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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브랜드] 파이브텐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1. 1. 8.
 
우리 브랜드를 말한다
산을 넘어 도시로 진출하는 암벽등반의 전설

5.10은 바윗길의 난이도다. 클라이머들 사이에서 5.10급을 등반한다고 하면 제법 바위를 타는 중급자 이상으로 본다. 어느 실내암장이나 자연바위를 가도 5.10을 등반하는 바위꾼은 흔하다. 5.11 이상은 되야 상급자나 고수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그러나 등반사를 되돌아보면 ‘파이브텐’은 바위꾼들에게 상징적인 난이도였다.


▲ 파이브텐 신발 중 베스트셀러인 캠프포미드. 리지와 중장거리 산행 모두 가능한 멀티 슈즈다.
과거에는 사람이 오를 수 있는 바윗길의 난이도를 5.0에서 5.9까지 10단계로 나누었다. 암벽등반 기술이 없는 사람도 오르는 곳은 5.4 이하이며, 기본적인 기술을 요하는 길은 5.7 이하, 훈련과 파워, 숙련된 등반장비의 사용이 필요하다면 5.9 이하로 표기했다.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은 상징적인 난이도가 바로 5.10이다. 등급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호상사(대표 김인호)에서 수입하는 ‘파이브텐(FIVE TEN)’은 그런 뜻이다.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최고의 경지 말이다.

파이브텐은 이름만큼 우리나라 클라이머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바위꾼들에게 파이브텐은 전문적인 암벽등반 신발을 만드는 브랜드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북한산 인수봉에 가면 등반하는 이들 중 반 이상은 모두 파이브텐을 신고 있을 정도였다. 바위꾼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 바위, 특히 화강암에서는 “파이브텐 스텔스창이 제일 잘 붙는다”는 말이 나돌았다. 어느 클라이머에게 파이브텐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품질이 좋고 가격이 합리적이다”고 했다. 

파이브텐은 1985년 미국 클라이머 찰스 콜(Charles Cole)이 설립했다. 그는 인파이터 복서 스타일이었다. 맞으면서도 들어가서 정면승부를 벌이는 두려움 없는 바위꾼이었다. 1980년대 미국에서 400여 개의 신루트를 개척하는 놀라운 등반 성과를 올렸다. 이렇듯 등반에 푹 빠져 있던 그였기에 등반 중 자신이 느꼈던 여러 불편한 점을 극복할 암벽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요세미티의 미끄러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엘캡을 등반하며 암벽화의 접지력을 높일 필요성을 느꼈다. 미시간대학 MBA 과정을 마친 그였지만 서던캘리포니아대학에서 관련 공부를 하여 1986년 스텔스 밑창(Stealth rubber)을 개발했다. 

이후 파이브텐 암벽화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탁월한 접지력을 보였기 때문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혁명적인 스텔스창의 개발은 그전까지 오르지 못했던 수많은 고난이도 등반을 가능케 했다. 파이브텐이 등반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데 일조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바위꾼들에게도 스텔스창의 도입은 혁신적인 변화였다. 파이브텐 이전에도 유럽에서 들여온 암벽화가 있었지만 접지력이 좋지 않았다. 반면 스텔스창은 화강암이 많은 우리나라 암벽 등반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심지어는 모 브랜드의 후원을 받는 프로 클라이머도 몰래 스텔스창으로 교체해서 등반하기도 했다고 한다.


▲ 호상사의 유일한 직영점인 시에라 삼일로점.
스텔스창도 최근에는 제품 모델별로 특성에 맞게 다양한 밑창이 나오고 있다. 디자인과 신발 제조에도 다양한 기술을 접목시켰다. 암벽화의 발끝이 아래쪽으로 굽어지고 단단하게 만든 기술, 쿠션 효과를 위한 힐 웨지, 신발 착용이 쉽도록 해준 당김고리, 바위의 정확한 부분을 찍게 한 피쉬훅 미드솔, 물이 스스로 빠지는 신발, 발목부터 발가락까지 신발끈이 통과되는 신발 등이다.

그러나 한때 상표권 문제로 한국에서 파이브텐을 접하기 어려운 때도 있었다. 그러다 2006년 상표권 문제가 정리되면서 (주)호상사에서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김인호 호상사 대표 역시 “한국시장에서 클라이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스텔스창 때문”이라며 “마찰력은 스텔스창이 지존이다”고 힘주어 얘기한다.

찰스 콜 사장은 스텔스창에 대한 특허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특허를 내면 10년 뒤 세부 내용을 다 공개해야 하는데, 창을 만드는 화학적인 노하우를 알리지 않기 위해 특허 신청을 포기했다. 어차피 스텔스창의 접지력은 따라올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호상사에서 파이브텐을 취급하면서 가장 많이 팔린 암벽화는 단연 ‘뉴튼’이다. 접지력이 탁월하고 발이 편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뉴튼의 경우 스텔스 오닉스(ONYXX)창을 썼다. 오닉스창은 다른 스텔스창보다 단단하게 만들어져 정교한 발 디딤이 가능하고 과거에 비해 내구성을 크게 보강해 잘 닳지 않는 장점이 있다. 최근에는 ‘뉴 뉴튼’ 모델이 나왔다. 뉴 뉴튼은 기능성과 편안함을 보완한 것으로 긴 루트 등반에 이상적이다.

▲ 파이브텐 암벽화 중에서 우리나라 바위꾼들에게 가장 많이 팔린 뉴튼. 김인호 사장이 신제품인 ‘뉴 뉴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스텔스창은 물 묻은 바위에서도 잘 붙는다

마케팅팀의 안순임 대리는 신제품인 ‘프로젝트’를 보여주며 파이브텐의 모든 기술력이 집약된 암벽화라 소개한다. 프로젝트는 찰스 콜 대표가 직접 개발한 암벽화로 오버행 암벽 등반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매우 섬세한 제품이라고 한다. 발을 마치 손처럼 움직일 수 있어 발로 홀드를 꽉 잡을 수 있는 프리헨슬(Prehensile) 기술이 그 노하우다.
밑창은 파이브텐에서 가장 최근에 개발된 미스티크(Mystique)를 적용했다. 미스티크는 기존 창에 비해 내구성은 두 배로 향상되었고, 더 얇고 가볍다.

신발 제품 전체에서 가장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는 ‘캠프포미드’이다. 캠프포미드는 호상사에서 미국 본사에 요청해 특별히 제작한 한국 전용 모델이다. 한국 등산인들의 경우 중장거리 산행을 즐겨한다는 데 착안, 스텔스창을 사용하면서도 발목 부분을 높였다. 바위 접지력이 강하면서 발목 피로도가 적어 중장거리 산행이 가능한 한국형 등산화를 만든 것이다. 이렇듯 최근에는 리지와 중장거리 산행에도 다 신을 수 있는 멀티슈즈가 제일 잘 팔린다고 한다. 가이드테니는 파이브텐의 대표적인 리지화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앞 코가 살짝 들려 있어 효율적인 워킹이 가능하고 암벽화처럼 발가락 끝부터 당겨 조일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경쟁 브랜드들도 밑창의 마찰력에 있어 많은 발전을 이뤘다. 이에 대해 김인호 대표는 “그래도 스텔스창이 더 낫다”고 한다. 보통 다른 암벽화들이 비가 오거나 추울 때 고무가 수축해서 잘 안 붙는데, 스텔스창은 그런 악천후에서도 여전히 잘붙는다고 한다. 더군다나 물 묻은 바위에서도 잘 붙는 게 강점이라 자랑한다.

신발 브랜드의 경우 대부분 공장을 중국에 두는데 파이브텐의 암벽화만큼은 아직 미국에 있다. 암벽화는 오랜 노하우와 기술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불어 족형의 경우 한국인을 위한 별도의 족형 모델은 없지만 미국 공장의 신발생산 최고관리자가 한국사람이라 이와 관련된 불편 사항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 1 파이브텐의 기술력이 집약된 오버행 등반용 암벽화 프로젝트. 2 암벽화 끝이 아래로 굽어지고 단단하게 만드는 기술이 적용된 드래곤 모델. 3 캠프포미드의 밑창. 앞코 왼쪽 부분은 ‘스텔스 C4’창을 나머지는 ‘스텔스 S1’창을 써서 부위별로 기능을 최적화시켰다.
파이브텐은 아웃도어 신발 전문 브랜드이지만 2008년부터는 의류도 만들고 있다. 재킷과 티셔츠, 바지 등 브랜드 이미지에 맞는 클라이밍 기능성 의류이다. 티셔츠 종류는 미국 본사에서 들여오고 재킷과 바지는 부분 라이선스를 체결해 국내 하청으로 생산하고 있다. 제품 유통은 호상사의 유일한 직영점인 시에라 삼일로점(종로구 관철동)과 전국 150여 개의 멀티숍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다양하게 소비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호상사는 매년 5월 10일을 전후 해서 전국 아마추어 클라이머들을 위한 ‘파이브텐 클라이밍 페스티벌’을 4회째 열고 있다. 행사는 개인 참가가 아닌 단체 참가 형식이며, 선수들의 참가를 제한해 아마추어 클라이밍 동호인들을 위한 축제로 열린다. 김인호 사장은 “순수 아마추어들을 위한 축제로 지방 암장 동호인들의 참여도를 높여 클라이머들의 화합을 위한 한마당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파이브텐은 암벽등반에 있어 등반사를 바꿀 정도로 영향을 미쳤지만 암벽화 시장은 무척 작기에 더 다양한 시장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 김인호 대표는 새로운 시장에 대한 파이브텐의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액션 스포츠 시장에 진출해 파이브텐의 영역을 더 넓힐 생각입니다. 액션 스포츠는 미국에서 쓰는 말인데 자전거 MTB, 스케이드 보드, 야마카시, 비보잉 등 새로운 형태의 스포츠입니다. 액션 스포츠로 확장할 수 있었던 것도 스텔스의 마찰력이 있기 때문이죠.”

자전거를 탈 때 페달에서 미끌리지 않기 위해, 스케이드보드를 탈 때 보드와의 밀착력을 높이기 위해, 야마카시를 할 때 벽을 잘 딛기 위해 등등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야마카시는 맨몸으로 도시 건물이나 다리, 벽 등을 오르거나 뛰어넘는 행동으로 신종 익스트림 스포츠이며 미국 본사에서 한국의 프로 동호인들에게 신발을 후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국내에는 들여오지 않았지만 계곡등반할 때 바위에 잘 붙는 신발이 있으며 낚시 신발도 개발 중이다.

스텔스창의 혁명이 산을 넘어 액션 스포츠 등 더욱 다양한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을지, 파이브텐의 고요한 등반이 기대된다.


/ 글 신준범 기자·사진 이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