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 전 거 /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12. 보성~사천 <하>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1. 10. 19.

12. 보성~사천 <하>

■ 허화백 고향 여수서 왁자지껄 회 파티

비바람 몰아치는 두문포 방파제
뱃일 나간 아들 기다리는 늙은 어미는
흠뻑 젖은채 수평선만 바라보고


갈매기 몰고 나타난 어선의 귀향
씨알 굵은 은빛 삼치 갑판에 빼곡
늙은 어미는 무사한 아들에 감사할뿐

전남 여수시 돌산읍 두문포. 늙은 어머니는 비바람 속에서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본다. 시선은 항구로 들어오는 뱃머리가 제일 먼저 보이는 방파제 끄트머리에 고정되어 있는데, 사선을 그리며 흩뿌리는 빗줄기를 막기에 들고 있는 작은 우산은 역부족이다. 쫄딱 젖은 노파의 앙상한 몸은 갈바람에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애처롭다.

하지만 구판장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인 두문포 사람들 중 그 누구도 할머니에게 다가가 마른 자리에서 편하게 앉아서 기다리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지금, 늙은 어머니는 삼치를 잡으러 바다로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중이다.

“제법 많이 잡았으며 귀항 중이다”는 연락을 받은 직후 바람이 거세지자 걱정스러워진 노모가 허위허위 부두로 달려나온 것이다.

바다로 나간 이를 기다리며 애간장이 타는 것은 갯마을 사람들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 백파가 들끓는 수평선을 응시하며 아들을 기다리는 노파도, 노파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도 이 피말리는 기다림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었다. 돌산대교를 건너 이곳까지 자전거로 달려오며 속옷까지 젖어 한시라도 빨리 무슬목으로 이동해 캠프를 설치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싶지만 왠지 배가 무사히 들어오는 것을 보고 떠나야할 것 같은 강박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았다.

자전거를 기대어놓고 구판장 평상에 앉아 20여분쯤 기다렸을까? 마침내 배가 들어온 모양이다. 동쪽 멀리 욕지도, 연화도를 바라보며 입구가 좁은 C자 형태로 오목한 두문포는 양쪽에 산이 솟아 있어 방파제 안으로 들어오기 전엔 배를 볼 수 없지만 그건 사람들의 얘기고 갈매기는 어선의 귀항을 재빨리 알아차린다.

부둣가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갈매기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방파제 너머로 날아갔는데 풍랑을 뚫고 돌아온 어선은 그 갈매기떼를 다시 몰아 방파제 모퉁이를 돌아들어왔다. 돌아온 삼치배는 ‘만선(滿船)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고 말하고 있었다. 갑판 가득 빼곡히 쌓인 나무 상자마다 씨알 좋은 은빛 삼치가 그야말로 미어터지고 선원들은 득의만만한 미소를 굳이 감추지 않았다.

“이거 자잘한 고시가 아니라 진짜 삼치다. 엄청난데?”

이곳 바다에서 나고 자란 허영만 화백도 이 정도로 큰 놈들을 이토록 많이 잡은 것은 처음 본다며 놀라워한다. 크레인으로 삼치 상자를 끌어올려 트럭에 싣는 마을 사람들도 신바람이 났다. 하지만 비를 맞으며 기다린 선장의 늙은 어머니는 엄청난 조업 성과물보다 높은 파도를 헤치고 무사히 돌아와 준 아들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구불구불 곡선이 아름다운 경남 하동 다평리의 논길. 이런 길은 아무리 달려도 지치질 않는 다.


 

남해대교 북단을 지나 5km 지점의 중평리 해안갯바위길. 허영만 대장이 앞장을 선 가운데 집단가출 멤버들이 조심스럽게 통과하고 있다.


 

남자는 안되고 오로지 여자만 쉬라는 뜻? 여수 와온해변 부근에서 만난 정자. 여자만쉼터라는 간판이 붙어있어 장난기가 발동한 팀내 홍일점인 김승정이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다.


1kg넘는 삼치에 민어 우럭 광어 가득
고향 벗들이 마련해준 푸짐한 횟감
맛이면 맛, 정이면 정…한점한점 꿀맛

60대 중반 어르신들 격의 없이 둘러앉아
옛추억을 안주삼아 한잔 또 한잔
남도의 맛있는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저녁에는 두문포에서 산 대형 삼치 외에도 허 화백의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자전거 여행길에 고향을 찾은 친구를 위해 준비한 민어, 우럭, 광어회로 왁자지껄 파티가 벌어졌다. 멋부리지 않고 두툼하게 썰어낸 생선회는 한 점 한 점 입에 넣을 때마다 하루 종일 빗속을 달리며 고갈된 에너지가 차곡차곡 재충전되는 느낌을 준다.

남도에서는 회를 먹을 때 겨자나 간장보다는 된장을 선호한다. 허 화백의 막내 여동생이 정성스럽게 만들어온 양념 된장이 압권이었다. 집된장에 빻은 마늘과 쪽파를 잘게 썰어 참기름으로 화룡점정한 양념된장은 회맛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하지만 회맛도 회맛이지만 이제 60대 중반에 접어든 허 화백과 친구들이 그 옛날 호칭 그대로 격의 없이 추억에 젖어 껄껄 웃는 모습이 더 맛깔스러웠던 밤이었다.

이튿날 다행히 비는 그쳤고 자전거 나그네들은 광양에서 섬진강을 건너 하동땅에 닿았다. 호남을 지나 여기부터는 경상남도다. 지리산 남쪽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이 모여 화개 악양 적량 진월을 거쳐 하동에 이르러 남해로 흘러드는 섬진강.

우리들은 경기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의 해안선을 모두 밟고 이제 바야흐로 또 하나의 도 경계선을 넘는다는 감회에 젖어 살짝 흥분하기까지 했지만 전남과 경남의 경계 섬진대교는 700m 짜리 짧은 다리로 불과 5분여 만에 건널 수 있어 싱거웠다.

‘하이 파이브’로 서로를 격려한 뒤 갈사리 가덕리의 논길을 가로질러 금오산 남쪽 해안으로 내쳐 달려간다. 워낙 긴 여름이어서 기온은 여전히 높았지만 바람결에 가을 내음이 섞여있다.

들녘의 낟알도 어느 정도 여물어 고개를 숙였고…,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도 이제 꽁무니를 내보이며 가을은 저만치에서 오고 있었다.

벼메뚜기가 이리저리 튀는 논길이 끝나는 지점에 하동 화력발전소가 가로막고 있다. 발전소는 국가 중요 시설인지라 해안도로가 출입금지여서 발전소 뒷산으로 뚫린 가파른 신작로에서 땀깨나 쏟아야 했다.

사천으로 이어지는 대치리 술상리 양포리에는 1002번 지방도가 시원스럽게 뚫려있었으나 선천적으로 아스팔트를 싫어하는 자전거 식객들은 논밭과 저수지를 우회하는 오프로드를 고집스럽게 찾아 헤맸다.

진교면 진교다리를 건너 서포면 내구리 다평리 해안들녘을 내달려 갯바위지대를 통과, 드디어 사천대교를 건너 집단가출 자전거 전국일주 12차 투어는 2박3일의 막을 내렸다.

글|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70cm·1kg 넘는 놈들만 비로서 삼치라고 부르죠

입력 2011-09-20 07:00:00
폰트 글자확대글자축소 인쇄하기

엄청난 양의 삼치를 잡아 귀항한 어선을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는 집단가출 자전거전국일주팀. 허영만 화백이 즉석에서 흥정해 구입한 삼치의 크기가 대단하다.

■ 세가지 이름…삼치를 아시나요?

30cm미만 ‘고시’ 중간 크기 ‘야나기’ 명칭


남해와 제주 해역에 서식하는 삼치는 여러 해 동안 여행을 하고 성어가 되어 알을 낳기 전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찾는 회유성 어종이다. 부레가 없어 민첩하고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먹는 육식성으로 주로 루어(가짜 미끼)를 이용해 낚시로 잡는다. 횟감으로도 뛰어나지만 소금에 절여두었다가 숯불에 구워먹는 것을 최고로 친다.

매년 9∼10월께 멸치떼와 함께 북상해 남서해에서 많이 잡히는 어종이지만 올해는 여름철 고온현상으로 예년보다 한 달가량 빨리 시즌이 시작됐다.

삼치는 세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길이 30cm 안팎의 작은 것을 ‘고시’, 그보다 약간 큰놈을 ‘야나기’라고 하며 길이 70∼80cm에 무게가 1kg이 넘는 놈들을 비로소 ‘삼치’라고 부른다.

두문포 어부들이 만선을 일궈낸 삼치는 몸길이가 거의 1m에 육박하는 대물들이어서 삼치를 담는 나무상자에 꼬리가 30cm가량 삐져나올 정도였다.

 김경민 “지원차량 운전 저요 저”…“막내, 너 무면허잖아”

입력 2011-09-20 07:00:00
폰트  

 

 

■ 허영만이 그린 한 컷 풍경

집단가출 자전거 전국일주는 주행 구간을 나눠 한 달에 한 번씩 릴레이로 진행하므로 매번 달라지는 출발 지점까지 자동차로 자전거를 싣고 가서 달린다. 그리고 다시 자동차를 이용해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때문에 지원차량이 필수적인데 누군가는 희생정신을 발휘해 자전거를 타지 않고 지원차량을 운전해야만 하는 고충이 있다. 지금까지 지원차량을 운전하는 희생을 가장 많이 감수한 멤버는 홍석민. 산악자전거 베테랑이며 프로골퍼에 전문산악인, 게다가 산악스키 국가대표까지 지낸 스포츠 팔방미인 홍석민의 계속되는 헌신이 고마운 한편, 몹시 미안해 이번엔 홍석민 대신 차를 운전할 대원은 자원하라고 하자 막내 김경민 대원이 손을 번쩍 들었다. 하지만 김경민은 무면허. 결국 홍석민은 이날도 지원차량 운전 담당을 면치 못했고 김경민은 ‘선배 모독죄’로 꿀밤을 여러 대 맞았다. <삽화=허영만>


'자 전 거 > 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 사천~울산 <하>  (0) 2011.10.19
13. 사천~울산 <상>  (0) 2011.10.19
12. 보성~사천 <상>  (0) 2011.10.19
11. 해남~보성 <하>  (0) 2011.10.19
11. 해남~보성 <상>  (0) 2011.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