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겨울, 속 꽉찬 대게 맛보러 떠나는 동해안 대게 여행.
무슨무슨 데이는 특정계층의 이벤트라지만, 제사나 명절처럼 일년 중 때가 되면 꼭 챙겨야하는 것이 있다. 이중 하나가 제철 먹거리 여행이다. 사계절 제철 먹거리만 챙겨먹어도 약이 필요없다는 옛말처럼 우리땅 제철에 나는 먹거리는 맛이 좋을 뿐 아니라 영양면에서도 최고다. 대개 대게(竹蟹)는 12월 초겨울이 제철로 잘못알고 있지만, 사실 금어기가 끝나 대게를 다시 맛볼 수 있다는 반가움에서 비롯된 것일 뿐 진짜 제철은 3~5월까지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날이 따스해질 무렵이면, 껍질 속 살이 꽉꽉 들어차고 출하량도 많다. 그래서 이때 쯤부터 울진, 영덕, 포항 등 대게의 명산지들이 연이어 대게축제를 벌인다. 게다가 이때를 놓치고 나면 12월까지 싱싱한 대게를 맛보기 어렵다. TV나 사진 속 발갛게 익은 대게의 영상을 보며 입맛만 쩍쩍 다시느니 지금이라도 떠날 채비를 꾸리면 된다. 어느 옛 광고카피처럼 '순간의 선택이 1년을 좌우'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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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별미 제철대게를 즐길 수 있는 날도 이젠 한달 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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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 빨간 대게
안구에 편광 필터라도 붙였는지 눈부시도록 푸르른 동해바다가 당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빨간 등짝을 접시에 대고 하늘을 향해 팔다리를 쫙 펼친 대게의 하얀 속살 만이 망막에 맺힌다. 이곳은 경상북도 울진 후포항. 얼마전 대게 축제를 열었던 울진대게의 집산지다. 길다란 다리를 하나 비틀어 뜯었다. 늘씬한 미각(美脚)이 서리가 내려앉은 듯 얼어붙은 겨울 미각(味覺)을 단번에 북돋운다. 토실토실 탱탱한 다릿살이 '붉은 스타킹' 속에서 쏙 빠져나온다. 끄트머리만 잡고 있는데, 흩어지지도 부러지지도 않는다. 냉큼 한입 베어물었더니 주먹보다 작은 입안을 가득 채우는 낯익은 대게의 향기. 코를 통해 내쉬기가 아까울 정도다. 누가 감히 게맛살과 비교를 할까. 이번엔 집게 주먹살을 맛볼 차례. 늘 '가위'만 내지만 빼꼼히 '보'만 내는 가리비 따위 한테는 이기고 마는 대게의 뾰족한 집게발 속엔 꼬들꼬들한 살토막이 한가득 들었다. 다릿살이 기나긴 맛실의 타래라면, 집게살은 굵고 뭉퉁한 살들이 마치 주상절리처럼 켜켜히 쌓여있는 듯한다. 배를 까보았다. 희고 뽀얀 살들이 이리저리 엉긴 채 뱃속에 가득 들었다. 속껍질을 발라낼 기술도 여유도 없다. 한겨울 방어가 제 죽는지 모르고 낚싯바늘 숨긴 오징어를 덥썩 물듯 들어 입에 쑤셔넣는다. 진한 대게향과 더불어 달달 짭조름한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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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 동해안 최고 별미 대게를 놓치면 최소한 8개월은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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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한 껍데기를 박박 긁어 밥까지 볶아먹고 난 후, 그제야 얼굴에 이리저리 튄 게살을 떼어낼 수 있었다. 어라? 식탁 위 시원한 코다리 매운탕이 말없이 식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이게 언제 올라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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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아직 머물고 있는 동해 바다는 낚싯꾼들에게 최고의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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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따라 맛따라 대게로드
7번국도를 따라 내려가면 대게와 맛난 제철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이른바 '대게 로드'가 푸른 바다를 끼고 펼쳐진다. 이 길은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새천년해안도로(강원도 삼척시), 블루로드(경북 영덕군) 등으로 부르는 이름이 다르지만 사실 900㎞에 이르는 7번 고속국도가 정식 명칭이다. 대게는 강원도 삼척부터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파도가 넘실대는 절경의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어느새 가로등이 대게 모양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울진으로 넘어온 것이다. 죽변항을 지나 후포항까지 수많은 대게 가로등과 조형물을 스치며 군침을 흘린다. 어느새 영덕이다.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원조 영덕대게를 내세우는 영덕군은 그동안 대게 서식지 왕돌짬의 '대주주'인 울진군과 날세운 자존심 싸움을 벌여왔다. 여기다 대형어선들이 노획하는 엄청난 어획량을 내세운 포항시까지 가세했다.
아무튼 대게는 말이 없다. 대게의 향기에 배어있는 듯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를 달린다. 공연이 좋으면 S석티켓 값이 아깝지 않듯, 경치가 좋으니 리터당 2000원이 넘는 기름값도 개의치 않게된다.
관동팔경 중 하나로 꼽히는 울진군 망양정 부근에서 시작하는 917번 지방도는 '한국의 아틀란틱 로드'라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바다 가까이로 굽이친다. 내려오는 길 오산항, 사동항과 구산항 등 작고 아름다운 항구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총총 박혀있는 항구는 조용하고 운치있지만 방파제 낚싯꾼들 사이에선 나름대로 '익사이팅'한 곳으로 소문났다. 학꽁치, 감성돔 등이 잘 잡힌다. 날름거리는 파도와 갈매기를 벗삼아 쪽빛 바다를 달리는 기분은 겨울바람의 청량감과 어우러져, 도시로부터 가져온 끈적이는 스트레스의 때를 단박에 씻어낸다. 길의 낭만은 그대로 이어져 영덕의 블루로드 중 강구~축산 간 해안도로로 계승된다. 죽죽 뻗은 대게 다리처럼 멋지고 맛진 길은 고래불 해변과 해맞이공원, 그리고 대게 집산지인 강구항을 꿰고 멀리 포항 구룡포로 안내한다. 여기서 대게 로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부산 기장군 기장시장 대게골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멈추게 된다.
울진 | 글.사진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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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항 '폭풍속으로' 세트장은 그야말로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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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볼만한 곳=울진 망양정과 월송정은 관동팔경 중 명승으로 꼽히는 곳이다.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란 현판을 하사한 망양정(望洋亭)은 사실 원래 정자가 섰던 옛터는 아니다. 풍파에 허물어져 철종 9년(1858년) 원 위치보다 좀 더 남쪽 언덕 위로 옮겨다 새로 지었다. 제1경 월송정(越松亭)은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좋지만, 하늘높이 치솟은 해송숲 사이로 걷는 오솔길의 운치가 '명품'이다.
죽변(竹邊)은 울창한 산죽(조릿대)숲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푸른 대숲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에 드라마 '폭풍속으로'세트장이 있다. 하얀 파도가 너실대는 바다 위로 대나무숲과 하얀 교회당이 서있는 그야말로 '그림'이 펼쳐진다.
엑스포공원 내 동해바다 생명자원 보고인 '왕돌초'의 해양생태를 그대로 옮겨 놓은 울진아쿠아리움(지상 2층 4620㎡규모.담수용량 911톤)은 울진대게를 비롯해 상어, 곰치, 거북이, 해마 등 희귀 바닷생물 116종 5000여 마리를 전시중이다.(054)789-5531. 후포항에는 재미난 모형과 전시물로 바다 생태자연 환경을 배울 수 있는 울진대게 홍보전시관이 있다. 울진군 문화관광과 (054)785-6393.
죽변항 인근 영덕 블루로드는 해안선을 따라 걷는 50㎞의 도보코스로 지나는 길목에 풍력발전기 등 이국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경정3리 차유마을은 '대게 원조마을'이라 알려진 곳으로 해안에 펼쳐진 돌밭이 멋지다. 여름에는 어촌체험마을로 문어 통발놓기 등 다양한 체험과 숙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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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읍 해주 작장면. 각종 채소와 해물을 함께 비벼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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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길=수도권에서 7번국도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며 삼척에서 부터 내려오자면 중부(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강릉~동해고속도로를 나와 삼척부터 내려오면 된다. 곧바로 후포항을 가자면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 만종 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서안동IC로 나와, 34번 국도 따라 청송, 영덕을 거쳐 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 ●잘 곳=울진 후포항 인근 백암온천이 계절적으로 딱 좋다. 여름에 꽃을 활짝 피우는 배롱나무(백일홍) 가로수가 늘어선 길로 산고개 하나만 넘으면 국내 최고 명천으로 꼽히는 백암온천이 나온다. 하루 2000여톤씩 용출되는 51도의 라듐천이 피로를 싹 씻어준다. 한화리조트 백암은 온천욕과 고로쇠약수 등 몸에 좋다는 것은 모두 즐길 수 있는 웰빙 리조트로 소문났다.(054)787-7001
떠나는 겨울, 속 꽉찬 대게 맛보러 떠나는 동해안 대게 여행.
무슨무슨 데이는 특정계층의 이벤트라지만, 제사나 명절처럼 일년 중 때가 되면 꼭 챙겨야하는 것이 있다. 이중 하나가 제철 먹거리 여행이다. 사계절 제철 먹거리만 챙겨먹어도 약이 필요없다는 옛말처럼 우리땅 제철에 나는 먹거리는 맛이 좋을 뿐 아니라 영양면에서도 최고다. 대개 대게(竹蟹)는 12월 초겨울이 제철로 잘못알고 있지만, 사실
금어기가 끝나 대게를 다시 맛볼 수 있다는 반가움에서 비롯된 것일 뿐 진짜 제철은 3~5월까지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날이 따스해질 무렵이면, 껍질 속 살이 꽉꽉 들어차고 출하량도 많다. 그래서 이때 쯤부터 울진, 영덕, 포항 등 대게의 명산지들이 연이어 대게축제를 벌인다. 게다가 이때를 놓치고 나면 12월까지 싱싱한 대게를 맛보기 어렵다. TV나 사진 속 발갛게 익은 대게의 영상을 보며 입맛만 쩍쩍 다시느니 지금이라도 떠날 채비를 꾸리면 된다. 어느 옛 광고카피처럼 '순간의 선택이 1년을 좌우'하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