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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전 거 /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18. 포항~삼척(상)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2. 1. 25.

 

붉은대게 만찬. 살아있는 게를 민물에 담가 기절시킨 뒤 곧바로 삶아 상에 올린다. 왼쪽부터 경북요트협회 김종찬 전무이사, 32창성호 김대경 선주, 허영만 화백.

 

 

16. 포항~삼척

밥 먹은지 2시간만에 또 허기
범인은 강구항 제철 대게
새벽부터 식도락가 인산인해
하저의 과메기 냄새도 못참아


“이거 뭐 뱃속에 거지가 들었나? 당최 시도때도 없이 허기가 지는 걸?”

동해안의 1월 삭풍을 뚫고 페달링을 하던 집단가출 자전거전국일주팀의 수괴(?) 허영만 화백이 숨이 가쁜 와중에도 한탄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허화백의 말을 듣고 보니 점심시간은 아직 멀었는데도 배가 고프다

● 참기 힘든 유혹(?), 강구항 ‘대게 시즌’

추운 날씨에 자전거를 타는 것이 열량 소비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따뜻한 아침밥을 든든히 챙겨먹은 지 불과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일행들이 공통적으로 허기를 느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수께끼 같은 허기의 원인을 해석한답시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전거에 탄 채로 객쩍은 농담이 오간다. 마지막으로 기생충 구제약을 먹은 게 언제냐는 둥, 기생충에 감염되면 양분을 기생충에게 빼앗겨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더라는 둥….

하지만 괴이쩍은 허기의 원인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동해 북상 코스 곳곳에 즐비한 음식들. 영덕 강구항을 지날 때는 대게가 눈과 코를 자극했다. 강구항 선창을 따라 늘어선 식당들은 대게를 삶는 솥을 식당 앞에 설치해두고 있는데 솥에서는 대게의 맛난 내음이 그대로 농축된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 군침을 흘리게 만든다. 요즈음 강구항은 점심 무렵부터 전국 각지에서 동해안의 겨울철 별미 대게를 먹기 위해 몰려든 식도락가들로 인해 항 주변이 온통 주차장으로 변한다.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한 외지 방문객들은 항 외곽에 차를 세우고 오십천 다리를 걸어서 건너느라 긴 행렬을 이루곤 한다.

집단가출 멤버들이 강구항을 통과할 때는 이른 시각이어서 한산했지만 대게를 삶아 전국 방방곡곡으로 택배를 보내는 작업은 새벽부터 시작되어 솥에서 오르는 김에 항구 전체가 휩싸여 명절날 떡 방앗간을 방불케 했다. 대게의 강렬한 유혹을 뿌리치고 묵묵히 길을 가는 것은 가히 초인적인 자제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동해안을 북상하는 것은 어떻게든 7번 국도를 피하는 것이 관건이다.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영동 해안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7번 도로는 자동차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코스여서 자전거 여행자들로서는 극도로 꺼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구항이 있는 오포리에서 7번 국도를 빠져나와 바닷가에 바싹 붙어있는 해안의 20번 지방도로로 나오자 푸른 동해가 비로소 가슴 속으로 온전하게 들어온다. 갯벌이 발달한 서남해안과는 달리 동해는 해안선이 모두 바위 아니면 백사장이고 바다는 손을 닿으면 잡힐 것 같은 지근거리에서 철썩이고 부서진다.

자전거 전국일주는 고된 일이지만 여정 곳곳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광 덕분에 페달링의 고통을 잊는데 동해안 루트는 그런 면에서 힘들다는 생각을 할 겨를을 주지 않았다. 아담하고 정겨운 작은 어촌들이 띄엄띄엄 자리 잡은, 눈부신 풍광의 한적한 바닷길을 따라 하저, 오보, 경정으로 쾌속으로 전진하는 것은 절로 휘파람이 나올 만큼 즐겁다.

20번 지방도의 또다른 이름은 영덕대게로이다. 창포말등대 부근의 전망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사연많았던 요트 항해를 추억하는 집단가출 대원들.


● 대게 이어 이번엔 과메기와 오징어의 유혹이…

마을을 끼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20번 지방도로는 대개 평탄하지만 땀을 낼 수 있는 언덕이 적시에 나타나 겨울바람에도 체온을 잃지 않고 기분 좋은 라이딩을 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길가 음식들이 주는 시각적, 후각적 자극은 여전히 괴롭다. 영덕에서는 대게가 유혹하더니 하저를 지날 때는 과메기가 우리를 붙잡는다. 산골마을 처마에는 시래기가 매달려 있지만 이 동네 민가의 처마에는 집집마다 시래기 대신 과메기가 매달려있다.

“과메기는 요래 요래 배 쪽를 위로 가게 해서 바닷바람에 말리야 진짜배기입니더.”

과메기를 손질하던 할머니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조분조분 설명을 해주신다. 배 부위를 위로 가게 거꾸로 묵어 말리는 것은 내장의 삭은 기운이 살이 많은 등 쪽으로 흘러내려오게 해야 꼬름한 진짜 과메기 맛을 구현해낼 수 있기 때문이란다.

대량 유통되는 과메기는 건조시간 단축을 위해 배를 갈라 넓게 펼쳐둔 것으로 발효가 미흡한 탓에 맛이 덜한데 이처럼 어부의 집 처마에서 소량으로 말리는 과메기는 통째로 말리기 때문에 숙성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멸치 젓갈을 연상케 하는 특유의 향미와 촉촉한 맛이 이 토속적인 먹거리의 내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영덕군 하저리를 지나다 길가에서 만난 청어 과메기. 두름에 묶인 과메기들이 모두 배 부분이 위를 향하게 되어있다.


 

 

 

후포에서 홍게의 맛에 푹 빠져 저녁식사 시간이 길어진 탓에 야영을 포기했다. 실은 따뜻한 식당의 구들방에 앉아있다 보니 겨울 칼바람을 견디며 텐트를 치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15분 거리의 물 좋기로 유명한 백암온천. 온천탕 영업 종료 시간을 20분 앞 둔 8시40분에 도착했으나 성미 급한 온천탕 일꾼들은 이미 탕의 물을 빼고 있었다. 탕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도 물은 빠르게 빠져 처음엔 정자세로 앉아있던 우리들은 온 몸을 담그기 위해서 점점 광어처럼 납작 엎드려야 했다. <삽화=허영만>


달콤짭조름한 홍게의 유혹에 그만…

후포의 싱싱한 홍게 만찬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아
식객 허영만도 군침 꿀꺽
따뜻한 구들방 온기…야영 포기!


맛보기로 얻어먹은 과메기 한 점의 곰삭은 뒷맛에 입맛을 쩝쩝 다시며 페달링을 이어나가자 드디어 축산항의 흰색 등대가 보인다.

축산항은 허영만 화백은 물론 멤버 모두에게 만감이 교차하는 사연 깊은 곳이다. 2년 전 이맘때 돛단배 집단가출호를 타고 항해 중 삼척을 겨냥하고 출항했다가 이 바다에서 엄청난 풍랑을 만나 그야말로 죽음의 피항을 감행한 끝에 도착한 곳이 축산항이기 때문이다. 5m의 거대한 파도에 시달리다 축산항 등대 불빛을 발견하고 사투 끝에 온몸이 흠뻑 젖어 항구에 들어왔을 때, 단단한 땅을 다시 밟은 감격에 겨워 말을 잊은 채 서로를 얼싸안았던 치열한 기억들…. 현재 자전거를 함께 타고 전국 해안선을 일주중인 집단가출 멤버들은 허영만 선장과 함께 당시 바다에서 집단가출호의 세일러로서 백척간두급 위기의 시간을 극복해냈던 사람들이다.

축산항을 뒤로하고 덕천마을에 이르자 과메기는 사라지고 집집마다 온통 오징어다. 집 안마당은 물론 도로변에도 건조대가 있고 갓 잡은 듯 물기가 촉촉한 오징어가 널렸다. 덜 마른 오징어는 흰색이어서 멀리서 보면 흰 빨래를 널어놓은 듯, 혹은 옛날 국수 공장에서 뽑아낸 국수를 말리고 있는 것 같다.

대진, 고래불의 보석 같은 바닷길을 날듯이 달려 후포항에 도착하자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기온이 급강하한다. 날 추운 객지에서 땅거미가 지면 집 떠난 나그네들로서는 쓸쓸해지기 마련. 그럴 때 누군가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진실로 마음이 푸근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전거를 타고 온 나그네들을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갑게 맞아준 사람들은 후포에 본거지를 둔 경북요트협회 김종찬 전무이사와 김대경 씨였다. 김전무이사는 집단가출호 항해 당시 동해 항로에서 물심양면 도움을 줬던 은인이고 김대경 씨는 홍게잡이 통발어선 32창성호의 선주다.

평해 44km, 영해 20km. 이정표에 등장하는 지명들이 낯설어 먼곳까지 왔음을 실감한다. 시원스레 펼쳐진 동해가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드는 아름다운 길.


● 행복한 보상…후포항의 ‘홍게 만찬’

저녁 식사 메뉴는 홍게. 영덕을 지나오며 대게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과 함께 할 홍게 만찬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잡이로 잔뼈가 굵은 김대경 씨로부터 홍게 이야기를 듣는다. “게 맛을 아는 사람이라카모 대게보다는 붉은 대게를 택합니더.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해서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고 과식해도 탈나는 법이 없으니까….”

한마디로 “늬들이 게맛을 알어?”라는 식의 김씨의 얘기는 흥미로웠다. 대게가 수심 400m대에 사는데 비해 홍게는 1000∼2000m 심해가 서식지점. 영상 2도 이하의 차갑고 깨끗하고 수온변화가 적은 심해에 살기 때문에 물 밖으로 꺼내면 금방 죽어버려 대게처럼 활어 상태로 유통할 수 없었으므로 경매가가 대게에 비해 낮았다. 게다가 죽은 홍게가 도시로 흘러가 형편없는 상태에서 며칠씩 묵은 채 유통되는 바람에 ‘홍게=맛없는 싸구려 게’라는 인식이 대중에게 각인된 것도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활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수조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홍게는 새롭게 조명된다. 대게와 비슷한 생김새와 사이즈에 갑각 색깔만 붉은 기운이 도는데 맛은 대게보다 좋다는 사실이 식도락가들 사이에 알려지며 홍게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맛을 보니 대게에 비해 맛이나 육질 면에서 뒤질 것이 없을뿐더러 김씨의 설명처럼 게 특유의 비린내가 전혀 없는 달콤짭쪼름한 풍미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국내 홍게잡이배는 후포에 집중되어있다. 원조 논쟁이 치열한 대게와는 달리 홍게의 원조가 후포라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음식만화 ‘식객’의 작가로 음식에 조예가 깊은 허영만 화백도 현장감 넘치는 김씨의 홍게 얘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김대경 씨는 꼬박꼬박 홍게 대신 ‘붉은 대게’라고 지칭한다. 잘못 형성된 홍게의 이미지를 극복하고자 몇 년 전부터 공식 명칭을 ‘붉은 대게’로 통일해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밤이 깊자 포구에는 찬 바닷바람이 쌩쌩 불었고, 우리들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갓 삶은 홍게에서 쉽사리 손을 떼지 못했다.

글·사진|손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timbersmith@naver.com

[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홍게에 대해 알고 싶은 몇가지

입력 2012-01-25 07:00:00
  
홍게잡이 6일간 바다와 사투
키토산 덩어리…겨울이 제철


홍게잡이 조업은 여러 어업 중 노동 강도가 가장 극심한 것으로 손꼽힌다. 홍게가 있는 곳은 1000∼2000m 깊은 수심이므로 작업 현장이 먼 바다여서 배를 타고 이동하는 항해거리 자체가 길다. 또한 그물로 잡는 대게와는 달리 통발을 쓰는데, 통발을 놓고 걷어 올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한번 작업을 나가면 5∼6일은 바다에 떠 있어야 한다.

12km짜리 로프에 300개의 통발을 매단 것을 ‘한 틀’이라고 하는데 32창성호의 경우 스무 틀을 심해로 가라앉힌다. 미끼는 고등어나 다랑어 같은 비린내가 강한 생선 토막이다.

김대경 씨는 홍게잡이가 디스커버리채널에서 소개된 베링해의 킹크랩잡이(The Deadlest Catch)에 버금가는 작업으로 어지간한 체력과 인내력으로는 견디질 못하지만 작업이 힘든 만큼 선원들의 보수도 센 것이 홍게잡이라고 귀띔한다.

홍게는 7∼8월 두달을 제외하고는 항상 먹을 수 있지만 물론 겨울철이 가장 싱싱하고 살이 꽉 찬 제철이다. 대게에 비해 키토산이 훨씬 풍부해 가공 후 껍질은 사료나 화장품의 원료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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