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 전 거 /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18. 포항∼삼척 (하)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2. 2. 8.

 

18. 포항∼삼척 <하>


죽변항 어시장의 건어물전에서 만난 커다란 가오리. 겨울은 낮은 기온과 습도 덕분에 생선을 말리기에 적당한 계절로서 생선은 말릴 경우 제3의 오묘한 맛을 낸다‘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군대(특히 수송부대)나 공장 등 기계를 다루는 곳에서 눈에 가장 잘 뜨이는 곳에 커다랗게 써놓는 문구다.

기계장치가 고장 없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고, 느슨해진 부분이 없도록 볼트, 너트를 단단히 조이고, 운동 부위에 윤활유를 적절히 발라 뻑뻑하지 않고 매끄럽게 움직이게 하라는 뜻이다.

물론 이는 반드시 기계에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다.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은 책상머리에 걸린 작은 칠판에 분필 글씨로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를 적어두고 있다고 한다.

울진 못미처 망양 부근의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풍경. 멀리 야트막한 동산의 양지바른 사면에 작은 어촌이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동해안의 해안도로는 잊을만하면 가끔 하나씩 언덕이 나타나 주행 의욕을 오히려 북돋아준다.


집단가출 자전거 전국일주는 자전거 입장에서 보자면 몹시 가혹한 과정이다. 먼 거리를 장시간 달려야하는데다 항상 평탄한 아스팔트가 아니라 때때로 논둑길, 밭둑길, 자갈길, 모랫길 등 험로 구간도 돌파해야한다. 때문에 사소한 고장은 불가피하고 일상적인 일.

자전거 전국일주가 16개월째 계속되는 동안 멤버들은 반 전문가가 되어 어지간한 공구와 부속은 모두 갖고 다니며 직접 수리를 한다.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튜브의 펑크를 때우거나 끊어진 체인을 다시 연결하고 변속기를 조정하는 것은 이골이 났다.

그러다보니 평소에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라는 금언을 무시하고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대처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 ‘닦고 조이고 기름치기‘ 소홀, 값비싼 대가 치러

하지만 이번엔 대책 없는 부분이 말썽이 났다. 축산항을 약 3km 남겨둔 20번 지방도로 위에서 페달이 덜그럭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에 출발할 때부터 오른쪽 페달이 느슨해진 것을 어렴풋이 느꼈으나 ‘무슨 큰일이 있겠나’ 싶기도 하고, 이른바 ‘귀차니즘’이 발동해 20km를 내쳐 달리는 동안 덜 조여진 페달의 강철 볼트가 알루미늄 크랭크의 암나사를 갉아 페달이 훌렁 빠지기 직전이 되어버렸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발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자전거 페달을 조이기 위해서는 전용 렌치가 필요한데 우리가 달리는 해안도로에는 바이크숍은 물론 그 흔한 카센터도 없기 때문이었다.

왼발로만 어기적어기적 페달링을 하며 축산에 도착해 마침 자전거 수리점을 발견했다. 간판도 변변히 없이 유리문 한 쪽에 ‘두발병원’이라는 손 글씨 상호를 적어놓은, 요즘 보기 드문 옛날식 자전차포. 두발병원의 두발은 두 개의 발, 즉 이륜차 전문 수리점이라는 뜻이다.

자전차포에는 수리에 필요한 모든 공구가 다 있었지만 뭉개져버린 나사산을 되살릴 방법은 없었다. 결국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것을 소홀히 한 대가로 자전거는 주행 불가 판정을 받고 지원차량에 실렸고 자전거 대신 차를 운전하며 허영만 화백과 다른 대원들이 보란 듯 신나게 달리는 것을 구경할 수 밖에 없었다.

산이 바다와 거의 맞붙은 병곡면부터 후포까지는 해안이 비좁은 탓에 도로를 건설할 공간이 모자라 호젓한 동해 옛길과 7번국도가 어지럽게 교차하다가 후포부터 7번국도가 내륙으로 물러나 바다를 낀 그림 같은 동네길이 이어진다.

● 따스한 인정 듬뿍, 진복리 해녀들의 송어구이

그러나 단오제로 유명한 평해읍의 월송리 논둑길을 가로지른 뒤 구산항을 지나 울진공항의 북쪽 끝으로 빠져나오면 다시 불가피하게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살벌한 7번국도로 들어서야한다. 부분적으로 국도 진입을 피할 수 없는 이 구간이 아마도 동해안 자전거 여행자들에게는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곳이 아닐까 싶다.

이 구간에서 가능한 한 안전하고 쾌적한 라이딩을 하고자 좁고 험하더라도 바닷가 쪽 방향의 샛길을 추구했으나 야속하게도 길은 번번이 끊겨 하릴없이 되돌아 나와야 했다.

다행히 울진군 원남면 오산항부터 길은 다시 바다와 만난다. 지금까지 지나온 12번 해안도로는 어느새 917번으로 바뀐 채 동해안의 절경을 품고 뻗어있다.

죽변 선창가에서 사전정보 없이 오로지 감(感)에 의존해 물메기탕을 제대로 끓이는 집을 찾은 허영만 대장이 고생한 보람이 있다며 즐거워하고 있다. 김치를 넣어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진복리 바닷가를 지날 때 방파제 아래에서 솔솔 피어오르는 연기에서 맛난 냄새가 풍기기에 홀린 듯 백사장으로 내려서니 50∼60대 해녀 아주머니들이 추운 바다에서 잠수작업을 마치고 꽁꽁 언 몸을 녹이느라 피운 모닥불 위에 숭어를 굽고 있다.

호기심에 쭈삣거리며 다가가자 맛을 보라며 한 마리를 건네준다.

석쇠도 없이 구워 새카맣게 된 숭어를 쪼개자 속살에서 김이 무럭무럭 난다.

영하의 추위, 칼바람이 부는 바닷가에서 먹는 생선 구이는 맛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따스한 정이 느껴져 감동이었다.

점심때가 지났는데도 대장 허영만 화백은 자전거를 멈출 생각을 않는다. 집단가출 자전거팀의 식사시간, 특히 점심은 좀 늦은 편이다.

갈 길이 멀다는 일종의 강박이 팀을 지배하는 분위기여서 가능하면 계속 달리다 대원들 중 누군가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 그때서야 식당을 찾는 식. 특별히 찾아가봐야 할 음식점이 먼 거리에 있을 경우에도 자연스럽게 식사시간은 늦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날처럼 오후 1시가 넘어 2시가 다 되어가도록 점심을 거른 채 달리는 것은 드문 경우다.

 

 

허영만 대장의 미각 본능 덕분에 죽변에서 늦은 점심으로 물메기탕을 먹던 그날, 사실 아침을 굶었다. 오랜만에 야영 대신 온천장의 뜨끈한 방에서 자다보니 게으름을 부려 평소보다 늦게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탓도 있지만 허 대장이 점심에 맛있는 물메기탕을 먹을 텐데 아침은 그냥 건너뛰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죽변 선창가 식당의 물메기탕은 지금껏 먹어본 것 중 최고였던 것이 사실이다.


● ‘식객’ 허영만 화백 탁월한 선택…물메기탕(물곰탕)

점심이 늦어진 것은 허영만 화백의 물메기탕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산란기인 12월부터 3월이 제철인 물메기를 이번 달 자전거 여행에서 반드시 먹어야할 음식으로 꼽은 허화백은 자전거를 달리며 애타게 물메기탕을 내건 식당을 찾았으나 여의치 않았다. 물메기는 다른 고기를 잡으려던 그물에 한두 마리 끼어 잡히는 것이 전부인지라 비교적 귀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딱히 감(感)이 오는 식당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원남면을 지나 근동에서는 큰 도시여서 식당이 즐비한 울진까지 그냥 지나치자 대원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장님∼ 배고파 쓰러지겠어요. 그냥 아무거나 먹죠.”

그러나 한번 물메기에 꽂힌 허대장은 대꾸도 없이 더욱 빨리 달릴 뿐이다. 대장의 자전거가 멈춘 곳은 울진에서 10km 더 북쪽의 죽변. 선창가 골목을 두리번거리던 허 대장은 한 허름한 생선찌개 전문 백반집을 찬찬히 살피더니 확신이 선 듯 앞장서 들어간다.

점심때가 지난지라 식당엔 손님이 우리 밖에 없어 음식은 금방 준비됐다.

해초무침 몇 가지와 말린 가자미조림 등 반찬과 함께 나온 물메기탕이 식탁 위에서 보글보글 끓자 추위와 허기에 시달리던 대원들의 숟가락이 앞 다퉈 찌개 냄비로 향했다.

묵은지를 넣어 칼칼하게 끓여낸 탕 맛은… 놀랄 만큼 기막혔다. 무엇보다도 냉동이 아닌 활어를 바로 요리한 덕분에 물메기 특유의 연두부처럼 부드러운 살이 입안에서 그야말로 녹는다. 허영만 화백이 대원들의 불만을 무릅쓰고 점심시간을 한참 넘기고, 5∼6개의 식당을 그냥 지나치면서 감이 오는 식당을 찾은 끝에 물메기탕을 제대로 끓이는 집을 찾은 것이다.

평소 같으면 오후 라이딩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절대 과식하지 않던 대원들이 공기밥을 추가해가며 냄비 바닥을 긁는 것을 지켜보며 허화백은 “어떻냐? 이 식객의 뛰어난 선구안이?”라는 듯 득의만만한 미소가 떠올랐다.

글·사진|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물메기에 대한 오해와 진실

입력 2012-02-07 07:00:00
  

 

못생겨도 맛은 좋아!
겨울손님 물메기 한그릇
쓰린 속도 달래주네

그물에 걸려도 버려졌다는 정보도 엉터리


물메기(사진)는 표준어로는 꼼치다. 동해, 남해 서해 모두에서 두루 잡히는데 지역마다 이름이 달라 곰치, 물곰(동해), 미거지, 또는 물미거지(남해), 잠뱅이, 물잠뱅이(서해) 등 여러 개다.

그 중에서도 물메기가 비교적 정통성 있는 명칭인 것은 자산어보에 해점어(海鮎魚)로 기록되어있기 때문이다. 점어(鮎魚)는 메기이니 우리말로 풀자면 바다메기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에 따르면 물메기가 예전에는 버려졌던 못생기고 맛없는 물고기였다는 것은 엉터리 정보. 자산어보에 “맛이 순하고 술병에 좋다”고 되어있는 것으로 미뤄 조선시대에도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고 직접 물메기가 잡히는 지역을 취재해보니 어떤 어부이든 물메기가 그물에 걸려오면 바다에 던져 버린 적은 없더라는 것이다.

12월에서 이듬해 3월이 산란기로 이 때가 물메기의 제철이다. 동해지역에서는 잘 익은 김치를 넣어 끓이고 남해, 서해에서는 무, 대파, 마늘만 넣어 맑게 지리로 즐긴다.

[스포츠동아]

'자 전 거 > 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 삼척~양양 <하>  (0) 2012.03.06
19. 삼척∼양양 <상>  (0) 2012.02.21
18. 포항~삼척(상)  (0) 2012.01.25
17. 제주도2  (0) 2011.12.20
16. 제주도  (0) 2011.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