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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을 이대로 둘 것인가?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7. 1. 5.




국민연금을 이대로 둘 것인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이용당한 의혹… 공사화 계획 백지화 가능성

국민연금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부당하게 이용당한 ‘정황’이 점점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팀은 국민연금이 합병을 찬성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문형표 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긴급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의혹의 핵심에 있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출국이 금지됐다.

비리의혹과 함께 국민연금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재차 정권과 재벌의 사익에 희생되지 않게 하려면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정권은 그간 개선안으로 기금운용본부를 공사화해 독립시키는 방안을 제시해 왔지만 이번 사태로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는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가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는 자율규범인
‘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이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국민연금의 가입 여부가 불투명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안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제시 

국민연금은 2016년 10월 말 기준 기금 규모가 546조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기관투자가다.
기관투자가는 수익률로 운용 성과를 평가받는다.
1988년 국민연금제도가 처음 생긴 이래 국민연금의 누적 운용 수익금은 250조원으로 연평균 수익률은 5.7% 수준이다.
1999년 국민연금공단 산하 기금운용본부가 설립돼 자산 운용을 맡은 이후
2000~2014년 연평균 수익률은 6.3%로, 캐나다(6.1%)와 네덜란드(5.8%) 등 해외 주요 연기금보다 앞선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마이너스 수익률(-0.2%)을 내기도 했지만 해외 연기금은 손실이 -20%대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선방한 결과다.
기금운용본부가 대체로 국민연금을 잘 운영해 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팀이 12월 21일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공단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품을 들고 건물을 나서고 있다. / 이준헌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팀이 12월 21일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공단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품을 들고 건물을 나서고 있다. / 이준헌 기자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의 ‘숙원사업’ 중 하나는 기금운용본부를 투자전문공사로 만들어 외부로 독립시키는 것이었다.
본부를 공사화하면 국민연금 운용에 정부 간섭이나 입김이 배제돼 국민연금 투자 수익률이 더 좋아진다는 논리였다.
노동·시민단체 추천 대표가 참여하는 국민연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민간 전문위원들로 채운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독립시킨 공사를 어디 산하에 놓느냐를 놓고 복지부와 기재부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공공성 보장 대책 없이 본부를 독립시키면 국민연금이 정권과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할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2015년 초 보건사회연구원을 통해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 계획을 공개한 뒤 공청회를 잇달아 열었다.
그해 12월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직 시절부터 본부 공사화를 주장했던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앉혔다.
문 이사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장에서도 “공사화가 불가피하다”며 계획 이행방침을 밝혔다. 

기정사실화돼 가던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야
당과 시민단체가 제기했던 문제가 공사화에 착수하기도 전에 현실화된 것이다.
국민연금은 투자손실 우려가 있음을 알면서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했고,
그 결과 최근 주식평가액 기준으로 수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놀라운 건 이 같은 비리를 주도한 인물로 문형표 이사장이 지목됐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독립성 보장을 부르짖던 ‘연금 전문가’가 뒤로는 독립성을 가장 훼손하는 데 앞장섰던 셈이다.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를 추진해온 ‘세력’의 진면모가 이번 게이트를 통해 드러나면서
공사화 계획은 더 이상 명분도, 신뢰도 얻기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순실 게이트 사례만 봐도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 대신 시민사회단체가 제시하는 대안은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가들에 대한 행동원칙을 규정한 자율규범(가이드라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12월 28일 공개한 연구보고서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의의를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기업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계열사에 대한 편법지원 등 불투명한 경영을 견제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 같은 투자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때 행동 기준이 되는 건 스튜어드십 코드에서 정한 ‘원칙’이다. 

유럽연합(EU)과 일본, 영국 등 11개국은 각자 환경에 맞는 코드를 제정해 운영 중이다.
국내의 경우 기관투자가의 지위와 역할 등에 대한 기준이 전무한 상태라 코드 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015년 기업 주주총회 실적만 봐도 경영진의 제안 안건에 대해
자산운용사 중 52.5%, 보험사 중 92%가 아무런 반대 의사 표현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많은 개별 투자자들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기관투자가가 이처럼 ‘거수기’ 역할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015년 3월 민·관이 함께 참여한 ‘코드제정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코드 제정 논의가 진행됐다.
지난 8월부터는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등이 빠지고 한국지배구조원 등 민간 주도로 코드 제정이 추진돼 12월 19일 최종안이 공표됐다. 

국민연금은 코드 가입에 ‘미온적’ 

공표된 코드에서는 기관투자가의 명확한 투자정책 마련 및 공개, 투자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상충 문제 해결방안 마련 및
내용 공개 등의 7가지 ‘원칙’을 규정했다.
‘원칙’에서는 기관투자가가 의결권 행사와 수탁자 책임 이행활동에 관해 고객과 수익자에게 주기적으로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기관투자가의 책임과 권한을 강조하는 동시에 이를 ‘투명하게’ 공개토록 한 것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원칙’에 대한 기관투자가의 참여 여부와 이행과 관련된 동향을 주기적으로 조사해 점검하게 된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원칙’은 국내 관행과 문화, 자본시장의 발전 수준, 해외 스튜어드십 코드 및 국
내외 법제 동향 등을 고려해 내용을 점검하고 개선해나가기로 했다.

한국형 코드의 성패를 좌우할 관건은 국내 최대 규모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의 코드 가입 여부다.
제정된 코드의 내용과 취지를 보면 국민연금에 대해 ‘투명하고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
(2014년 국민연금 고객만족도 조사 결과)’는 국민들의 여론과도 일치하지만,
정작 국민연금은 코드 가입에 적극적이지 않다. 정권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집행 관련 의사결정 과정이 복지부, 기금운용위, 기금운용본부 등
여러 곳에 산재돼 있는 탓에 논의를 주도할 ‘주체’를 찾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 문제나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 문제 모두 공단이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라서
의견을 개진하기도 어렵고, 결론을 내릴 권한도 없다”며 “정부 차원에서 사안별 여러 변수나 영향 등을 고려해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최고 의사결정기구라는
기금운용위만 해도 기금운용본부의 실질적인 자금운용 전략 등을 전혀 들여다볼 수 없게 돼 있다”며
“기금운용위를 상시기구로 개편하고 가입자를 대표하는 위원들이 직접 연금 운용체계를 관찰하고 개입할 수 있게끔
투명한 운용구조부터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