 웨이터 취급 받는 사람도 많아요. 저는 산이 배움의 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근데 이런 의미를 잊고 있어 아쉬워요. 대장의 립서비스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요. 산악회 하면서 나와 달라고 전화하는 것도 공해거든요. 제가 회원들을 무시하거나 아끼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내 방식대로 회원들을 존중하고 아껴요.”


여성 회원들이 많은 백화점문화센터 산악회를 10년 넘게 이끌었지만 이성문제로 소란스러웠던 적이 없다. 그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산악회 안에서 지킬 건 지켜야 한다”며 “건전한 산악회를 이끄는 것도 내 책임”이라고 한다. 또 “월간<山> 모델이라는 공인의식과 미투리산악회 대장이라는 책임의식”이 큰 몫을 한다.


“산악회를 해보니까 결정적일 때 의리 있는 건 여자더라고요.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 느낀 거예요. 평상시에는 남자가 더 강한 것 같아도 결정적일 때는 여자 회원들이 끝까지 남게 되죠.”


그는 20여 년간 안내산악회를 운영해 온 만큼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갔고 나름의 산악회 운영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기대를 안 하면 실망도 안 해요. 산에 다니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좀 될 만하면 나가서 산악회 차리고, 몰래 여기 있는 사람들 빼가고 하는 경우도 숱하게 봐왔죠. 결국 그렇게 해선 살아남지를 못하더라고요. 사람들이 끼리끼리 친해지면 산악회 방침에 어긋나는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해요. 산악회를 나갈 핑계를 찾는 거죠.”


미투리산악회는 하산 후 현지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다른 안내산악회의 경우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하산 후 직접 취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산에 가서 마을 주민들한테 인사하면 안 좋아해요. 산악회 사람들이 와서 농작물 건드리고 쓰레기만 버리고 가지 보탬이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그래서 주민들에게 욕도 안 먹고 지역경제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그 지역 식당에 가요. 산악회는 휴게소 가도 차 한 잔 안 팔아 주고 화장실만 쓰니까 천덕꾸러기예요. 이런 문화가 다른 산악회에도 퍼졌으면 해요.”



	가은산 둥지봉 산행 중 회원들의 사진을 찍는 최 대장.
▲ 가은산 둥지봉 산행 중 회원들의 사진을 찍는 최 대장. (사진 이현우)

	취재산행 후 뒤풀이를 겸한 식사를 하는 박영래 월간<山> 기자(오른쪽 끝)와 최 대장.
▲ 취재산행 후 뒤풀이를 겸한 식사를 하는 박영래 월간<山> 기자(오른쪽 끝)와 최 대장. 막걸리를 마시는 박영래 기자와 달리 최 대장은 음료수를 들고 있다.

월간<山> 덕분에 스타가 되었죠


그는 2010년 등산중앙연합회장으로 당선되어 나뉘어 있던 등산중앙회와 중앙연합회를 통합해 통합 단체의 초대회장이 되었다. 그러나 초대회장이 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자진 사퇴했다. 이에 대해 “옆에서 뒷말하는 사람도 많고, 내가 할 도리는 다 한 것 같아 사퇴했다”고 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흰 수염은 기른 지 10년이 넘었다. 우연히 며칠 수염을 못 깎았는데 회원들이 산에 다니는 이미지와 잘 어울리니 길러보라고 해서 그리되었다. 월간<山> 박영래 기자와 취재산행을 함께하면서 ‘코스가이드’에 자주 나오다 보니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산에 가면 ‘악돌이냐?’ ‘박영래 기자냐?’며 물어보는 사람이 엄청 많아요. 서울 사람들은 물론이고 지방 가도 많이 알아보거든요. 그래서 더 자세를 낮추고 몸가짐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월간<山>에 누가 될 수도 있잖아요. 사실 산꾼이라면 알아보는 게 당연한 거죠. 산악회 대장이라면 월간<山>을 봐줘야 산행실력도 늘고 정보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월간<山> 덕분에 스타가 된 거죠.”


월간<山>을 산 스승으로 생각하던 그에게 박영래 기자와의 만남은 잊을 수 없는 인연이었다. 기회가 되면 박영래 기자와 산행을 해보고 싶다고 늘 생각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귀한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10년 넘게 취재산행을 돕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취향이 정반대다. 최 대장은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 본인이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걸 넘어 산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취사를 하고 술을 먹는 사람들을 만나면, 가차 없이 호통을 친다. 그의 말을 빌면 “요즘은 성격이 부드러워졌지만 젊었을 적에는 산에서 멱살잡이 많이 했다”고 할 정도로 산행 중 술 담배와 음주는 용서치 않았다.


반면 박영래 기자는 주당이 많은 산악계에서도 국가대표급 주당이고 애연가였다. 산행 중 음주와 흡연은 하지 않았지만 산행 후 지방산꾼들과 폭음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는 옆에서 꾸준히 잔소리를 했고 덕분인지 박영래 기자도 많이 바뀌었다.


“이제 산에서 술 담배는 안 하세요. 어제도 담배 끊었다고 어찌나 자랑을 하시던지. 술도 며칠 안 먹었다고 자랑을 하셨어요.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고 내가 산에 미치게 해준 분이에요. 오래 모시고 다니고 싶은데 몸 아프실까봐 걱정이에요.”


그의 꿈은 히말라야 8,000m대 고산을 오르는 것이다. 에베레스트는 돈이 많이 들어서 엄두를 못 내고 입산료가 저렴한 8,000m 고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랑탕 얄라피크(5,732m)를 세 번 가서 두 번 등정하고 한 번은 폭설이 내려 포기했다. 2007년 임자체(6,189m)를 등정했고, 수리야피크(5,145m)와 메라피크(6,476m)를 등정했다.


히말라야는 직접 회원들을 이끌고 가기도 했지만 사진가 조진수씨와 같이 간 곳이 많다. 조진수 사진가와 산행스타일이나 마음이 잘 맞아 의견충돌이 없다고 한다.  



	양구 봉화산 암봉에 선 미투리산악회원들.
▲ 양구 봉화산 암봉에 선 미투리산악회원들. 바위산을 좋아해서 산행지도 주로 바위산으로 잡는 편이다. (사진 이현우)

그는 바위를 무척 좋아한다. 산행지를 대부분 바위산으로 잡고 모르는 바위산이 나오면 일단 가고 본다. 암벽등반은 권기열등산학교에서 배웠고, 집 근처의 실내암장을 일주일에 4번은 나가서 운동을 한다. 산행이 늦게 끝나도 오후 9~10시 암장에 가서 서너 시간씩 운동을 한다. 박영래 기자는 “최 대장 몸이 정말 좋다”며 “암장에서 젊은 사람들도 못 가는 루트를 풀어낸 게 한두 번이 아니다”고 한다. 또한 “여자를 돌 같이 보라는 내 지론 덕분에 최 대장이 여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박영래 기자는 최 대장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를 늘어놓는다.


“최 대장이 한 번은 월악산에 혼자 갔다가 바위에서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어요. 근데 질질 끌고 하산해서는 버스 타고 충주 와서 다시 서울 가는 버스 타고 올라와서 치료를 받았어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아프다고 난리 치거나 119구조대를 불렀을 거예요.


함흥철이라고 1960년대 유명한 국가대표 축구 선수가 있었어요. 이 사람이 2000년 설악산 용아장성릉에서 떨어져 죽었어요. 다른 안내산악회 회원으로 간 최 대장이 다 수습해 줬는데, 그 산악회 대장은 구경만 하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안 했어요.”


철저한 스타일의 그도 막을 수 없었던 사고는 있었다. 몇 년 전 가거도 섬산행에서 회원 한 명이 기념사진을 찍다가 절벽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그는 “등산로에서 떨어진 곳에 가서 사진을 찍다가 사고가 났다”며 “우리 산악회를 좋아하는 분이었는데 내 능력으로 어찌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새벽 2시 이전에 거의 잠을 자지 않는다. 예전부터 습관이 되어서 그렇다는데, 대신 낮에 잠깐 졸면 피로가 풀린다고 한다. 수면시간에 상관없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산에 가는 게 일상이지만 “힘들어서 산에 가기 싫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체력은 타고 난 것 같아요. 주7일 산에 가는 건 기본적으로 가능해요. 산행에 몸이 적응이 되어 있어서 그런가 봐요. 암장에서 젊은 친구들과 같이 해봐도 지구력이 필요한 코스에서 져본 적은 없어요.”


그는 60대 중반의 나이지만 노후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의 바람은 오직 더 많은 산을 오르는 것이기에 힘이 없어서 산을 못 가는 상황은 머리가 아파서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흔들림 없이 “산이 종교이자 직장이며 산이 아니었다면 오래전에 폐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주5일 산에 가는 남자, 최효범이다. (월간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