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등산,캠핑,기타자료/캠핑,등산기사

캠핑장에서의 하룻밤… 남자의 놀이가 시작됐다-조선일보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0. 5. 8.

 

캠핑장에서의 하룻밤… 남자의 놀이가 시작됐다

  • 중도(춘천)=어수웅 기자
  • 입력 : 2010.05.07 03:05

춘천중도관광지오토캠핑 1박2일 체험

'캠핑폐인'(미래인 출간)을 쓴 캠핑 전문가 김산환씨는 "상사 앞에 쩔쩔매는 샐러리맨의 모습은 여기에 없다. 텐트를 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사내. 캠핑은 아빠로, 남편으로, 남자로 다시 태어나는 남자의 귀환"이라고 캠핑을 예찬한다. 하지만 식물화된 현대 도시 남성들에게 야영과 텐트 설치는 쉽지 않은 도전. 캠핑 초보자가 체험한 춘천 중도관광지에서의 오토캠핑 1박2일이다.

13시 30분: 캠핑요리-춘천닭갈비와 맛조개

캠핑 요리의 기본은 뭐니뭐니해도 현지 특산 재료로 준비하는 것. 하지만 춘천은 한우가 이름난 곳도 아니고, 주꾸미를 걷어 올릴 갯벌도 없다. 결국 타협은 춘천 닭갈비. 춘천이 고향인 상서우체국 조희봉 국장의 추천으로 소양강댐 길목의 통나무집 닭갈비(033-241-5999)에서 2인분을 포장한다. 친절하게도 야채와 닭고기를 별도로 꾸려준다. 다음은 시외버스터미널 앞의 대형마트로 출발. 뒷좌석에서 '딸랑딸랑' 소리가 단속적으로 들린다. 날렵한 2010년형 투싼ix 트렁크에 캠핑장비를 차곡차곡 쌓았지만,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던 듯. 범인은 코펠 세트다. 알루미늄 코펠과 프라이팬이 리드미컬하게 파열음을 내고 있다.

아웃도어의 으뜸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직화(直火)로 구워먹는 캠핑요리. 그릴 위의 요리가 익어갈 때면, 용서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wanfoto@chosun.com
해산물 쇼핑을 위해 들렀던 오후의 대형마트는 쟁탈전이 한창이다. 1마리 1000원이었던 오징어를 "지금부터 절반 가격에 팔겠다"고 안내방송하자 순식간에 아수라장. 스무 팩 남짓을 한꺼번에 잡은 아주머니와 협상 끝에 세 마리 포장한 한 팩을 얻는다. 갓난아이 얼굴만 한 키조개와 세일품목이었던 타이거새우, 참조개 등을 함께 꾸린다.

16시: 중도에 지은 작은 집 한 채

자동차를 가지고 중도 유원지에 들어가려면 별도의 선착장을 이용해야 한다. 근화동에 있는 중도주민선착장(010-2073-3175)이다. 차곡차곡 채우면 8대를 실을 수 있는 허름한 바지선으로 의암호를 10분 동안 가른다. 자동차 뱃삯은 왕복 2만원. '배에 차를 싣고 떠나는 로맨틱한 캠핑여행' 같지만, 실제로는 열차 화물칸에 올라탄 듯한 느낌이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매 시각 정각, 한 시간에 한 대 출발. 중도관광지는 남이섬을 연상시키는 깔끔하고 정돈된 유원지다. 캠핑장 이용료 하루 3000원, 관광지 입장권 1인 1300원, 주차비 하루 2000원을 별도로 받는다.

돔형 텐트는 설치 경험이 있지만, 리빙공간이 넓은 5인용 오토캠핑 텐트 설치는 처음. "초보자도 금방 칠 수 있을 만큼 쉽다"고 추천을 받았지만 코오롱스포츠(kolonsport.co.kr)의 텐트설치 시연(試演) 동영상을 눈여겨보지 않은 게 실수. 이전의 텐트와 달리, 신형 텐트는 폴(Pole)보다 바닥의 네 귀퉁이를 잇는 탈부착 벨트를 먼저 연결해야 팽팽해진다는 교훈을 깨닫기까지 1시간 30분이 걸렸다.

20시: 모닥불과 별 헤는 밤

초보 캠퍼에게 첫날은 실수와 준비 부족의 연속. 장작을 사기 위해 매점에 들렀더니 이미 문이 잠겨 있다. 오후 6시에 매점 문이 닫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 뒤의 일. 날은 이미 시베리아인데, 이 차가운 밤을 어찌 견딜 것인가. 옆 자리에 텐트 친 부부에게 내일 갚겠다는 서약을 하고 장작 한 꾸러미를 빌린다. 옆집, 아니 옆 텐트 사내는 "장작은 미리미리 준비. 좋기로는 가평의 잘타장작(031-581-0951)이 잘 탄다"며 초보 캠퍼를 훈계하는 중. 하지만 그 부부 역시 작년 12월에 야영을 시작한 1년차 캠퍼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겨우 한 시간 뒤의 일이었다.

①그릴 위의 타이거 새우와 키조개. ② 두 손으로 껴안아야 화력을 회복했던 대형 램프. /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wanfoto@chosun.com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휴대용 접이식 화로대를 펼쳤다. 미니 화로대는 인터넷에서 3만원부터 구입 가능하니 저렴한 편이고, 바닥으로 재가 떨어지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화재의 위험도 적은 편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대목에서 무능력한 초보 캠퍼는 숯받침대를 끼우지 않고 화로대를 조립하는 우를 범했다. 그러니 화력이 약할 수밖에. 설상가상으로 가스버너의 화력도 약해진다. 휴대용가스는 휘발유와 달리 추운 날씨에 취약하다는 것. 전날 이웃 동네 화천에는 눈이 왔다던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휴대용가스의 표면을 두 손으로 감싸니 다시 화력이 살아난다. 손이 얼음장으로 변할수록, 김치찌개가 펄펄 끓어오른다.

이제 대(大)반전의 시간. 화로대 그릴에는 오징어와 맛조개가 거의 익었다. 휘영청 뜬 춘천의 오렌지색 보름달에 감탄하며 한 점. 검푸른 하늘 캔버스에 점점이 박힌 춘천의 별을 보며 또 한 점. 옆집 부부가 은박지에 싼 고구마를 들고 모닥불을 찾는다. 숯불에 구운 고구마가 기막히다. "서울에서 어떻게 이런 별을 보겠느냐"며 목하(目下) 감탄 중. 도시였다면 허물기 힘들었을 서로에 대한 울타리를 모닥불 앞 소주 한 잔에 허문다. 동네 1000원숍에서 '득템'했다는 캠핑용 집게에 대한 자부심, 남들의 눈을 의식하다 보니 점점 비싼 캠핑 브랜드를 찾게 된다는 고백, 저렴하게는 2만원짜리 대여 텐트(탄탄레저:tantan114.com)로도 충분하다는 호기로운 반박, 내친김에 젊은 시절 잊을 수 없던 밤의 추억들, 그리스행 선박의 지붕 없는 갑판에서 맞았던 청춘시절 노숙의 추억까지, 온갖 삶의 이야기가 모닥불 위로 불타오른다. 중도의 밤벚꽃이 휘황하다.

06시: 박새가 지저귀는 아침

사선으로 파고드는 햇살과 경쾌하게 지저귀는 박새 소리가 텐트의 아침을 깨운다. 전날 밤 정수리까지 침낭 지퍼를 채웠었지만, 이 감당하지 못할 매서운 봄을 막기에는 역부족. 다시 불을 피우고 주전자에 커피 물을 올린다. 이왕 캠핑을 가려면 최소 2박 3일 일정은 잡아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날의 교훈. 하룻밤만을 위해 이 커다란 텐트를 펴고 접기엔 들인 시간이 애처롭고 처량하다. 베트남산(産) 커피의 아늑한 향이 얼었던 몸으로 스민다. 춘천의 아침이 청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