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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안짓는 귀촌인에 혈세 '펑펑' [귀농·귀촌 50만 시대의 그늘]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8. 10. 1.



농사 안짓는 귀촌인에 혈세 '펑펑' [귀농·귀촌 50만 시대의 그늘]

한현묵 입력 2018.10.01. 07:58

(2회) 지자체 유치경쟁에 혈세만 펑펑 /
귀농인은 100명 중 5명에 불과/대부분 전원생활.. 1인 가구도 ↑/
무분별한 지원에 예산 낭비 지적

충북 보은군이 최근 3년간 귀농·귀촌인 유치에 투입한 돈은 72억원이다.

매년 24억원의 예산을 쓰면서 유치한 귀농·귀촌인은 600명가량이다.

이 가운데 마을에 정착해 농사를 짓는 귀농인은 매년 130여명에 불과하다.

지난해의 경우 전원생활을 하려는 귀촌인은 496가구 606명으로 귀농인(98가구 129명)의 약 5배에 달했다.

농사를 짓지 않는 귀촌인들은 농촌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지도 못할 뿐 아니라 생산력 증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2007년 귀농·귀촌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전남 강진군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강진군은 147농가 287명의 귀농·귀촌인을 유치했다.

조례 제정 이후 매년 200∼300명의 귀농·귀촌인을 강진으로 불러들였다.

귀농·귀촌 유치와 지원에 매년 10억원가량의 예산을 투입한다.

조례 제정 이후 지난 10년간 귀농·귀촌인은 1040농가 2500명가량이다.

이 기간 강진군이 귀농·귀촌인 유치와 이들의 다양한 지원사업에 쓴 예산은 100억원에 육박한다.

인구가 3만여명에 불과한 전남 곡성군도 2014∼2018년 5년간 35억원을 쏟아부어

1326가구 2459명의 귀농·귀촌인을 유치했다. 이들 귀농·귀촌 가구당 가족 수(1.8명)는 채 2명이 되지 않는다.

3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귀촌인구는 51만6817명으로 귀농·귀촌인구 통계를 시작한 2013년(42만2770명) 이후

매년 3만∼4만명씩 늘면서 4년 만에 50만명을 넘어섰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귀농·귀촌인 유치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다.

지자체들은 귀농·귀촌인들이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로 급격하게 줄어드는 농촌 인구 유입의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농사와 무관한 귀촌인이 대부분을 차지해

농토를 일구고 식량을 생산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시에서 은퇴한 귀촌인들은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농촌 고령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해 귀농인은 1만9630명으로 전체 귀농·귀촌인의 4.9%밖에 되지 않았다.

귀농·귀촌인 100명 중 귀농인은 5명에 불과한 셈이다.

더욱이 귀농가구는 1만2630가구로 전년도(1만2875가구)보다 245가구(1.9%)가 감소했다.

부인이나 자녀 없이 나 홀로 귀농하는 가구가 느는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지난해 1인 귀농가구는 전년보다 8.9%나 증가했다.

2013년과 비교하면 무려 37.7%나 늘었다.

농촌지역 지자체가 귀농·귀촌인 유치로 인구 감소를 다소 늦추고는 있지만,

무분별한 지원과 유치 전략으로 예산만 퍼준다는 지적을 받는다.

귀농·귀촌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행정편의적 지원도 문제다.

◆정부 파격적인 지원에 매년 지원금도 증가

정부와 지자체의 귀농·귀촌인 지원은 파격적이다.

농식품부가 귀농·귀촌 장려를 위해 펴는 지원정책은

귀농창업·주택구입 사업과 도시민 농촌유치 사업, 귀농인의 집 조성 사업으로 크게 3가지다.

이 중 가장 큰 비중은 귀농창업·주택구입 사업이다.

귀농하려는 가구당 귀농창업 3억원과 주택구입비 7500만원 등 최대 3억7500만원을 지원한다.

대출금리는 2%로 5년 거치 10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농협을 통해 융자 지원한다.

정부는 이 자금의 이자차액 보전을 위해 매년 80억∼100원가량을 보조한다.

이 자금을 지원받으려면 농업 전업을 목적으로 농촌에 거주하고, 전입일 이전 1년 이상 농촌 이외의 지역에 살아야 한다. 귀농교육을 100시간 이상 이수해야 하며, 65세를 넘으면 안 된다.

귀농창업·주택구입비의 경우

신청자가 몰리면서 조기에 마감되자 정부는 지난해부터

한도액을 25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500억원을 증액했다.

농식품부는 올해 귀농·귀촌교육과 도시민 농촌유치 사업에 43억원과 55억원을 각각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귀농·귀촌 지원금은 3150억원으로 귀농·귀촌 지원사업을 처음 시작한 2011년(513억원)의 6배를 넘어섰다.

귀농·귀촌인의 신청이 몰리고 부정 수급이 적발되면서

올해부터는 선착순에서 사업대상자 선정심사위를 구성하는 등 지원절차를 바꿨다.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받을 수 있었던 지원금이

지자체별로 외부 평가위원이 참여하는 심사위를 구성하도록 했다.

◆매년 수백명 유치에 지자체 수십억 펑펑

전국 지자체 대부분은 귀농·귀촌인 유치를 위해 전담조직을 만들었다.

보은군은 2011년 전국 최초로 귀농·귀촌계를 신설했다.

이후 충북 단양군이 도시민유치팀을, 홍성군이 귀농·귀촌팀을, 강진군이 귀농사관학교를 각각 설치했다. 지자체들이 앞다퉈 명칭은 달라도 귀농·귀촌 유치를 위한 행정조직을 꾸렸다.

일부 지자체는 귀농·귀촌 특구 조성과 저리융자 지원 등 특수시책을 확대하고 있다.

전북 장수군과 고창군은 젊은 층의 귀농·귀촌을 유도하기 위해 현대식 주택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고창군은 농지구매자금으로 최대 1억원까지 연리 2%의 융자 지원을 한다.

강원 홍천군은 귀농 10가구 이상 유치 마을에 귀농인과 주민 간 화합을 위한 운영비(600만원)를 준다.

충북 음성군은 귀농인에게 농기계 구입비로 200만원과 실습교육비로 5개월간 매월 80만원을 준다.

경북 문경시는 예비귀농·귀촌인들에게 무상으로 주택을 임대하고 있다.

2014년 주택 3채로 시작된 이 사업은 지난해 9채까지 늘었다.

경북 안동시는 올해 귀농인 농어촌진흥기금(5000만원)을 운영하고 있다.

안동시로 전입한 지 5년 이내의 귀농인들은 연리 1%의 농업기반시설 확충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지자체들이 정부의 귀농·귀촌 지원 자금과 비슷한 예산을 편성해 중복지원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 고치고 나니 수리비···‘사후약방문’식 지원

정부와 지자체가 귀농·귀촌 유치와 이들의 정착을 위해 지원금을 주고 있으나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귀농·귀촌인들 사이에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탁상행정을 벌인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귀농인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주택수리비의 지급 시기다.

귀농과 동시에 주택을 고쳐야 하지만 귀농 후 6개월 넘어서 주택수리비를 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남 영광군 한 마을에 귀농한 이모씨는

귀농할 빈집을 알아보고 군청에 주택수리비(500만원)를 신청했지만

귀농할 집으로 전입된 전입신고서와 농지원부를 요구했다.

빈집에서 6개월간 거주해야 신청자격이 된다고 했다.

다른 지자체도 이런 황당한 조건을 내건다.

당장 살아야 하는 김씨는 입주 전에 장판과 도배는 물론 싱크대, 섀시 교체 등을 마쳤다.

6개월이 지나자 주택수리비가 나왔지만 용도는 ‘주택수리’로 한정돼 있었고,

주택수리 내역과 영수증을 첨부해야 했다.

김씨는 멀쩡한 싱크대 등을 다시 교체하지 않는 한 이 주택수리비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농기구를 보관할 창고가 필요해 군에 주택수리비 전용을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김씨는 주택수리비를 한 푼도 써보지 못하고 반납했다.

주택수리비 지급 대상에 선정되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귀농인이 늘면서 지자체에 보조금 지급을 신청하면 대기번호를 받기 일쑤다.

지자체의 주택수리비 예산은 5000만원으로 한정돼 매년 10명밖에 받지 못한다.

지자체의 ‘귀촌·귀농 박람회’를 성토하는 귀농·귀촌인들이 늘고 있다.

박람회장에서 얻은 정보와 실제 귀농 후 지자체의 지원이 달라서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박람회장에서 귀농·귀촌인들에게 7가지 정도의 지원사업을 한다고 설명한다.

귀농·귀촌하면서 목돈이 필요한 주택구입자금을 비롯해 농기계 구입자금,

창업지원자금 등 귀농·귀촌인들에게 솔깃한 내용이다.

그러나 지자체는 사업마다 예산을 한정하기 때문에 한 귀농인이 7가지의 사업을 모두 지원받기란 불가능하다.

경남에 귀농한 김모씨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기간이 귀농·귀촌 후 5년으로 너무 짧다”며

“귀농·귀촌인은 이 기간에 한두 개의 사업밖에 지원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영광·보은=한현묵·김을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