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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전 거 /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14. 울산~포항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1. 11. 2.

14. 울산~포항

■ 울산 현대중공업 정문 앞 ‘진미만두’

수평선 끼고 씽씽 내달리는 해안길
가을햇살은 바퀴 아래 바스라지는데
내공 절정 만두집 찾아 힘찬 페달링

정주영 회장 생전 단골집
규모 작아도 2대째 이어온 35년 손맛
문 열기 기다리며 20여분 가게 앞 농성

울산에는 2개의 강이 흐른다. 문수산과 영취산에서 발원한 외황강, 그리고 운문산에서 발원한 태화강.

강줄기는 오랜 가을 가뭄에 다소 여위어 있었지만 하구에 거대하게 자리 잡은 울산공단을 관통하며 울산만으로 느릿느릿 빠져나갔고 우리의 자전거도 그러했다. 깊어진 가을은 방어진을 지나 대왕암∼일산항을 잇는 산길 위에 증류주처럼 진하게 고여 일렁인다.

가을의 중심을 자전거가 관통할 때, 만지면 바스라질 것 같은 햇살이 바퀴 아래서 수많은 파편을 뿌리며 산산이 부서졌다. 너울이 일어나는 수평선에는 방어잡이 어선 몇 척이 떴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거른 상태였다. 울산 현지 지인을 통해 동구 전하동에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내공 충만한 절정의 만두집이 있다는 귀띔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 현대 정주영 회장도 단골…35년 내공의 만두집

현대중공업 정문 부근의 만두집은 큰길가에서 한 칸 들어간 골목에 숨어있었다.  점심 한 끼를 맛있게 먹고자 일부러 아침식사까지 거르고 찾아 나선 자전거 식객들의 동물적(?) 감각은 그 작은 식당을 단박에 찾아냈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만두 맛을 볼 수 없었다. 만두집에 들어선 시각이 오전 10시 20분. 그런데 이 집의 개점 시각은 오전 11시라는 것이다.

40분을 기다릴 각오로 가게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주인장이 서둘러 만두를 빚어 개점 시간보다 20분 빠른 10시 40분에 우리를 불러들였다.

찐만두, 군만두, 만두국, 새우만두면 등 만두를 테마로 한 네 개의 메뉴를 한 가지씩 모두 주문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중공업에 내려오면 반드시 들렀고, 때로는 서울로 수송해서 먹었을 만큼 즐겼다는 얘기가 전해져오는 찐만두.

투명해 보일만큼 얇은 만두피 속에 부추 등 야채와 돼지고기가 적절히 들어있어 한입 베어 물면 뜨거운 만두즙이 살짝 흘러나왔는데 과연 식감도 맛도 수준급이다.

갓 튀겨내어 뜨거운 군만두는 차가운 단무지와 환상의 궁합을 보였다.

화교인 주인은 1976년 아버지가 가게를 오픈한 이후 이제는 어머니와 함께 2대째 만두로 한 우물을 파고 있다고 한다. 35년 한 자리를 지킨 덕분에 지역에서는 어지간히 입소문이 나 점심 때면 줄을 서는 곳이지만 의자와 식탁이 15명 정도가 앉으면 꽉 찰 정도이고 만두는 주문을 받고나서야 카운터 뒤 작은 도마 위에서 빚어낸다.

● 시각적 상쾌함, 풍부한 볼거리…울산 해안도로

다시 길을 나선 자전거 나그네들은 복잡한 울산 시내를 벗어나 1027번 지방도를 타고 정자항까지 올라갔다. 정자항부터는 교통량이 다소 있는 31번 지방도로와 나란히 해안 마을을 구불구불 돌아가는 옛길이 그대로 살아있어 자전거로 달리기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조건이다. 특히 바다 쪽으로 모래해변, 몽돌해변, 그리고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해안암벽이 펼쳐져 시각적으로도 상쾌하다.

그러고 보니 부산부터 공단 등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우회하는 몇 구간을 제외하고는 바다에 면한 해안도로가 거의 단절 없이 연결되고 있다. 신작로를 벗어난 옛길은 마을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가므로 주행거리는 길지만 정답고 볼거리가 풍부해 집단가출 자전거팀의 여행코스는 가능한 한 옛길에 충실하고 있다.

각양각색의 벽회들로 마을 전체가 갤러리인 읍천항 마을길로 진입하고 있는 자전거일주팀. 민가의 담벼락, 대문은 물론 방파제나 도로바닥에도 예술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그림이 즐비해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마을이다.


울산 벗어나 지방도따라 구불구불
해안암벽 펼쳐진 환상의 자전거길
읍천항 120여점 벽화에 감탄

곳곳 오징어 덕장 짭조름한 냄새
40km 돌아가는 느린 호미곶 코스
기막힌 해안 풍경보자 “잘했다”

울산∼구룡포 구간은 대부분 고개가 없는 평지여서 마을길이라도 전진 속도가 사뭇 빠르다. 울산시는 이처럼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십분 활용해 태화강을 중심으로 방어진에서 석남사까지 동서축과 부산시 기장에서 경주시계까지 이어지는 남북축의 자전거도로를 구축중이다. 자전거타기 좋은 최고 도시를 목표로 2015년까지 450km에 이르는 자전거 도로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정자항과 감포항 사이에 경주 읍천항이 있다. 워낙 작은 어촌이어서 주행 코스를 검토할 때도 의식하지 못했던 이 마을은 축대, 방파제는 물론 민가의 담벼락까지 온갖 그림들로 장식이 되어있어 눈길을 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읍천 인근의 월성원자력발전소가 지난해 공동 기획해 완성한 벽화는 모두 120여점으로 몇 차례의 작품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그림들이다.

● 빠른 길이 정답?…네 배 먼 호미곶 코스 택한 이유

오후 들어 바람이 강해져 바다가 들끓기 시작한다. 햇볕은 따스했지만 계절이 계절인 만큼 지속적으로 바람에 노출되자 쉴 때는 꽤나 쌀쌀하게 느껴진다. 탄력을 받아 평균 시속 20km로 감포, 양포 구간을 돌파한 뒤 구룡포에 닿을 즈음 짧아진 가을해가 토함산 너머로 기울었다.

밤바다의 수평선은 집어등을 환하게 켠 오징어배들로 도심인 듯 휘황했다. 그 위로 펼쳐진 하늘엔 별들이 총총했다.

간밤에 바람이 많이 불더니 이튿날 아침 기온이 뚝 떨어져 꽤 쌀쌀하다. 구룡포에서 호미곶을 돌아 포항으로 연결되는 925번 지방도로에서 체온을 올리기 위해 RPM을 한껏 높이자 입에서 김이 설설 나와 계절이 이제 빠르게 겨울로 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석병리, 대보리, 강사리 등 호미곶 동쪽 해안의 작은 어촌들은 짭조름한 오징어 냄새로 깨어나고 있었다. 요즘처럼 건조하고 볕이 좋은 날씨에는 생오징어를 널어 이틀 뒤면 마른 오징어가 된다고 한다. 다음 달 이맘 때쯤이면 덕장에 오징어 대신 과메기가 매달릴 것이다.

구룡포에서 포항까지는 31번 지방도를 타면 자전거로 한 시간이면 충분히 주파할 10km 남짓이지만 호미곶 끝 부분까지 온전히 에워 도는 925번 지방도를 탈 경우 40km. 지름길을 버리고 네 배나 먼 호미곶을 경유해야 하는가를 놓고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호미곶을 향하면서 펼쳐지는 기막힌 해안 풍경이 보상해주고도 남았다. 끝없이 밀려와 하얀 포말로 폭발하듯 장관을 이루는 파도, 야트막한 야산 언덕마다 지천으로 피어난 억새와 들국화가 시큰하게 가슴으로 들어온다.

마을을 끼고 도는 해안도로에서 갯바위에 충돌하는 파도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부서져 해안선일주 자전거 여행의 묘미는 절정을 이뤘다. 게다가 포항을 향하는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31번 도로를 이용하는 덕분에 호젓하기까지 해서 남해안을 벗어난 이후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로 꼽을만하다. 그래선지 포항에서 울산으로, 또는 울산에서 포항으로 달리는 자전거동호인 그룹들이 꽤 자주 보인다.

호미곶을 지나 영일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구간은 제법 땀을 빼게 하는 고갯길이 심심찮게 나타나 페달링 감(感)이 짭짤하다.

호미곶에서 제일 높은 한달비문재를 넘어 발산리, 흥환리, 마산리, 입암리를 거치며 고개를 한 구비 넘을 때마다 나타나는 그림 같은 갯마을의 꿈같은 풍경 속을 쾌속의 다운힐(down hill)로 내리꽂듯 달리며 우리는 환호했다.

글·사진|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timbersmith@naver.com

호미곶의 옛 이름 ‘장기곶’

호미곶(虎尾串)의 옛 이름은 장기곶( ). 일제강점기 때 일본식 표현인 갑(岬)을 적용해 장기갑으로 불리다가 1995년 다시 장기곶으로 복원된 뒤 2001년 12월부터는 호미곶이 공식 명칭이 되었다.

장기에서 기( )는 말갈기라는 뜻으로 이 곳의 지형을 말갈기가 휘날리는 형상으로 보았던 모양이다. 기 그러나 일제가 한반도를 유약한 토끼 형상으로 비유하고 장기곶을 토끼 꼬리로 간주한데 대한 반발로 조선의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가 ‘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秘錄)’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은 코, 이곳은 꼬리에 해당한다고 묘사한 것에 착안해 호미(虎尾)곶으로 개칭한 것이다.

구룡포 북쪽 10km 지점에서 만난 오징어덕장. 오징어 내음이 진동하는 가운데 덕장 주인이 오징어 말리는 과정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올해는 수온이 낮은 탓에 오징어 어획량은 줄고 값은 올랐다고.


서쪽 끝인 충남 태안의 파도리, 남쪽 끝인 전남 해남의 땅끝에 이어 남한의 육지에서 가장 동쪽으로 돌출한 부분이다. 국내 제2호 등대인 장기등대(1903년 12월)와 함께 국내 제1호 등대박물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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