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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저 등산하면서 돈 안 써요...월 50만 원쯤?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1. 3. 22.

 

에이, 저 등산하면서 돈 안 써요...월 50만 원쯤?

오마이뉴스 | 입력 2011.03.22 10:29 | 누가 봤을까?


[오마이뉴스 박미정 기자]

우리는 '계획적인 삶'에 대한 강박으로 너무 미래지향적인 삶을 강요받는 경향이 있다. 평균 수명도 길어진 시대에 준비되지 않은 미래란 재앙과 다름없으며, 게다가 대충 준비하기에도 너무나 불확실하다.

그러나 20~30년 후 노후 준비를 하자고 지금 굶고 참고 사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계속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사느라 오늘을 희생하고 살 수만은 없는 것 같다.

모 광고처럼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라는 말은 이제 하나의 명제가 되었다. 안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지금 당장 돈이 없어도 간절히 하고 싶다면 못할 이유가 없다. 먼저 누리고 갚으면 되니까. 지금을 고생해서 아끼고 산다고 해도 대출은 줄어들지 않으며, 갑자기 아이들을 유학이라도 보낼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지금 아끼고 산다고 인생 크게 달라지는게 아니라면 지금 현재를 즐기고 풍요롭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냥 사진 좀 배우려던 것뿐인데...

논술교사로 일하고 있는 임주경(37세, 가명, 미혼)씨는 군산이 고향인데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올라와서 살고 있다. 혼자 생활하다보니 주말이나 휴일이면 특별히 할 일도 없고, 고향 떠나 와서 그런지 같이 보낼 친구도 거의 없다. 무료함도 달랠 겸, 평소 관심 있던 사진 찍기도 배울 겸 사진 동호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아예 정식으로 사진 학원을 다녀볼까도 생각했지만 학원비도 부담됐고, 또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하자니 이래저래 사정상 빠지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일단 부담없이 동호회 활동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첫 모임에 나름 최신형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나갔지만, 주경씨는 자신의 카메라가 소위 '똑딱이'라 불리며 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소 폄하되고 있단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한 동호회 회원이 사진 특강을 하는 동안 계속 똑딱이는 이런 분위기가 안 난다, 똑딱이로는 이런 깊이감이 없다 운운하니 괜시리 기분이 상했다. 온갖 종류의 렌즈와 그 효과를 이야기하는 걸 듣고 보니 전문가라는게 단지 사진 잘 찍는 솜씨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회원들의 우수작품을 보는데 정말 사진의 색감이 남다른 것 같았다.

"몇 번 정도 교육을 받으면 실제 다같이 야외로 출사를 나가는데, 도저히 똑딱이 들고 출사를 못나가겠더라구요. 그래서 동호회 선배님께 이것저것 물어봐서 거금 들여 DSLR과 망원렌즈, 접사렌즈를 구매했어요. 처음엔 중고를 살까 했는데 이왕 새로 시작하는 거 최신형을 사는게 낫겠다 싶어 그냥 여러 다양한 기능이 지원되는 최신 모델로 샀죠."

최신 모델에 대한 동호회인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출사에 가자마자 너도나도 다가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친근하게 대했고, 제법 동호회 모임에도 친숙해지게 되었다. 더불어 새로 나온 좋은 렌즈나 각종 부대장비 얘길 나누다 보니 사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친숙도가 깊어갈수록 출사 후 뒤풀이가 길어지곤 했는데, 가끔은 음주가 과다하여 다음 날 교육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

주경씨의 동호회 활동비는 한 달에 얼마나 들까? 따로 지출관리를 하지 않는 주경씨도 스스로 궁금한 생각에 집계를 해보니, 한달 평균 30만 원 넘게 쓰고 있었다.

"이렇게나 돈이 많이 드는지는 몰랐어요. 그냥 취미 생활 겸 시작한건데 한도 끝도 없네요. 다음 주에 몇몇 동호회원들과 더불어 내셔널 지오그래픽 가방 공동구매 하기로 했는데…."

삶의 활력소가 된 등산, 다시 삶의 문제가 되다

황진성(55세, 가명, 기혼)씨는 등산 동호회에서 나름 전문가로 불린다. 등산 장비나 등산 코스 등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진성씨에게 물어보면 될 정도다. 직장생활 하면서 매일 야근이다, 회식이다 해서 배가 심하게 나오기 시작했고, 5년 전 건강 검진에서 지방간 바로 직전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오랜 친구와 더불어 주말에 그냥 서울 인근 산에 쉬엄쉬엄 오르기 시작했는데 어찌하다보니 등산 동호회의 주축 멤버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야 그냥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다녔죠. 그런데 조금씩 다니다 보니 저 말고 아무도 그렇게 다니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산에 다니는데 뭔 돈을 쓰냐 싶었지만 등산화부터 시작해 등산바지, 등산자켓, 등산모자, 등산용 가방 등 하나하나 필요한 것을 구입하게 되더라구요. 무박 산행을 가게 되면서 이제 등산에 필요하다 싶은 기본 장비들을 갖추게 되고, 겨울 산행을 하면서부터 더욱 필요한 장비가 많아졌습니다. 요즘 정말 기가 막힌 물건들이 참 많아요. 세상 참 좋아졌어요."

진성씨는 자신이 보유한 각종 등산 장비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이토록 지극한 인생의 낙에 돈이 얼마가 든다 한들 안 할 이유가 있겠는가. 과연 진성씨의 등산 동호회 활동에 한달 평균 얼마나 들까?

"에이, 전 산에 다니면서 돈 별로 안 써요. 필요한 장비 같은 거 살 때도 동대문 가서 다 샅샅이 보고 사고, 또 공동구매로 해서 싸게 사는 편이거든요. 무슨 브랜드다 하는 상품 사느라 돈을 함부로 쓰진 않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등산 장비와 교통비, 뒤풀이 비용까지 합산해보니 월평균 50만 원이 넘었다. 진성씨도 사뭇 놀라는 눈치다. 현재 아파트 대출이자 때문에 마음 고생도 심하고 아내와의 다툼도 많아진 진성씨는 등산이라도 다니지 않는다면 아마 제대로 숨도 돌리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유명 등산브랜드는 연간 매출액을 경신하고 있다.

화려한 삶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

매우 활동적인 배미향(40세, 가명, 미혼)씨는 인생을 즐기며 살 줄 아는 멋진 '골드미스'로 통한다. 프리랜서로 일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도 많고 수입도 적지 않다. 미향 씨는 주된 활동을 하는 동호회만 탭 댄스와 스킨스쿠버, 자동차 동호회까지 세 개 정도고 그냥저냥 활동하는 동호회까지 다 합치면 10개가 넘는다.

덕분에 주말이나 휴일, 휴가철에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워낙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외향적이면서도 사교성이 풍부해서 동호회에서도 주도적 인물인 미향씨는 동호회 활동이 마냥 즐겁다. 평일 중 하루는 저녁에 탭 댄스를 연습하고, 주말에는 자동차 동호회에 나간다.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스킨스쿠버를 하면서 일 년에 2회 정도 제주도나 해외에 나가 스킨스쿠버를 즐긴다.

탭 댄스 동호회에서는 보통 1년에 한번 공연을 하는데, 바로 얼마 전 공연이 있었다. 공연 의상을 준비하고 공연장을 빌리는데 몇 십만 원이 들었다. 지인들을 초청해서 멋진 환호를 받으며 공연을 마치고, 먼 길 와준 지인들에게 저녁을 근사하게 쐈다. 자동차 동호회에서는 주말마다 모여 튜닝 관련 정보, 자동차용품에 대한 정보 등을 교환하고 공동 구매도 진행하며 새롭게 계속 차를 꾸며준다. 외곽 드라이브도 종종 가기 때문에 주유비도 만만치 않다. 지난 여름휴가 때는 말레이시아에 가서 4박 5일 동안 스킨스쿠버를 하고 왔는데 총 비용 250만 원 정도 들었다. 동남아시아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근 제주도나 일본 가서 즐기는 데도 돈이 적잖게 든다.

이렇게 멋진 미향씨는 전세 보증금 3000만 원에 월 60만 원을 내며 주거형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주거 안정은 확보될 것이고 아이 낳고 나면 꼼짝없이 한동안은 갇혀 지내야 할 것이 뻔하므로 돈 모으기보다 지금을 즐기는 편이 낫다고 한다. 고정비용만 200만 원이 넘는 미향씨는 버는 돈이 다 어디로 가는지 모아 둔 돈이 없어 불안하다며 재무상담을 신청했다. 여기에 미향씨가 세 가지 이상의 동호회 활동을 하느라 쓰는 비용은 놀랍게도 월평균 100만 원이 넘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수 있으려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까지 벌고 살기란 정녕 쉬운 일이 아니다. 생계상 이유로 내키지 않아도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야 하니, '좋아하는 일'을 취미 생활로라도 하면서 숨통을 틔워주어야 사람 살 수 있는게 아닐까.

그런데 운동을 하든 뭘 배우든 취미 생활이 단순히 '즐기기'를 넘어 '전문가'의 경지로 승화하거나, '동호회' 문화로 발전하면서 만만찮은 비용이 들고 있다. 뭔가 더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도 좋고, 더불어 하는 취미활동을 통해 소통하는 것도 좋다. 문제는 돈이다.

사진을 찍는 것은 좋은데 왜 더 좋은 카메라를 사야 하는가. 등산을 가는 것은 좋은데 왜 더 좋은 등산화를 사야 하는가. 버는 돈은 정해져 있고, 자기도 모르게 취미활동으로 야금야금 더 많은 돈이 들어가게 되면서 정작 전세 보증금이 부족하고 아이들 교육비가 부족하고 부모님 아프실 때 내놓을 돈이 부족하다. 문제는 다들 스스로 구매결정을 내린 적은 없다고 말한다는 데 있다.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서 더 좋은 물건을 사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 남들이 부추긴 탓이다.

불행인지 우리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수가 없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고 그 내에서 효과적으로 배분해서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하는 사람이 시간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한다. 돈도 마찬가지다. 한정된 수입을 잘 배분해서 우선 순위에 맞게 써야 돈을 잘 쓴다고 할 수 있다.

너무 과도한 취미생활에 일상이 무너지게 되면 정작 현실 때문에 취미 생활도 더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난관에 빠지게 된다. 취미생활을 위한 예산 한도를 정해두고 그 내에서 당장 하고 싶은 것에 무작정 올인하기보다, 시간을 두고 돈을 모아가며 조금씩 차분히 배우고 즐겨야 더 오래 더 즐겁게 누릴 수 있다.

하고 싶은 곳에 쓰는 돈, 소중한 사람에게 쓰는 돈 등은 가장 행복하게 돈 쓰는 방법일 것이다. 다만 스스로 예산의 균형을 잡아서 너무 치우치지 않도록 유념할 필요가 있다. 좋은 데 쓰는 돈은 낭비하는 돈이라서가 아니라, 써도써도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에 대한 단순 집착이나 좋은 물건에 대한 부풀려진 욕심을 버리고 취미 본연의 의미를 살려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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