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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전 거 /자전거 관련..

자전거로 달려본 한강변 70km(경향신문)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0. 7. 2.

 

꽃구경·운동을 한번에 ‘두 바퀴 여행’

자전거로 달려본 한강변 70km

경향신문 | 글 김종목·사진 정지윤 기자 |


두 바퀴의 여행. 자전거는 참 매력적이다. 특히 요즘 같은 봄날엔 꽃구경과 운동을 겸할 수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요즘엔 집에서 자전거를 끌고 나가면 사통팔달이라는데…. 서울 서교동에서 팔당대교 북단까지 왕복 약 70여㎞. 기자가 직접 체험해봤다.

오전 11시 : 서울 서교동 집.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내려와 대문 앞에서 올라탔다. 페달에 힘을 주는 순간, 이상하다. 바퀴가 움직이지 않는다. 레버 조작 한 번으로 앞바퀴를 떼고 붙일 수 있는 접이식 자전거. 이사 하느라 떼어놓은 앞바퀴를 거꾸로 붙였다. 근 반년 만의 라이딩.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팔당대교에서 바라본 미사리 당정섬 부근 자전거도로. 1980년대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사라졌지만, 퇴적물이 쌓이면서 복원된 생태계다. 한강 르네상스 공사가 벌어진 곳에 비해 자연이 잘 보존됐다. 지금 4대강과 한강 르네상스 공사의 기세라면 이곳도 언제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팔당에서 미사리-암사동 구간도 최근 자전거도로를 만든다고 생태계 일부가 파헤쳐졌다. 친환경 이동 수단의 역설이다. 불편해도 흙길로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번째 고비.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도 엄연한 아스팔트 길의 주체란 걸 인지하지만, 감히 차량과 어깨를 나란히 할 용기는 없다. 집에서 1차 지점으로 정한 서강대교 부근 상수나들목까지 찻길이 문제다. 일요일 오전이라 차도 보행자도 별로 없어 어렵지 않게 이동했다. 상수나들목에 들어서니 국회의사당 쪽 하얀 연분홍의 벚꽃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저 칙칙한 곳에서 해마다 꽃이 피는 걸 보니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출발이다. 목적지는 팔당대교. 아이폰을 눌러 서강대교 북단에서 팔당대교 북단을 검색했다. 차량의 최적경로인데, 32.2㎞가 나왔다. 자전거 길이 더 길지 짧을지 가늠이 안 갔다. 속도를 낼 요량으로 앞 기어를 3단, 뒷 기어를 7단에 놓고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11시34분 : 한강철교. 다리와 무릎이 뻑적지근하다. 근육이 뭉친 기분이다. 등 뒤로 깍지를 끼고 가슴을 폈다. 페달을 세게 밟는데도, 자전거 바퀴는 의지대로 나아가지 않았다. 오는 길에 미니벨로가 추월했고, 분홍색의 꽃바구니 자전거마저 앞질러 나아간다. 명색이 MTB 자전거인데…. 며칠 전 측정한 인보디 검사 결과표가 떠오른다. 체지방 분포를 사람 몸통의 도상으로 나타내는데, 내 몸은 텔레토비나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의 형상과 닮아 있었다.

휴식을 위해 미사리 부근 나무 곁에 세워둔 자전거.
11시51분 잠수교. 지쳐 한번 더 쉬었다. 일요일 오전인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다. 오랜만에 화창한 일요일이다. 다리 너머 아파트 숲과 산들의 형세가 드러난다. 해는 중천에 떴는데, 뿌연 실루엣이다. "날씨 좋다"며 감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서울에서 '좋은 날씨'의 기준은 바뀌는 듯했다. 사람보는 재미도 있다.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벤치에서 휴식을 취한다. 족히 200만~300만원대로 보이는 고급 자전거. 헬멧, 고글, 장갑, 저지와 타이츠에 신발까지 복장도 예사롭지 않다. 백발이 성성하나 붉게 그은 피부에 건장한 체구. '젊은 할아버지'다. 그런데 자전거 핸들에 부착한 스피커에선 뽕짝이 흘러나왔다. 자전거를 탈 때 이어폰은 차량 주행 중 GPS로 TV를 보는 것 못지않게 위험하다. 민폐를 끼칠지언정, 차라리 스피커폰을 다는 게 낫다.

자전거 두 대가 미사리 부근 옆 자전거 길을 지나고 있다.
12시15분 : 서울숲. 호안에서 환호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낚시꾼이 60㎝가 넘어보이는 물고기를 낚았다. 한남대교에서 서울숲까지 이르는 길은 국철 중앙선과 함께 달릴 수 있어 좋다. 서울숲에서 바라보는 금호4가동의 달맞이봉 공원 풍경도 좋았다. 개나리가 나즈막한 능선을 샛노랗게 뒤덮고 있었다.

13시25분 : 구리 한강시민공원. 조망 포인트다. 워커힐 호텔과 아차산성유원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을에 코스모스가 유명한 곳. 구획을 잘 정리한 꽃밭에다 강가 쪽에 정자도 하나 만들어놓았다. 2m 남짓한 '자유의 여신상'도 눈에 들어온다. 촌스러운데 묘하게 한국인의 얼굴이라 정감이 간다. 골프 카터 모양의 4인용 자전거를 타는 가족들이 많다.

14시43분 : 팔당대교 북단. 드디어 도착했다. 전환점에서 기분이 좋아졌다. 구리한강시민공원에서 이곳까지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많지 않다. 몇몇 나들목 지점을 빼고는 대체로 속도를 내기 좋았다. 경치도 서울 쪽 한강보단 좋았다. 뭉쳤던 근육이 운동으로 조금 풀리는 듯했다. 다시 고비다. 팔당대교 다리로 오르는 램프를 타야 했다. 차량들이 질주한다. 깊게 심호흡하고 자전거에서 내려 핸들을 붙잡고 램프 갓길을 걸었다. 차들이 경적을 울렸다. 보행도로에 올라 한숨을 내쉬었다. 햇볕에 반짝이는 물살 위로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자락이 드러났다. 팔당대교에서 암사동까지 자전거 길이 뚫렸다. 널찍해 내달리기엔 편했다. 예전 길은 아기자기했다. 흙길로 내달리는 감칠맛이 있었는데, 그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원래 당정섬이 있던 곳. 1980년대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하면서 골재를 채취해 없어졌던 섬이다. 토사 등 퇴적물이 쌓여 다시 섬이 생겼다. 버드나무 같은 식물이 자랐다. 오래된 시멘트 호안을 뚫고 쑥이 나 있었다. 40~50대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쑥을 캐 검정 비닐 봉지에 담았다.

16시 : 고덕수변생태공원. 전날 인사동 '별다방 미스리'란 찻집에 갔다. 양은 도시락에 밥과 소시지, 김치볶음, 계란프라이를 넣은 '추억의 도시락'을 팔았다. 젊은 여성들이 부모나 삼촌 세대가 먹던 도시락을 맛나게, 신나게 먹었다. '추억'에도 DNA가 있는 걸까. 나도 추억의 도시락을 쌌다. 강가로 가 강물에 손을 씻고,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도착지 서강대교를 검색했다. 26.7㎞가 찍혔다. 서쪽으로 암사생태경관보전지역도 좋다. 조팝나무 군락과 벚꽃, 버드나무가 어우러진 식생이 일품이다. 지친 근육에 생기가 도는 듯했다.

17시14분 : 잠실철교. 지천 위의 비좁은 다리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구급대원들이 얼굴에 피를 흘린 채 쓰러진 50대 남성을 들것에 실었다. 어린 아들 딸을 데리고 자전거를 타고 온 아버지가 말했다. "자 봤지. 오늘만 두번째야. 앞질러 나가려고 하면 안돼. 사고 나. 경쟁하면 안돼." 입시와 취업 경쟁의 레이스에서 그 아버지는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군중과 경찰관과 앰뷸런스가 있는 걸 본 한 고등학생은 "야 누가 또 자살했나봐"라고 말했다. 이 풍경은 한국 사회의 압축판 같다. 덩치 큰 물고기 한마리가 시멘트 보를 넘어 지천으로 거슬러 오르려 용을 쓰고 있었다.

19시6분 : 서강대교 북단. 잠실에서 이곳까지 '고난의 행군'이었다. 팔다리에 힘이 빠졌다. 조그만 오르막을 만나면 자전거에서 내려야 했다. 지친 육신을 간신히 이끌고 나아갔다. 밤섬 너머 영화 < 괴물 > 의 무대가 된 여의도순복음교회 앞 강변 분수대에서 물이 뿜어져나와 춤을 춘다. 한강 르네상스 공사판이 벌어진 곳. 멀쩡한 한강변을 뒤엎고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퍼부어 공원과 놀이터를 만들었다. 이 '스펙터클'은 현실을 호도하는 위장과 은폐 장치 같다.

다음날 : 출근했더니 한강 자전거 체험을 지시한 부장이 "혈색이 좋아졌다"고 한다. 점심 때 보름 만에 만난 사람들이 "뱃살이 빠진 것 같다"고 했다. 다음번엔 행주대교와 팔당대교를 왕복하리라 다짐한다.

-길잡이-

*서울 강동구 암사동과 하남시 창우동 팔당대교를 연결하는 자전거 도로는 13.5㎞다. 지난달 말 개통됐다.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분리됐다. 개통 소식에 사람들이 몰려 주말에는 번잡하다. 이로써 팔당대교와 행주대교를 잇게 됐다.

*구리 한강시민공원에서는 한가족이 탈 수 있는 골프 카터 모양의 4인용 자전거를 빌려준다. 30분에 8000원. 구리시는 올 초 왕숙천~장자못~한강~아차산~동구릉 등 총 47㎞ 연장을 3개 코스로 나눈 탐방로 '구리 둘레길'을 만들었다.

*한강생태문화연구소 신정섭 소장이 쓴 < 한강을 가다 > (눌와)를 봐도 좋을 듯하다. 한강의 발원샘이 있는 금대봉에서 임진강과 한강의 경계지역 조강까지 천이백리 물길을 따라가며 쓴 생태문화 답사기다. 한강의 어제와 오늘을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볼 수 있다.

*장거리를 탈 때에는 영양과 수분을 보충할 먹거리를 준비해야 한다. 영양보조식품이나 분말 보충제도 많이 나와 있지만, 꼭 전문 먹거리를 사갈 필요는 없다. 김밥 같은 것도 좋다. 당분 섭취를 위해 빵에 잼이나 꿀을 발라먹거나 바나나를 챙겨먹어도 좋다.

*무엇보다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스트레칭과 헬멧 착용은 필수다. 한강변에 있는 야구장에서 난데없이 야구공이 바퀴 쪽으로 날아올 때도 있다. 다른 자전거의 이동도 주의해야 한다. 특히 어린이들은 방향 감각이 없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다. 특히 반포·여의도지구 등 사람 많은 곳에서 서행해야 한다. 도중에 멈출 때는 특히 후방에 뒤따라 오는지도 살펴야 한다.

< 글 김종목·사진 정지윤 기자 jom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