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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전 거 /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19. 삼척∼양양 <상>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2. 2. 21.

 

 

19. 삼척∼양양 <상>

■ 강릉 ‘주문진곰치국’의 ‘삼숙이 맑은탕’

 

강릉 교동의 해물식당 주문진곰치국의 조진호 숙수가 끓여낸 삼숙이맑은탕을 맛보고있는 허영만 대장과 이진원 대원. 대파와 마늘을 넣고 끓인 뒤 마지막으로 굵은 고춧가루를 살짝 뿌려 깔끔한 맛을 이끌어냈다.



난도질하는 칼바람에 발 감각은 떨어져 나가고
집에 두고 온 보온 덧신, 네가 사무치게 그립구나
아련한 추억 불러일으키는 해송숲 사이로 뻗은 철길
호젓한 한섬들목길은 나그네의 심금을 울리네

넌더리가 날만큼 집요하고 맹렬한 추위였다. 바다와 접한 영동 지방은 약하긴 하지만 해양성 기후(marine climate)의 특징을 지녀 대륙성 기후(continental shelf)의 영향권에 있는 내륙보다는 덜 추운 것이 일반적이다.

교과서에는 해양성 기후가 온화하며 기온의 연교차와 일교차가 적고, 연중 온도가 높은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집단가출 자전거전국일주 19번째 구간 출발점인 삼척 신남항은 바닷물이 얼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무자비한 한파가 휘몰아쳤다.

허영만 대장은 아까부터 “발가락에 감각이 없다”고 하소연이다. 재킷 속에 우모복을 껴입은 상체와 내복 한 겹을 추가로 더 입은 하체는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그러나 양말에 자전거 신발뿐인 발은 추위에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허대장 뿐 아니라 멤버 모두 발가락이 떨어질 것 같은 고통을 감내하며 달리고 있다. 자전거 전용 보온 덧신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 이런 상황에서 강한 북서풍은 설상가상 체감온도를 밑도 끝도 없이 끌어내렸다.

● 무자비한 강추위에 언 몸, 삼척선 철도의 절경으로 달래다

장호항 계류장에는 강풍에 조업을 포기한 어선들이 그득하다. 꽁꽁 얼었던 몸은 근덕면 궁촌리와 부남리 사이의 가파른 고개들을 오르는 동안 겨우 풀렸다. 비로소 신발 속 발가락의 존재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맹방, 하맹방을 지나고 삼척시가지를 벗어나 작은 후진 해변을 지나면 동해안의 해변도로는 표정이 살짝 바뀐다.

이런 길의 표정 변화를 주도하는 테마는 삼척선 철도. 삼척선은 동해역∼삼척역 사이에 부설된 단선철도다. 1936 년 동해선 건설과정에서 시멘트를 수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12.9km의 기찻길이다.

겨울바다와 그 옆을 지나는 철로…. 동해의 해안선을 따라 울창한 해송 숲 사이로 뻗어있는 철로 위를 철컥철컥 기차가 달리는 모습에는 아련한 추억을 일깨우는 그 무엇이 있어 집 떠난 자전거 나그네들의 감성을 한 없이 자극한다.

통일호가 달리던 삼척선은 승객이 줄어들자 1991년 여객칸을 없애고 화물전용으로 운영하다 2007년 동해역과 삼척역 사이에 추암역, 삼척해변역이 들어서며 강릉∼삼척 간 관광용 바다열차로 재탄생했다.

주말을 맞아 겨울바다를 보러 온 가족들과 젊은 커플여행객들이 열차를 타고 가다 철로 옆으로 달리는 우리의 자전거행렬을 보고 손을 흔들어준다.

날씨는 말도 못하게 춥지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두터워진 햇볕이었다. 바람막이가 있는 양지 바른 곳에서 다리쉼을 할 때면 등짝에 내리쬐는 볕이 따스하다.

철도는 해군 1함대가 있는 동해항에서 내륙 쪽으로 크게 방향을 틀었다가 감추해변부터 다시 해안으로 근접했고 우리의 자전거 코스도 철도를 따라 이어졌다. 삼척에서 묵호 구간은 대형 항만과 공단, 군사시설로 인해 지금까지 지나온 해안도로에 비하면 다소 살풍경이지만 한섬들목길 같은 명품 오솔길이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한다.

● “얼어죽고 싶어?” 한파경보 속 야영 준비하다 핀잔만

한섬들목길은 동해항을 빠져나와 천곡동 한섬해변에서 묵호 가세마을까지 약 2km 남짓한 짧은 구간. 하지만 아름다운 해송숲 사이로 난 호젓한 길이 심금을 울린다.

소나무의 우듬지를 스쳐가는 계절풍의 어쿠스틱한 음향과 나뭇가지를 뚫고 들어온 늦겨울 볕이 길 위에 어른어른 몽환적 그림자를 드리운 길을 자전거로 지나면 어떤 초현실의 터널을 통과하는 기분이 든다.

어달, 금진의 바닷바람에 식었던 몸이 정동진으로 가는 고갯마루에서 다시 데워져 등명, 안인진까지 쾌속으로 달리고 나니 짧은 겨울 해는 히말라야인 듯 눈을 하얗게 뒤집어쓴 대관령 뒤로 넘어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1. 추암 직전의 해안도로 풍경. 춥지만 화창한 날씨였다. 바다에는 강풍을 피해 대형 화물선들이 닻을 던져 묘박하고 있다.
2. 남항진 부근의 병산 솔숲에서의 야영. 혹한기 야영의 필수품인 핫팩에 넣을 물을 끓이고 있다.


한파경보 내려진 강릉서 야영지 수소문
돌아오는 답은 ‘얼어죽고 싶어 한뎃잠 자냐’ 핀잔만
자연산 삼숙이로 끓인 탕에 쌓인 한기 녹이고
텐트 밑 톱밥 두둑이 깔아 오늘도 길위에 몸 누인다

해가 기울며 기온은 급속도로 떨어진 가운데 나그네들이 객지에서 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시간. 어딘가 이 찬바람을 막아줄 곳을 찾아 야영지를 찾아야한다.

집단가출팀과 인연이 깊은 강릉 최기순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적당한 야영지를 묻자 대뜸 “얼어 죽겠다는 얘기냐?”는 힐난조의 반문이 날아온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각 강원영동지방에는 강풍경보와 함께 한파경보가 내려졌다. 한파 경보란 주의보 보다 한 단계 높은 것으로 아침 최저기온이 전날보다 15도 이상 떨어지거나 이틀 이상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5도를 밑돌 것으로 예상될 때 발효된다.

최기순 선배 역시 대학 산악부 출신으로 야외에서 갖은 상황을 다 겪어본 베테랑이지만 이런 추위에 자전거를 타고 와서 한뎃잠을 자겠다는 우리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 강릉 ‘삼숙이 맑은탕’, 3년 자전거 여행 국물 톱5

마침 남항진을 못 미쳐 병산에서 바람이 불지 않는 솔숲 속에 널찍한 통나무집 조립현장을 발견하고 책임자인 대목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흔쾌히 텐트를 쳐도 좋다고 한다. 그 사이 한달음에 달려온 최기순 선배가 다짜고짜 우리를 차에 태우고 강릉 시내로 내달렸다.

최선배가 우릴 몰고 간 곳은 교동의 ‘주문진곰치국’이었다. 문어숙회, 밀복회, 털게찜…. 행여 너무 알려져 외지인들의 손을 타면 맛이 변할 것을 우려해 강릉 원주민 식도락가들이 쉬쉬하며 먹는다는 귀한 음식들이 줄줄이 나온다.

바닷가 식당답게 싱싱한 해산물이 하루 종일 추위와 대결하며 페달링을 한 멤버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식사의 대미는 삼숙이 맑은탕이 장식했다. 삼식이, 삼세기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진 삼숙이는 작은 아귀처럼 생긴 생선이다.

곰치와 함께 동해안의 겨울철 생선 중 국물 맛이 깔끔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삼숙이를 대파와 마늘 정도로 부재료를 극도로 절제해 끓여낸 맑은탕이 목을 넘어가자 쌓였던 한기가 단번에 봄눈 녹듯 사라졌다.

해안길로만 햇수로 3년째 자전거 여행 중인 집단가출 자전거식객들로서는 서해부터 남해까지 해산물로 만든 국물을 수도 없이 먹어봤지만 이날 삼숙이 맑은탕은 곰치, 장어, 성게미역국, 살조개탕과 함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베스트였다.

국물 베스트5의 공통점을 찾자면 양식이 안 되는 자연산 해물을 식재료로 쓴다는 사실인데 삼숙이 역시 양식은커녕 다른 생선을 잡는 그물에 가금씩 얻어걸리는 물고기였다.

저녁을 든든히 먹어 북극의 추위도 견딜 것 같은 기세로 씩씩하게 야영지로 돌아와 보니 역시 춥긴 춥다. 텐트 밑에 솔잎과 함께 목조현장인 덕분에 지천인 톱밥을 두툼하게 깔고 끓인 물을 핫팩에 담아 침낭 안에 집어넣고 그 미약한 온기에 의지해 자리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한파 속의 하늘은 너무도 맑아 별들이 그야말로 쏟아질 듯 아름다웠다. 별똥별 하나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불꼬리를 남기며 떨어진다.

“야, 철웅아. 우리가 왜 이렇게 추운 날 따뜻한 집 놔두고 바깥에서 잠을 자고 있는 거냐?”

바로 옆자리에 1인용 텐트를 치고 홀로 누운 허영만 화백이 나지막한 소리로 묻는다. 글쎄… 정말 우리는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왜 이러고 있을까? 그 새삼스런 질문에 대한 답은 저 아름다운 밤하늘과 코끝이 싸늘한 공기에 있었다. 10분만 가면 모텔, 호텔, 펜션이 수두룩하지만 그 콘크리트 박스 안에서는 절대 지금 이 순간처럼 대자연과 긴밀히 연결된 채 잠들 수 없는 것이다.

바람은 밤새 우리가 누운 솔숲 주변에서 사나운 소리로 웅웅댔지만 그 소리는 이미 우리에게 기분 좋은 자장가에 다름 아니었다.

글·사진|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timbersmith@anver.com

[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허영만이 그린 한 컷 풍경

 

 


자전거식객들에게 객지가 객지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각 지역에 살고 있는 현지 집단가출 멤버들의 따뜻한 우정 덕분이다. 서해안 남해안을 도는 동안 이승하, 유병현, 전필수, 박광식, 조수남, 김영식 등 수많은 지인들이 마중하고 배웅했다. 강릉에서는 집단가출 강원도지역 터주대감 최기순 선배가 버선발로 달려 나와 맛있는 삼숙이 맑은탕으로 두터운 의리를 증명(?)했다.하지만 최선배의 의리는 거기까지. 한파경보가 내려진 밤을 우리와 함께 야영할 엄두는 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병산 솔숲에서 텐트와 침낭에 의지해 야영하던 밤, 최선배의 잠자리가 결코 편치 못했을 것이다. <삽화=허영만>

■ 동해안 해안선 달리는 ‘바다열차’


강릉∼삼척의 바다열차는 푸른 동해와 울창한 송림 사이를 달리는 낭만의 기차다. 기찻길과 기차는 동해안 집단가출 자전거코스의 호젓함을 더해주는 절묘한 오브제였다. 스포츠동아DB


동해안 해안선을 달리는 바다열차는 동해 삼척지역의 명물로 탑승객들이 바다를 잘 볼 수 있도록 전 좌석을 측면방향으로 배치했다. 창문도 일반열차와 비교해 훨씬 크게 만들었다. 특실과 일반실, 프러포즈실로 구분되는 각 칸마다 분위기와 테마가 다르다.

1호차는 개별좌석으로 넓고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고 2호차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커플석으로 부부, 연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둘 만의 특별한 시간을 만들고 싶으면 칸막이로 프라이버시를 보장한 프러포즈실을 이용하면 된다.

삼척역에서 삼척해변역, 추암역, 동해역, 묵호역, 정동진역, 강릉역에 도착하는 열차는 연중 운행된다. 특실1호와 2호는 1만 5000원, 일반실은 1만 2000원이며 총 3석뿐인 프러포즈실은 2인 기준 5만원이다. 프러포즈실을 이용하면 와인, 초콜릿을 선물하며 기념촬영도 해준다.

[스포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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