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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전 거 /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5. 안면도∼광천 <하>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1. 10. 19.

 

5. 안면도∼광천 <하>

간재미 무침을 기대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는 허영만 화백. 날씨가 워낙 춥다보니 어부들의 조업도 어려워 생선, 조개, 굴 등 모든 해물값이 비쌌다.

영국의 등산학교 매뉴얼 겨울등반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발이 시리면 모자를 써라’. 발이 시리면 더 두꺼운 양말, 더 두꺼운 신발을 신는 게 상식일 텐데 엉뚱하게도 모자를?

하지만 이 얘기는 체온 보호의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꿰뚫은 지혜로운 지적이다. 사람은 체온의 대부분을 머리 쪽, 정확하게는 목 위에서 잃는다.

피부가 외기에 직접 노출되는 얼굴도 얼굴이거니와 목과 머리에는 혈관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 이 부분의 보온에 실패하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결국 하이포서미아(Hypothermia 저체온증)에 이르게 된다. 머리 쪽으로 빠져나가는 체온을 잡으면 몸 전체가 따뜻해지고 그 결과 발 시림도 완화된다는 의미.

1. 나그네는 길에서 멈추지 않는다. 집단가출 자전거 식객들이 북풍한설을 뚫고 가는 길에 눈보라가 치고 있다.
2.
미나리 등 야채와 새콤달콤 양념 고추장으로 버무려 맛을 낸 간재미 무침(오른쪽)과 찜은 서해안 지방의 겨울철 별미다. 간재미는 가오리 종류 중 상어가오리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차 한잔의 여유는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전국일주팀은 스토브와 그릇 등 간단한 취사도구를 갖고 다니므로 라이딩 중 쉴 때 따끈한 차를 끓여 마실 수 있다. 특히 스토브는 물을 끓이는 용도 외에 너무 추울 땐 비상 난로로도 활용됐다.


안면도 북상중 첫 낙오자 발생  
저체온증 위험에 멈출 순 없고
그때 발견한 시골 버스 정류장
이렇게 반가울 수가…

무조건 전진…집단가출 대원칙
손 녹이고 다시 ‘아스팔트 투혼’
마침내 도착한  꽃지 해수욕장
그림같은 풍경에 일제히 탄성


1월 15일, 안면도에서 맞닥뜨린 추위는 하이포서미아 정도가 아니라 동상(凍傷), 아니 동사(凍死)가 우려될 만큼 맹렬했다. 원산도를 돌아 영목항부터 안면도를 북상하며 비포장도로를 훑어나가다 구매항 부근에서 길을 잃고 야산과 해안절벽 길을 헤맬 때쯤 시작된 눈보라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중장리 중원가든의 뜨끈한 구들방에서 살조개칼국수를 먹은 뒤 땀이 나기에 모자를 벗고 맨머리에 헬멧을 썼다. 그런데 헬멧에 숭숭 뚫린 구멍으로 들어온 찬바람에 체온이 곤두박질치는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 서둘러 다시 모자를 꺼내 썼지만 때를 놓친 탓인지 한번 떨어진 체온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몸의 중심으로 한기가 찔러 들어오는 듯 엄습하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시리다 못해 떨어져나갈 듯 아프다.

추위에 약한 홍석민이 결국 라이딩을 포기, 집단가출 자전거 전국일주의 첫 낙오자가 됐다. 최연장자인 허영만 화백은 아직까지 페이스를 잃지 않고 꾸준히 페달링을 계속하고 있지만 계속 이런 상태라면 제2, 제3의 낙오자가 속출할 게 뻔했다.

뭔가 수를 내긴 내어야겠으나 사방을 둘러봐도 중장리와 방포 사이의 인적 끊긴 도로 주변엔 대피할 만한 민가가 눈에 띄질 않는다. 점점 거세져가는 눈보라에 사람도 얼고 자전거도 얼었지만 자전거 나그네들은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면 체온이 더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 집단가출팀 의지 꺾은 안면도의 매서운 추위

한동안 달리다보니 정찰을 위해 앞장섰던 김경민이 멀리 눈보라 속에서 손짓을 한다. 김경민이 찾아낸 것은 버스 정류장.

비록 한 쪽뿐이긴 하지만 바람을 막아줄 벽이 서있고 눈이 쏟아지는 하늘을 가려줄 지붕이 있는 시골 버스 정류장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배낭에서 휘발유 스토브를 꺼내 불을 붙였다. 15년이나 써온 낡은 스토브가 뿜어내는 파란 불꽃은 혹한을 뚫고 달려온 우리에게 위안이며 구원이었다.

옹기종기 모여 불을 쬐는데 손가락이 얼마나 꽁꽁 얼었던지 오징어를 굽듯 불꽃에 손을 직접 대도 뜨겁지가 않다. 눈보라치는 안면도의 이름 모를 버스정거장에서 타오르는 작은 불꽃을 가운데 두고 언 손을 녹이고 있자니 새삼 우리 처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뭐하는 거지? 이 추위 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우리밖에 없을 거야. 그치?”

허영만 대장이 콧물을 훌쩍이며 꺼낸 말에 아무도 대꾸하지 못한 것은 입이 얼어서가 아니었다. 모두들 같은 생각.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의 길 떠난 남자들은 말을 잊은 채 불꽃을 응시할 뿐이었다.

집단가출 자전거 전국일주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는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 ‘떠나기로 정해진 날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더우나 추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 여의치 않으면 끌고라도 무조건 전진한다’는 것. 이는 한반도 둘레길 자전거 일주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의미도 있었지만 전국일주 요트 항해에서 생긴 자신감에 기인한 바가 크다.

가랑잎 같은 무동력 돛단배를 타고 1년간 영해 외곽선을 항해하며 무수한 시련들을 함께 겪고 이겨낸 터여서 어지간한 어려움은 극복할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도움의 손길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망망대해에서 풍파를 헤쳐야 했던 항해와는 달리 자전거는 육로를 이용하므로 여차하면 위험으로부터 도망칠 곳이 널려있다.

자전거 여행은 항해에 비하면 속된 말로 ‘껌’. 하지만 수십년 만에 찾아온 기록적인 한파 속에서 가혹한 추위와 10m 앞이 보이지 않는 눈보라에 처절하게 당하고보니 세상에 거저 되는 일이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눈보라가 심해 라이딩 여건이 좋지 않으나 여기서 포기하고 길을 중도에서 끊어먹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게다가 홍석민 외에 항복 의사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 추위에서도 탄성 자아낸 꽃지 해변의 절경

스토브 불을 과감하게 끄고 버스 정류장을 떠나 다시 씩씩하게 자전거를 타고 바람 찬 길로 나섰다. 쉬는 동안 눈이 더 쌓여 미끄러웠으나 혹한 탓에 모든 일상이 멈춘 듯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어 77번 지방도로는 마치 호젓한 오솔길 같다.

맞바람이 워낙 세서 평소 같으면 공짜로 내려갈 내리막길에서도 힘겹게 페달링을 해야 했으므로 체력 소모는 컸지만 버스정류장의 불 쬐기로 체온을 회복한 덕분에 컨디션이 좋아져 눈보라를 뚫고 텅 빈 아스팔트길을 달리는 것도 꽤 낭만적이었다.

바람을 거슬러 시속 5km의 거북이걸음으로 곰비임비 달려 마침내 꽃지 해변. 탁 트인 바닷가로 나오자 바람 탓에 추위는 극에 달했다.

체감온도는 풍속이 초속 1m 빨라질 때마다 1도 하강한다. 현재 기온 영하 16도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풍속이 12m/s가 넘어 이론상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중반일 터이나 우리가 느끼는 체감온도는 영하 50도, 아니 영하 100도쯤은 족히 되는 것 같았다.

낭만의 겨울바다를 찾은 철없는(?) 커플들이 멋모르고 해변에 나왔다가 동태가 되어 도망치듯 떠나는 모습이 재미있다.

모진 추위 속에서도 꽃지 해변의 절경은 감탄스러웠다. 끝없이 펼쳐진 매끈한 백사장과 밀려들어 부서지는 파도. 옛날 이발소에 하나씩 걸려있었을 법한 그림 액자의 풍경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자전거를 해변으로 몰아 모래밭과 파도의 경계선을 전속력으로 달리며 우리는 평원을 말달리는 인디언처럼 괴성을 질러댔다. 괴성을 지른 이유는 해변을 달리는 호쾌함에 흥분한 때문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너무 추워서 고함이라도 지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괴성이라기보다는 비명인 셈이다.

안면도 꽃지해변 북쪽 끝에 홀로 솟은 해안 암봉쪽으로 연결된 돌밭길을 달리는 자전거 식객. 한 폭의 동양화처럼 신비롭고 고즈넉한 풍경이다. 돌 사이에 희끗하게 보이는 것은 바닷물이 결빙되어 형성된 짠 얼음이다.


강풍 뚫고 만난 바다… 북극이 따로없네

해변 라이딩에 자전거 마저 꽁꽁
살아남을 곳은 펜션 뿐이지만…
비박 고수 내기에 모두들 눈치만

홍대원“혹한은 천재지변”선언에
허대장“모두의 뜻이 정 그렇다면…”
집단가출 사상 첫 지붕아래 잠자리

해변 라이딩의 즐거움은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바닷물과 모래가 튀는 즉시 얼어붙어 자전거가 점점 얼음덩이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특히 디레일러 뭉치에 얼음이 단단히 끼자 변속이 불가능해졌고 신발과 바지도 온통 얼음 투성이. 얼음덩이가 된 자전거를 타고 꽃지 해변을 떠날 즈음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디서 야영을 해야 하나?

그동안은 논둑이 됐건, 밭고랑이 됐건, 혹은 선창가 방파제 위가 됐건 적당히 조용하고 바람이 덜 부는 곳을 고르면 됐으나 오늘은 상황이 사뭇 다르다. 밤이 되면 기온은 더 떨어질 것이므로 ‘내일 아침까지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영하 16도에 바닷가를 달리면 이렇게 된다. 체인이 장착된 오른쪽에 집중적으로 튄 물방울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특히 잘 알려진 안면도 소무 펜션의 장작 난로가에 둘러앉은 자전거 전국일주팀. 허영만 화백이 와인을 따고 있다. 왼쪽부터 송철웅, 허영만 화백, 김경민, 이진원.


# 혹한은 천재지변?… ‘잠은 무조건 비박’ 원칙 잠시 접고 펜션행

안면도는 전국에서 펜션이 많기로 유명한 곳. 아침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라면 펜션이다! 모두들 이심전심으로 이번만은 ‘자전거 여행 중 잠은 반드시 비박을 한다’는 원칙을 버리고 펜션 숙박을 원하는 눈치였지만 걸림돌이 있었다.

자전거 일주를 시작했을 때 홍석민과 이진원은 10만 원짜리 내기를 걸었었다. 내기의 내용은 ‘과연 허영만 화백이 추위에도 계속 비박 스타일의 야영을 고수할 것인가’라는 것.

집단가출에 처음 참가한 탓에 9월 강화도 투어 때부터 다른 이들이 땅바닥에 척척 매트리스를 깔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침낭에 쏙 들어가 잠을 자는 것을 보고 기가 질린 홍석민은 “지금은 가을이니까 그렇다 쳐도 추워지면 비박을 포기할 것”이라고 장담했고 이진원은 “10년 가까이 허화백 님과 집단가출을 함께 해왔는데 가출 중에는 한 겨울에도 절대 지붕 있는 데서 주무시지 않는다”고 맞선 것이다.

허화백도 이 추위 속에서 비박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펜션에서 따뜻하게 자고 싶었지만 자신의 거취를 두고 내기가 걸린 터라 짐짓 딴청이다.

“나야 뭐 상관없어. 이거보다 더 추울 때도 비박했는데 이쯤이야….”

허화백이 비박 불사 의지를 보이자 다급해진 것은 홍석민. 홍석민은 결국 ‘혹한은 천재지변이므로 이번에 펜션에서 자는 것은 내기의 승부와 전혀 관계가 없음’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고 허화백은 그제서야 “모두들 뜻이 정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라며 헛기침을 했다.

집단가출 역사상 처음으로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잠을 자기 위해 찾아간 곳은 안면읍 정당리 소무 펜션. 펜션에서는 활활 타오르는 장작난로와 와인이 기다리고 있었고 숙소의 구들장은 뜨끈했다. 한데서 침낭을 뒤집어쓰고 자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안락함.

하지만 우리는 밤늦게까지 전전반측 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야생에 길들여진 것일까? 비박 때는 침낭 지퍼만 올리면 곧바로 코를 골았는데 예정에 없던 호화로운 숙소는 적응이 되질 않는다.

그날 밤, 안면도에는 밤새 바람이 울부짖고 눈이 내렸다.

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timbersmith@naver.com
사진|이정식 스포츠 포토그래퍼 moto1444@hanmail.net

허화백 침낭 옆, 홍대원 바지가 왜?
입력 2011-01-26 07:00:00
 
 
간밤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비박 후 맞은 아침, 바깥에서 잔 허영만 대장의 침낭옆에 홍석민의 바지가 굴러다닌다.

자전거 식객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야영 중 술을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는다.

게다가 날씨가 이렇게 추울 때 야영을 하면 손수건 한장이라도 더 몸에 두르고 싶어지는데 겉바지를 벗어놓는다는 것도 정상적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침낭 옆 바지 사건은 바지의 주인인 홍석민도, 허화백도, 그 누구도 자초지종을 모르겠다니 불가사의다.

허화백은 “저 놈이 내게 무슨 짓을 한거냐? 몇달 후 내 배가 불러오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 했다.

<삽화=허영만>

[스포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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