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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전 거 /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11. 해남~보성 <상>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1. 10. 19.

 

11. 해남~보성 <상>

■ 남도의 명물 ‘쇠고기낙지탕탕이’

지긋지긋 장마가 끝난 해남의 여름   
복사열에 수증기 후끈 한증막 그 자체   

땀 범벅된 식객들 “달리다 쓰러질라”

보약 안부러운 별미 낙지 덕분에 씽씽! 

달포 가까이 한반도 전역을 짓누르고 있던 지긋지긋한 장마는 남부에서 먼저 퇴각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에 자전거를 싣고 장대비가 내리는 서울을 떠나 서해안고속도로 서천쯤을 지날 때부터 비가 그치며 뭉게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언뜻언뜻 보이더니 김제 만경평야의 지평선에서는 몬순 종료 축하 퍼레이드인 듯 거대하고 찬란한 무지개를 만났다.

목포에서 ‘쇠고기낙지탕탕이’로 저녁식사를 한 뒤 집단가출 자전거 전국일주 11차 구간 출발지점인 해남에 도착했다. 날이 완전히 저문 가운데 구름이 말끔히 걷힌 밤하늘엔 보름달이 둥실 떠올랐고 뭇별들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오랫동안 내린 비 덕분에 대기 중의 먼지가 마지막 한 톨까지 몽땅 가라앉아 모든 것이 맑고 투명해 마치 가을의 한가운데 와있는 듯 상쾌한 느낌이다. 그러나….

지난달 자전거 여행 도착지점에서 자전거를 타기 위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헉’ 소리가 절로 난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자동차 안에 앉아있을 때는 몰랐는데 자동차 문을 여는 순간 한증막으로 들어간 듯 덥고 습하기가 이를 데 없었던 것이다.

공기중의 물방울이 느껴질 만큼 높은 습도는 낮 동안 땡볕에 데워진 대지의 복사열과 합세해 선발대를 녹초로 만들었다.

해남길은 여느 시골길과 마찬가지로 가로등이 없어 암흑천지여서 밤하늘의 달과 별은 더욱 또렷했는데 악을 쓰듯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페달링을 하는 우리는 땀으로 목욕을 해야 했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자동차를 타고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야심한 시각이니 지켜보는 눈도 없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해안선 전 코스에 온전히, 단절 없이 자전거바퀴 자국을 내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약속을 저버리게 된다. 게다가 이제 와서 반칙을 저지르기엔 전국일주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영하 25도의 추위, 폭우 등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곰비임비 이어온 길이 아깝다.

가공할 더위와 칠흑 같은 어둠이 발목을 잡았지만 다행히 목포에서 먹은 쇠고기낙지탕탕이 덕에 라이딩에 필요한 에너지는 충분했다.

집단가출팀이 무더위 속에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을 수 있도록 에너지를 제공한 쇠고기낙지탕탕이.


● 목포 명물 쇠고기낙지탕탕이 먹고 더위 속 페달링

쇠고기낙지탕탕이는 쇠고기 육회와 산낙지를 1:1 비율로 요리한 목포의 명물 메뉴다. 호남은 원래 육회가 유명한데 거기에 한 마리만 먹이면 더위 먹어 쓰러진 소도 벌떡 일어난다는 스태미너의 화신, 무안 갯벌 산낙지를 함께 얹었으니 맛은 물론 영양가면에서도 필적할 상대가 없는 여름철 최고의 보양식이다.

탕탕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쇠고기와 낙지를 도마에 놓고 칼로 탕- 탕- 탕- 쳐서 만드는 요리 과정에서 유래했다. 양념이라고는 마늘과 소금, 그리고 참기름뿐임에도 감칠맛이 절묘했는데 더위를 뚫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우리에게 힘의 원천이 되어주었다.

해남 땅끝을 지나 사구해변 부근의 전망대 데크 위에 캠프를 설치하자 자정이 넘었고 후발대는 새벽 2시 께 도착했다.

땅끝의 아침은 늦잠을 불허했다. 오전 7시가 되기도 전에 야영지에 따가운 햇볕이 비쳐든 탓에 좀 더 자고 싶어도 너무 더워서 잘 수가 없다.

완도를 향해 출발 준비를 마쳤을 때 77번지방도 고갯마루에서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청년이 터벅터벅 걸어서 내려온다.

완도 고갯마루서 만난 젊은 순례자
국토종단 갸륵…허화백 그림 선물

펄펄 끓는 아스팔트 ‘아이스께끼’론 안돼
김초냉국 한사발에 더위야 물럿거라!

청년의 이름은 이대한(23·홍익대 경제학과 복학 예정). 2주 전 군대에서 전역한 그는 다음 학기 복학을 앞두고 해남 땅끝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홀로 도보여행에 나서 이날 아침 대장정의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한다.

땅끝은 국토순례에 있어서 성지와 같은 곳으로 여름방학을 맞아 국토종단여행에 도전하는 수많은 젊은이가 도착하거나 출발하는 지점인데 이대한 씨도 그 중 한명이었던 것이다. 단독으로 먼 길에 나선 강인한 젊은이에게 집단가출 멤버들의 격려가 쏟아졌고 허영만 화백은 완주를 기원하는 그림 사인을 선물했다.

완도에서 허영만 화백의 고향 후배 노태현씨가 집단가출팀의 자전거 전국일주를 응원하는 뜻에서 준비한 스태미너식 전복죽.


● 정신 번쩍 나는 별미, 새콤한 여수 특산 김초냉국

완도로 향하는 길은 달궈진 가마솥 속인 듯 지독히도 뜨겁다. 가끔 바다 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뜨거운 아스팔트의 열기에 대적하기엔 역부족이어서 사람도 자전거도 뜨끈뜨끈하다. 사막을 횡단하는 것이 이보다 고통스러울까? 우리는 달리면 달릴수록 말린 생선 신세가 되어간다.

한낮의 해남 들녘엔 사람이 전혀 없다. 농부들은 해뜨기 전에 일을 다 해두고 한낮엔 쉬기 때문이다. 완도가 건너다보이는 이진리 마을 나무그늘 아래 정자에서 쉬고 있던 촌로들이 땡볕에 꾸역꾸역 페달질을 해나가는 우리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다 한마디씩 하신다.

“워메 워메, 이 드건디(뜨거운데) 어디를 그라고 간다요?”

“싸게 일로 오씨요(어서 이리오세요). 수박이나 묵음시로 놀다가씨요.”

평소엔 좀처럼 사먹을 일이 없는 ‘아이스께끼’는 자전거 여행이 여름에 접어들면서 필수 아이템이 됐다. 빙과를 담아둔 냉동고가 있는 구멍가게를 발견하면 거의 본능적으로 자전거를 멈춘다. 허영만 대장은 반드시 한 종류의 특정 ‘아이스께끼’만을 먹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BBB(특정 상표를 밝힐 수 없어 영문 이니셜을 썼다). 단팥을 주재료로 만든 ‘BBB’를 너무도 좋아해 화실의 냉장고에 항상 쟁여두고 있는 허화백은 이날 남창리를 지나 완도에 진입하자마자 만난 첫 번째 가게에서 3개의 ‘BBB’를 연달아 해치워 주위를 놀라게 했다.

점심 식사는 완도에서 신지도로 넘어가는 신지대교가 빤히 바라다 보이는 완도 죽청리 노태헌 씨 댁에서 순수 가정식으로 신세를 졌다. 허화백과 같은 여수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허화백과 호형호제해온 노씨가 고향 선배인 허화백이 완도를 자전거로 지난다는 소식을 듣고 버선발로 뛰어나와 일행을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노씨 부부가 마련한 메뉴는 전복죽과 광어회. 전복 내장을 함께 넣어 끓인 전복죽은 전복 반, 찹쌀 반이었고 미리 잡아 숙성시켜둔 광어회는 식감이 인절미처럼 쫄깃하면서도 입안에서 설탕처럼 녹았다.

특히 광어회를 찍어먹는 된장이 집에서 직접 담은 것이어서 회 맛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는데 회 한 점에 된장을 듬뿍 찍은 햇마늘 한 쪽을 곁들이니 온종일 더위 속을 달리며 바닥난 파워가 급속 충전되는 느낌이다.

여기에다 그릇에 이슬이 맺힐 만큼 차갑게 내온 김초냉국의 새콤한 맛은 더위를 먹어 깔깔해진 입맛을 자극해 어지간히 먹었는데도 좀처럼 젓가락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김초냉국은 얼음을 띄운 찬물에 식초로 향미를 낸 뒤 완도 특산물 중 하나인 김을 찢어 넣은 것으로 그 맛 자체도 훌륭했지만 식욕을 증진시켜 모두 과식을 하고 말았다.

글·사진|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산낙지가 왜 비싼지 아세요?

입력 2011-07-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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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에서 완도로 출발하기 직전, 두발로 걸어서 국토순례에 나선 용감한 청년 이대한씨와 자전거식객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정상욱, 김승정, 필자, 허영만 대장, 홍순영, 이대한(허화백 옆 배낭을 맨 사람) 김경민, 김은광.

남해안은 지금 낙지가 한창이지만 산낙지의 경우 가격이 만만찮다.

낙지는 양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람이 일일이 뻘밭을 뒤져 한 마리씩 잡아야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남해안의 낙지잡이 어부들에 따르면 낙지 양식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래전에 낙지를 인공부화 하는 데는 어렵사리 성공했으나, 낙지 치어에게 공급할 먹이가 무엇인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 게다가 낙지에게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공식습성이 있다. 낙지를 한 곳에 가둬놓으면 서로 다리를 뜯어먹어 결국 공멸하고 마는 것이다. 공식습성은 낙지 외에도 꽃게, 갈치 등에게서도 관찰되며 이런 어종은 모두 양식이 불가능한 상태다.

 한낮 35도 한증막 레이스 환갑 넘긴 허화백 “SOS!”

입력 2011-07-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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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만이 그린 한 컷 풍경

집단가출 자전거 전국일주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는 약 80km. 한 달에 2∼3일씩 자전거를 타기 때문에 한번에 전국일주를 하는 사람들에 비해 덜 힘들지만 기온이 높아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체력 소모가 극심해지고 있다. 특히 한낮의 라이딩은 인간의 의지를 가혹하게 테스트한다. 집단가출 멤버 중 최연장자인 허영만 화백이 여름에 접어들면서 가끔 지원차량 신세를 지고 있다.

이번 11차 투어에서도 완도의 고갯길을 통과 중 기온이 35도에 육박할 만큼 더워지자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약 10km 거리를 자동차로 이동했다.(물론 나머지 멤버들은 자전거 주행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다.)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백두대간종주와 대한민국영해외곽선 항해를 해낸 허화백이지만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혈기 넘치는 20대, 30대들과 같은 속도로, 같은 거리를 자전거로 달리는 것이 무리인 것은 사실. 버티는 데까지 버티다 결국 자전거를 차에 실어야할 때마다 허화백은 고민이다. 자전거를 포기하고 자동차 타는 것이 습관이 될까봐….

[스포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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