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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캠핑,기타자료/수도권 명산 30선

(22) 사패산(賜牌山)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1. 10. 7.

 

<수도권 명산 30選>불·수-도·북 사이에 낀 막내山… 형님들 틈에서도 늠름하구나

(22) 사패산(賜牌山)

문화일보 | 엄주엽기자 | 입력 2011.10.07 14:41

 


의정부와 양주에 걸쳐 있는 사패산(552m)은 서울의 또 하나의 진산인 도봉산의 끝자락이면서 시작점이다. 사패산은 백두대간의 추가령에서 갈라져 남쪽으로 한강과 임진강에 이르는 한북정맥운악산에 이르러 끊어질 듯 잠겼다가 의정부에서 다시 불끈 솟아오른 첫번째 봉우리로, 포대·사패능선이 탯줄처럼 도봉산과 이어놓았다.

↑ 사패산은 ‘도봉산 제1전망대’라고 불릴 정도로 정상에서 도봉산 연봉을 한눈에 잘 바라볼 수 있다. 왼쪽부터 포대능선과 자운봉, 도봉주능선과 보문능선, 오봉이 뻗어 있다. 오봉 오른편 뒤쪽으로 북한산의 백운대·인수봉·만경대와 거기서 흘러내린 상장능선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김낙중기자 sanjoong@munhwa.com

하지만 예전엔 그 전체를 도봉산으로 불렀을 뿐, 언제부터 따로 떼어내 '사패산'이란 이름으로 불렀는지는 확실치 않다. 1980년대 중반 이전만 해도, 적어도 신문에서 이같은 이름이 나오지 않고, 독립적인 산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 주변에서 부르던 원래 이름은 갓바위산, 삿갓산 등이었는데, 정상 부근에 삿갓 모양의 거대한 '갓바위'가 있어 생긴 이름이다.

'사패산'은 따지고 보면 일반명사다. 사패(賜牌)란 임금이 왕족이나 공신에게 토지나 노비를 하사할 때 같이 주던 문서를 가리키며, 사패를 딸려 하사한 토지이면 사패전(賜牌田), 산이면 사패산(賜牌山)이라 불렀다. 예컨대, 구리 아차산의 윗골 북쪽에 있는 봉우리인 시루봉도 조선시대 때 남양 홍씨에게 내렸다 해서 '사패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지금의 사패산이란 이름은 조선시대에 선조가 여섯째 딸인 정휘 옹주를 유정량(柳廷亮)에게 시집보내면서 하사한 산이라고 하여 근래에 붙인 것이다. 그런데 선조실록에 이같은 기록은 없다. 그저 전해오는 얘기인지 모른다. 조선 초기 세조가 조카인 단종에게서 왕위를 찬탈한 뒤 한명회와 함께 세조의 즉위를 도운 일등공신이었던 권람에게 이 산을 하사해 거기서 유래했다는 얘기도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유래설 중 하나는 현대에 들어서 군사지도를 만들 때 이 산 정상이 조개모양 같다 해서 '사패산'으로 지은 것이 굳어졌다는 설이다. 군사지도 제작을 위해선 무명의 봉우리에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 터인데,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존재감이 없던 사패산을 널리 알린 것은 1990년대 후반 북한산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외곽순환도로를 내기 위해 사패산 구간에 편도 4차로 규모의 국내 최장 터널을 뚫으려고 할 때다. 개발이냐, 생태계 보존이냐를 놓고 이때처럼 논란이 심했던 공사도 없었다. 불교계와 환경단체의 반발로 2년여 동안 공사가 중단됐다가 결국 완공됐다. 당시에 대중적으로 사패산이란 이름이 정착되지 않았나 싶다.

그 즈음에 산꾼들에게도 사패산이 주목받기 시작했던 것 같다. 소위 '불·수·사·도·북'(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 5산 종주가 인기를 끌면서 사패산이 더욱 친근해진 것이다. 처음엔 '불·수·도·북'이라고 불렀다가 어느 순간 막내인 '사'를 슬며시 끼워넣은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때만 해도 사패산을 찾는 이들이 적어, 화장품 광고에서 따온 '산소 같은 산'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지금은 '바글바글'하다.

사패산 정상은 거대한 암반이다. 황금빛 석양이 암반에 비치는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예로부터 '금부용(金芙蓉)'이라는 별칭도 가졌다. 이백의 '망오로봉(望五老峰)'이란 시(詩) 중에서 중국 여산의 오노봉을 노래하며 '청천삭출금부용'(靑天削出金芙蓉·푸른 하늘에 금색 연꽃이 불쑥 솟았구나)이라고 읊은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사패산은 도봉산 연봉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사패산 정상에 오르면 아주 널직한 바위 방석을 타고 공중에 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도봉 쪽을 보면, 포대능선과 정상인 자운봉, 도봉주능선, 보문능선, 오봉이 좌우로 힘차게 뻗어 있고, 오봉 오른편 뒤쪽으로 삼각산의 백운대·인수봉·만경대와 거기서 흘러내린 상장능선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사패산 정상은 느긋하게 도봉의 연봉을 바라보는 자세로 앉아있다. 고개를 돌리면 중랑천 너머 수락산에서 불암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차량들이 사패산터널을 빠르게 들락거리는 서울외곽순환도로 건너에 일영봉, 형제봉, 계명산, 앵무봉, 북동 쪽으로는 불곡산, 천보산, 죽엽산, 용암산 등 의정부시를 둘러싼 봉우리까지 바라보인다.

산행 들입목은 의정부시 안골계곡, 범골계곡, 회룡골계곡 세 곳과 양주시 송추계곡, 원각사계곡 등 두 곳이 가장 선호된다. 전철 접근이 좋은 1호선 회룡역(회룡골 코스)이나 의정부역(안골계곡, 범골계곡 코스)이 요즘은 많이 이용된다. 계곡의 시원한 맛을 즐기려면 범골계곡, 안골계곡, 송추계곡이 좋지만 서쪽에 위치한 원각사 계곡도 음식점들이 적은 한적한 코스로 사랑을 받는다. 어느 코스든 3∼4시간 남짓이면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좀 섭섭하다면 포대능선을 거쳐 자운봉까지 가볼 수 있다. 그러면 좀 뻐근하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코스>

▲회룡역-회룡사-계곡-능선-사패산-안골계곡-안골유원지

▲회룡역-회룡사-석굴암-석굴암북쪽능선-사패산-안골유원지

▲송추계곡입구-회룡사거리-사패능선-사패산-원각폭포-원각사-송추계곡입구

 

 

여기, 아세요? 함흥서 돌아오던 태조가 머물렀다 하여 ‘回龍寺’
이성계·무학대사 전설 깃든 회룡사
▲  사패산 자락의 회룡사는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전설이 전해지는 유사 깊은 사찰이다.
전철 1호선 회룡역에서 내려 회룡계곡을 따라 약 1.5㎞를 오르면 회룡사를 만난다. 회룡(回龍)은 ‘용이 돌아왔다’는 범상치 않은 의미인데, 여기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전설전해진다. 태조가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에 울분해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함흥으로 간, 소위 ‘함흥차사’로 잘 알려진 회피생활을 하다가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있던 무학을 방문했다. 무학 역시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주산론(主山論)’으로 의견이 갈린 정도전의 미움을 사 이곳 토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태조는 여기서 며칠을 머물렀고, 이에 절을 짓고는 임금이 환궁한다는 뜻으로 그 이름을 회룡이라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1881년(고종 18)에 승려 우송(友松)이 쓴 ‘회룡사중창기’에 전하고 있다. 또 함흥에 내려가 있던 태조가 1403년(태종 3)에 환궁한 뒤 이곳에 있던 무학을 찾았으므로 무학이 태조의 환궁을 기뻐해 회룡사라 이름 지었다는 설도 있다.

앞서 이성계는 무학과 함께 창업성취를 위한 기도를 했는데, 이성계는 지금의 회룡사 부근 석굴암에서, 무학은 산등성이 가까이 있는 무학골에서 각각 기도를 드렸다. 그 뒤 이성계가 요동으로 출정하자 무학은 홀로 남아 작은 절을 짓고 손수 만든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그의 영달을 축원했다고 한다. 그 뒤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이곳으로 와서 무학을 찾아보고 절 이름을 회룡사로 고쳤다고 한다. 이 절의 창건에 관해서는 그러나 신라 때 지어졌다는 설과 조선 초에 창건되었다는 서로 다른 주장이 전해진다.
회룡사의 서쪽, 계곡 맞은 편에는 석굴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이곳은 백범 김구 선생이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기 전 한때 피신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 후 1948년 김구 선생은 이곳 석굴암을 다시 찾아 ‘석굴암 불 무자 중추 유차 김구(石窟庵 佛 戊子 仲秋 遊此 金九)’란 친필을 써 주었다. 석굴암 근처에 있는 큰 바위에는 김구 선생 필적 암각문이 남아 있다. 김구 선생이 암살 당한 후 주민들이 이곳 석굴암에 위패를 모셨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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