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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길] 전국에 '걷기 길'이 넘쳐난다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2. 4. 2.

 

[핫이슈 | 도보길] 전국에 '걷기 길'이 넘쳐난다

부처·지자체서 경쟁적으로 도보길 조성… 옥석 구분 쉽지 않아 월간산 | 글·박정원 부장 | 입력 2012.04.02 12:07
전국 곳곳에 걷는 길이 넘쳐나고 있다. 어느 곳이든 집을 나서면 멀지 않은 곳에 길이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길 공화국'이고 '길 천지'다. 전국의 걷는 길은 지난 2008년 새 정부 들어 정부의 녹색정책사업 일환으로 자전거길과 함께 적극 조성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길을 만들면서 현재와 같은 길 포화상태에 이른 것이다.

이 같은 걷는 길은 도보여행객들이나 걷기나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환영받을 일이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많아 옥석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문가의 자문 없이 중구난방식으로 조성하거나, 기존에 있던 길에 쓸데없는 시설을 설치하면서 걷는 데에 오히려 불편을 초래하면서 예산을 낭비하거나,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자체에서 난개발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월간산]국가생태 탐방로

현재 걷는 길 조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정부 부처와 기관은 모두 7곳에 이른다. 정부 기관의 4분의 1에 달할 정도다. 걷는 길 조성에 정부 기관의 4분의 1이 매달릴 정도면 예산낭비는 불을 보듯 뻔하다. 걷는 길 조성에 직접 관여하는 정부 부처와 기관은 문화체육관광부, 환경부, 국토해양부, 산림청과 국립공원관리공단 모두 5곳이다. 행정안전부와 지식경제부도 지방자치단체나 지방발전연구원을 통해 예산을 지원하면서 걷는 길 조성에 관여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생태평화벨트 조성'에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와 국무총리실, 문화체육관광부, 통일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농림수산식품부, 환경부, 국토해양부, 산림청 등이 합동으로 관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외에도 지방자치단체에서 독자적으로 길을 조성하는 곳도 많다.

가장 먼저 '걷기 길' 조성에 나선 부처는 환경부다. 환경부는 2006년 경관이 아름답고 생태자원이 우수한 자연길(National Trail)을 조성하여 자연탐방 문화를 본격 확산시키겠다는 목표로 길 조성에 나섰다. 2007년엔 전국을 강원권, 충북·경북권역, 경남권역, 충남권역, 전남·북권역 5대 권역으로 나누어, 권역별로 생태루트 테마를 선정 연결하여 전국단위 네트워크를 조성할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가생태탐방로 확산에 불을 당겼다 < 국가생태탐방로 그림 참조 > . 그리고 그해 3월 퇴계오솔길과 청량산 산길, 다산오솔길, 대관령옛길, 관동팔경 가는 길, 인제 샛령 등을 국가생태탐방로 구축사업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2008년엔 '국가생태탐방로'란 이름으로 26㎞를 조성한 데 이어 2017년까지 10개년 계획으로 총 2,500㎞의 길을 1,626억원을 들여 조성할 방침이다. 경부고속도로의 6배에 달하는 거리다. 2012년엔 전국에 1,000㎞의 길을 닦을 계획이다. 환경부는 이외에도 연간 130㎞ 내외로 2017년까지 1,200㎞, 즉 삼천리길을 조성한다. 뿐만 아니라 도시녹색길, 둘레길 조성에도 일정 예산을 지원하며 적극 나서고 있다.

이어 문화체육관광부는 2009년부터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란 이름으로 매년 10개 내외의 길을 선정, 조성하고 있다. 그 해 3월 소백산 자락길, 강화둘레길, 삼남대로 따라가는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동해트레일(영덕·삼척 구간), 섬진강을 따라가는 박경리의 토지길, 고인돌과 질마재를 따라 10리길, 여강을 따라가는 역사문화체험길 모두 7곳을 선정하면서 시작된 문화생태탐방로는 2017년까지 총 1,000억 원을 들여 만들 방침이다 < 문화생태탐방로 그림 참조 > .





↑ [월간산]문화생태 탐방로

문체부는 단기적으로는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 국토 내륙 옛길과 연계 탐방로를 조성하는 등 테마를 중심으로 구간사업을 점차 벌일 계획이다. 동해안권에서는 새이령·대관령·석개재·십이령 등 소금·과거·석탄·보부상길 등과 남해안권의 이순신·섬·공룡 습지를 테마로 한 도보관광 코스, DMZ권에서는 평화·생명을 주제로 한 국토횡단 탐방로, 백두대간은 산자락과 마을들을 잇는 백두대간 마을길, 4대강·섬진강 등 자연과 유무형의 역사문화자원을 연계한 탐방로, 제주도 등 주요 섬의 자연과 유무형의 역사문화자원을 연계한 탐방로, 담양·장흥·완도 등 슬로시티 체험길, 남도의 소리를 찾아가는 소리길 등을 조성할 계획으로 있다. 장기적으로는 네트워크화를 통한 전국 단위 탐방로도 추진한다.

해안누리길에 해파랑길 등 비슷한 길에 이름만 달라

국토해양부도 걷는 길 조성에 다른 부처 못지않게 적극적이다. 국토해양부는 2010년 7월 11개 시·도, 36개 시·군·구에서 추천한 동·서·남해안을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52개 코스 총 505㎞의 '해안누리길' 노선을 발표했다 < 해안누리길 그림·표 참조 > . 제주올레길 21개 코스 중 9개소, 강원도의 관동별곡 팔백리길 중 9개 노선을 선정했다. 전남에서는 12개소 128.6㎞, 경남 5개소 34.3㎞, 경북 4개소 40.6㎞, 부산 4개소 33.6㎞, 경기 3개소 21.9㎞, 인천 2개소 18.4㎞, 울산 2개소 7.6㎞, 충남 1개소 19.6㎞, 전북 1개소 18㎞ 등이 최종 포함됐다. 국토해양부는 인위적으로 걷기 길을 조성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있거나 이미 개발된 바닷가 숲길, 산책길, 마을길 중 걷기 편하고 주변 경관이 우수하며 해양문화·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 널리 알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국토해양부에서 해안누리길 조성 발표를 한 지 두 달 뒤인 9월에 문체부는 부산 오륙도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를 잇는 688㎞의 국내 최장 동해안 대트레일인 '해파랑길'을 조성하겠다고 나섰다. 문체부는 2014년까지 170억 원을 투입, 친환경적이면서 이야기가 있는 길로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이다. 문화부는 '해파랑길' 688㎞를 동해안의 특성을 대표하는 동해의 아침(오륙도~송정해수욕장 24㎞), 화랑순례(경주 봉길해수욕장~포항 양포항 23㎞), 관동팔경(강릉 강릉항~양양 광진리해수욕장 27㎞), 통일기원(송지호~화진포 28㎞)의 4가지 테마로 나누어 지역, 길이, 소테마, 핵심거점을 기준으로 40개 세부구간으로 나눠 조성한다. 강구항~고래불해수욕장까지 41㎞에 이르는 영덕 블루로드도 해파랑길의 베스트 코스에 포함된다 < 해파랑길 그림·표 참조 > .

산림청에서는 '등산지원기본계획'에 따라 백두대간트레일 등 도보여행 문화 확산에 따른 다양한 코스를 내놓고 있으며,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국립공원 둘레길을 조성할 복안을 가지고 있다.





↑ [월간산](좌)해안누리길 현황 (우)해안누리길 세부현황

지자체장 퇴임 뒤 있던 길 버리고 새 길 조성

행정안전부와 지식경제부는 지방자치단체와 지방발전연구원을 통해 명품길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도지사와 시장은 임기 내 주민들의 눈에 보이는 업적을 내놓기 위해 더욱 적극적이다. 경남도의 경우 2015년까지 299억 원을 투입, 5개 테마 7개 사업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다른 시도도 크고 작은 길 조성 사업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걷는 길 확산에 대해 (사)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은 "걷기 열풍이 불면서 길 조성 사업이 난무하고 있다. 자동차길이 아닌 도보여행 길이 조성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중앙 부처나 지방자치단체 할 것 없이 지나친 실적 위주에 기대어 과도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 이사장은 이어 "산림청이 산림문화체험숲길이란 이름으로 7개 지역, 환경부가 국가생태탐방로란 이름으로 48개 지역,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생태탐방로,해파랑길이란 이름으로 67개 지역, 국토해양부가 누릿길 등의 이름으로 70여 개 지역, 행정안전부까지 녹색명품길이란 이름으로 33개 지역에 도보여행길을 만들었거나 조성 중에 있다. 이밖에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조성하고 있는 길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걷는 길을 조성하는 데 1㎞당 수억 원씩 들이는 비용은 결국 국민 세금 아니냐"고 비판했다.

서 이사장은 "자연의 가치를 우선하면서도 지역 문화와 특성에 어울리는 인간친화적인 길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시설 예산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길을 활성화할 수 있고, 올바른 도보여행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철학과 프로그램을 키우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방자치단체의 걷는 길 난개발과 예산중복에 따른 낭비, 졸속 조성 등의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가의 조언 없이 무분별한 나무데크 공사 및 흙길의 콘크리트 포장은 걷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히려 짜증나게 한다. 뿐만 아니라 길을 조성하면서 기존 농로나 등산로·인도를 활용하기 보다는 자연을 파괴하며 필요 이상의 시설물 공사로 과대 포장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빨리빨리'를 그대로 적용, 길만 조성하고 화장실이나 숙박시설·음식점·쉼터 등 주변 편의시설은 전혀 없어 인근 주민과 마찰을 빚는 경우가 자주 목격된다.





↑ [월간산](좌)해파랑길(동해안 탐방로) 노선도 (우)해파랑길 40개 구간

또 자치단체장의 업적주의 때문에 자신의 임기 내 졸속으로 예산을 낭비하면서 조성한 길이 임기가 끝나자마자 다른 단체장이 취임하면서 기존에 있던 길을 없애고 새로운 길로 바꾸어 조성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이런 길은 사용하지도 않고 예산만 소모하고 그냥 방치된 채 세월을 보내고 있다.

안동과 같은 일부 지자체에서는 정부 3개 부처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각각 '다른 이름을 가진 같은 길'을 조성하고 있다. 같은 길을 걷는 데 여러 개의 다른 이름이 걸린 리본은 이 같은 사실을 대변하고 있다.

물론 걷는 길 전체가 난개발이거나 허접한 것은 아니다. 다산오솔길이나 퇴계오솔길 같은 운치 있는 길도 곳곳에 많다. 문제는 난립하는 길로 인해서 도보여행객들이 어떤 길이 진정 사색하면서 걸을 만한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걷는 길 난립현상에 대해 (사)한국의 길과 문화 윤정준 이사는 "정부 부처마다 길 조성사업에 수백억 원의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각 부처에서는 예산을 빼앗기기 싫어 자율조정이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길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예산낭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조정기능이 필요하다. 국가에서 외국의 내셔널트레일(National Trail)과 같이 길을 조성·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우이령보존회 조상희 전 회장도 "전국에 산불과 같이 번지는, 마구잡이로 만드는 길을 이젠 막아야 할 때가 됐다. 길을 걷는 사람이 무슨 길을 좋아하는지 그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고, 그에 맞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월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