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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캠핑,기타자료/수도권 명산 30선

(28) 안양·군포·안산 ‘수리산’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1. 12. 2.

 

<수도권 명산 30選>벼린 발톱처럼 날카로운 태을봉 능선…그래서 이름도 (독)수리산
(28) 안양·군포·안산 ‘수리산’
문화일보|
엄주엽기자|
입력 2011.12.02 14:11
|수정 2011.12.02 14:21
지난 5월 수리산(修理山·489m)을 찾았을 때 바람이 불면 짙은 솔내음의 송홧가루가 물결치듯 날려 시야가 흐릴 정도였던 기억이 있다. 11월27일 찾은 초겨울 수리산은 잎사귀를 떨군 나무 사이로 세 도시의 경관이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왔다. 평일이지만 등산객도 많았다. 인구 밀집 지역인 안양, 군포, 안산 등 3개 도시의 경계에 위치한 수리산은 철마다 모습을 바꿔 가며 암릉과 숲, 계곡의 경관이 좋아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산이 거의 없는 서울 서남부에 자리 잡은 귀한 산이다.

 

 

↑ 태을봉에서 슬기봉으로 가는 능선에서 만나는 덱.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수리상 정상인 태을봉이다. 왼쪽 아래가 담배촌이고 그 너머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살짝 보인다. 수리산은 안양, 군포, 안산을 품고 있는 품이 넓은 산이다. 김낙중기자 sanjoong@munhwa.com

수리산은 높이에 비해 산세가 꽤 커 보인다. 종주를 하자면 5~6시간이 걸릴 정도로 능선도 길게 자리 잡고 있다. 보통 수리산 종주는 전철 1호선 명학역이나 안양 쪽 병목안에서 출발해 관모봉(426m)에 먼저 오른 뒤 태을봉(489m)-슬기봉(429m)-군부대-수암봉(395m)-병목안으로 내려온다. 안산 쪽 안산초교에서 수암봉을 먼저 거쳐 역순으로 돌기도 한다. 능숙하게 걷더라도 5시간 반은 족히 걸린다. 가볍게 볼 것이 아닌 게, 특히 태을봉에서 슬기봉 사이의 코스는 칼바위, 병풍바위 등 매끄럽고 뾰족한 바위 능선길이 많아 조심조심 가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종 때부터 '안산군(安山郡) 수리산(修理山)'으로 나온다. 이름이 조선 초기에도 지금과 같았던 것이다. 수리산의 지명에 대해선 몇 가지 설(說)이 있다. 먼저 안산의 진산(鎭山)인 취암(鷲岩) 유래설이다. 지금은 '수암봉'이라 부르는 취암의 '취(鷲)'는 '독수리'다. 안산 부곡동 쪽에서 취암을 보면 거대한 검둥수리가 남쪽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펼칠 듯한 모습이 나타난다. 대동지지(大東地志·1864)에도 "취암봉의 독수리 취자를 일컬어 수리(修理)라고 한다"고 기록돼 있다. 흥미로운 것은 '수리'는 '공군'의 상징이기도 한데, 슬기봉과 수암봉 사이 능선에 공군기지가 있다.

두 번째는 슬기봉-수암봉 사이 군포 방면으로 위치한 수리사(修理寺) 유래설이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이 사찰에서 수리산의 지명이 생겼다는 것이다. 또 택리지(澤里誌·1756) 경기편에 보면 이(李)씨 성을 가진 왕족이 수행을 했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수리(修李)'설이 있다.

그런데 '수리'는 우리의 지명에 여러 가지 변형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 중 하나다. 노산 이은상(1903~1982)이 1933년 설악산을 답산한 뒤 동아일보에 연재한 '설악행각'에 보면, 설악(雪岳)의 설(雪)이 우리 고어인 '?괌??대한 음역(音譯)이라고 주장한다. 이은상에 따르면 '?괌??생명의 절대 긍정을 의미하는 우리 민족의 보배로운 말로, '산다''삶' 등이 모두 여기서 나왔다. '쌀(米)', '사리(舍利)' 등도 여기서 유래했고, 지명의 '수리(修理)'나 '취(鷲)'자도 원래 옛적에는 '?괌??사용했던 것이 한자로 음역하며 바뀐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수리산의 옛 이름은 '?구?'로 '설악'과 그 이름의 어원이 같다는 얘기다.

수리산의 정상은 태을봉(太乙峯·사진)이다. '태을'은 도교(道敎)에서 천제(天帝)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옛사람들은 십간의 하나였던 '태을'을 부귀의 근원으로 보기도 했다. 가뭄이 들면 태을봉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얼마 전 교체된 것 같은 정상 표지석에는 "풍수지리에서는 큰 독수리가 두 날개를 펼치고 날아내리는 모습을 매우 귀한 지상으로 꼽으며 이런 형상을 '태을'이라 부른다"고 새겨 놓았다.

수리산은 여러 종교와 인연이 있다. 태을봉은 도교와 관련이 있는 이름이지만, 동국여지승람(1481) 등에는 수리산의 원래 이름이 견불산(見佛山)이라고 나와 있다. 부처를 본 산이라니, 옛적엔 불교와도 인연이 깊었던 것이다. 안양 병목안 쪽 담배촌은 유명한 천주교 성지여서 기독교와도 연관이 깊다. 단순한 산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수리산은 성남시의 남한산성(1971년), 가평군의 연인산(2005년)에 이어 2009년 경기도 세 번째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당초 계획은 올해 말까지 116억원을 들여 주차장과 화장실, 방문자 센터, 등산로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수리산은 교통이 편리하다. 전철 산본역, 수리산역, 대야미역, 안양역, 금정역, 명학역 등에서 내려 도보로 20여분 정도면 등산로 들입목에 닿는다. 3개 시에 걸쳐 있는 만큼 코스도 무척 많다. 가장 선호되는 들입목은 안양 방면 병목안이다. 산에 둘러싸여 마치 호리병 입구처럼 생겼다 해서 이 같은 지명이 붙었다. 다만 종주할 때 슬기봉~꼬깔봉(451m)의 군 시설을 우회하기 위해 능선을 비스듬히 내려왔다가 올라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 꼬깔봉에서 수암봉까지 코스는 군부대 철책을 따라가야 한다. 안양시 만안구청 뒤편 기슭엔 삼림욕 코스도 있어 인근 주민들의 좋은 휴식처로 활용되고 있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등산 코스>

▲ 전철1호선 명학역 ~ 성결대 방면 ~ (성결대직전 좌측)수리산 삼림욕장(상록마을) ~ 관모쉼터 ~ 관모봉 ~ 태을봉 ~ 병풍바위 ~ 급경사 내림길 ~ 칼바위 ~ 고깔봉 ~ 군부대철조망 ~ 수암봉 ~ 담배촌

▲ 병목안시민공원 ~ 태을봉 ~ 슬기봉 ~ 수암봉 ~ 병목안시민공원

▲ 수리산역 ~ 능내터널위 ~ 암도5거리 ~ 슬기봉 ~ 태을봉 ~ 관모봉 ~ 수리약수터

 
<수도권 명산 30選>여기, 아세요? 천주교 박해 피해 담배 일구며 숨어살던 담배촌… 2000년 聖地 지정
안양 수리산 자락의 담배촌(현재 안양9동·사진)은 병목안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지세가 병목처럼 입구는 좁지만 들어서면 골(谷)이 깊고 넓다 해 '병목안'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수리산 뒤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해 '뒤띠미'로, 이후에는 후두미동(後頭尾洞)으로 불렸다.

이 마을엔 하동 정씨를 비롯해 금녕 김씨, 원주 변씨, 청주 한씨 등이 오랫동안 살아왔다. 이곳은 원낙 후미지다 보니 군사 요지여서 6·25전쟁 당시 인민군 부대가 진주했고, 그래서 피아간에 전투가 치열해 시신이 골을 메웠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 이전 조선 후기에는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았다. 우리나라에서 김대건 신부에 이은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1821~1861)의 아버지 최경환(1805~1839)을 비롯한 천주교도들이 조정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1837년 7월 이곳에 이주, 정착하면서 생계를 이어 가기 위해 담배를 경작해 담배촌이라 불리게 됐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한강 이남에서는 담배촌에서 재배한 담배를 일등품으로 칠 만큼 품질이 우수했다고 한다. 예전에 담배촌 주민들은 담배 경작 외에 땔나무와 토종꿀을 채취해 이를 안산장(시흥시 수암동), 군포장(호계3동 구군포), 안양장(안양1동 시대동) 등에 팔아 생활했다고 한다.

최경환은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순교했다. 최경환의 시신은 담배촌에 묻혔다가 명동성당으로 천묘 후 다시 양화진성당으로 옮겨졌다. 1925년 7월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해 방한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 5월6일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이곳은 2000년 천주교 성지로 지정돼 전국 각지에서 연간 3만여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찾는다. 현재 담배촌에는 최경환 성지를 비롯해 복자성당, 최경환 생가, 성례마리아의집 등 천주교회와 관련된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다.

< 수도권 명산 30選 > 벼린 발톱처럼 날카로운 태을봉 능선…그래서 이름도 (독)수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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