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ㅣ도시 근교 명산종주] 수도권 남부7산 르포
- 서울 남쪽의 일곱 덩치와 격렬한 하룻밤을
광교산~백운산~바라산~청계산~우면산~관악산~삼성산 4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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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해 본 적 있는가. 몸과 마음을 쏟아 한 가지에 집중해 본 적 있는가. 있다면 몰입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알 것이다. 몰입은 온갖 잡념을 한순간 싹 사라지게 만드는 마술이다. 몰입을 경험한 이는 그게 고통스러운 위험을 띠고 있다 해도 다시 뛰어들길 원한다. 중독성이 있는 것이다.
수도권 남부7산 47km 종주는 위험한 블랙홀이다. 자기 자신에게 이어진 블랙홀이다. 산을 가는 것이지만 몰입은 산에 있지 않고 자기 안에 있다. 자기 안의 블랙홀에 빨려 드는 것이다. 밤을 새워 단내가 나도록 걸어 47km를 완주하는 미친 산꾼들은 저마다의 블랙홀을 가지고 있다.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하고 퍼질러 앉아 밥 먹을 여유는 없다. 당장 눈앞의 산을 빨리 걸어 넘겠다는 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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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끈하고 거대한 바위가 헐떡이는 산꾼을 맞는 관악산 정상 연주대. 서울 남부의 압도적인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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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에 빠지면 복잡하던 우리네 인생이 사라진다. 단순한 선 하나가 남는다. 산과 나만 남아 한 걸음 한 걸음에 몰두하고 있는 자신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몰입은 빠져듦의 미학이며 동시에 잊어버림의 미학이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수도권 남부7산을 한방에 완주하려는 미친 산꾼들은 늘 것이다.
경기대 서문 반딧불이화장실 앞에서 수도권 남부7산 종주가 시작된다. 쌀쌀한 아침 공기 속에서 만난 이는 수원드림팀 손옥종(57)씨와 류재열(56)씨다. 수원드림팀은 무박 장거리 속보종주를 즐기는 수원 산꾼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25~30km 당일산행을 보편적으로 하고 가장 즐겨 하는 남부7산 종주는 회원 평균 12시간에 마친다.
특징은 산행에서 일행을 기다려주지 않고 각자 산행하며, 따로 식사 시간 없이 틈틈이 행동식을 먹으며 산행한다. 남부7산 종주는 보편적인 장거리 코스이며 지리산 태극종주(90km) 정도는 무박2일에 해야 나름 준족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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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당능선의 험로구간을 3개월 전 관악구에서 철계단으로 정비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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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취재 산행임을 감안해 이틀에 나눠 가기로 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서울 서초구 우면동 우면산 입구까지 27km다. 오늘 안에 우면산까지 갈 수 있을까? 안개가 점점 짙어온다. 시작은 편하다. 서서히 몸을 풀기 좋은 완만한 숲길이다. 느티나무, 리기다소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밤나무가 빼곡하다. 조성한 지 오래되지 않은 대도시 산이라 나무는 다들 빼빼하다. 남부7산 역시 대간이나 정맥과 같은 종주라 주능선만 놓치지 않고 따르면 된다.
대도시 등산로답게 이정표가 많다. 깔끔하게 정비된 등산로는 걷기 좋지만 많은 사람이 다닌 탓에 토사유출로 나무의 뿌리 부위가 드러난 데가 있다. 흙길은 아스팔트처럼 딱딱하게 다져져 도심 속 공원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육산이라 해도 봉우리를 오를 때 숨이 차오르는 건 매한가지다. 형제봉 정상이 다가올수록 계단도 가팔라온다. 암릉 위가 정상이다. 나무와 흙이 섞인 바위라 완전히 트이진 않았다. 트여 있다 해도 안개가 풍경을 숨겨놓아 볼 건 없다.
비로봉 꼭대기는 큼지막한 정자가 있어 경치도 보고 숨 돌리기 좋은 터지만 27km 중 이제 5km 왔다. 물만 마시고 통과한다. “어이쿠” 하는 소리가 연신 울린다. 가파른 내리막에 땅이 얼어 있다. 빙판 위에 흙이 깔려 얼핏 보면 그냥 흙길 같지만 발을 디디면 쭉 미끄러진다. 돌아가면서 한 번씩 미끄러진다. 스틱으로 지지하거나 나무를 붙잡기도 하고 발에 꽉 힘을 줘 통과한다. 당연히 거북이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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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7km를 완주할 힘이 있는 자의 도전을 기다리는 관악산 관악문. 사당능선에서 연주대로 이어진 기암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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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마냥 벌떡 선 국사봉
일행이 저만치 앞서 가고 혼자만의 후미 산행을 이어간다. 등산로를 기억해 두려 사진도 찍고, GPS로 특정지점을 표시하고 메모도 해야 한다. 요즘은 월간 산 공식트위터로 실시간 산행중계를 하고 있어 간간이 멈춰서서 스마트폰을 두드린다. 동행한 장거리꾼들이 나름 천천히 간다곤 하지만 속도의 급이 틀리다.
좁은 안부에 벤치가 있는 사거리가 토끼재다. 왼쪽은 수원 상광교동에서, 오른쪽은 용인 신봉동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오름에 몸을 묻는다. 기온이 올랐다지만 능선길 반은 눈과 얼음의 땅이다. 빙판과 녹은 길이 번갈아 나오는 통에 아이젠을 계속 신고 가기 어렵다. 장거리 산행에서 눈이 없는 길을 계속해서 아이젠을 차고 가는 건 발에 피로도가 높아 피해야 한다. 신었다 벗었다 하기엔 시간이 없다. 아이젠을 포기하고 빙판길에선 눈 쌓인 바깥으로 피해가는 방법을 택한다.
류재열씨가 일정 거리마다 멈춰서 기자를 기다린다. 느린 사람이 빠른 사람을 쫓아가는 것도 어렵지만 빠른 사람이 느린 사람의 보조에 맞추는 건 더 어렵다. 광교산 정상, 반질반질한 표지석 뒤로 시설물과 송신탑이 몇 개나 솟은 산줄기가 눈에 든다. 가야 할 백운산 줄기다. 등에 철탑이 여럿 꽂혀 있어 대도시에서 산으로 사는 것도 참 어렵겠다 싶다. 여전히 시야는 뿌옇지만 아침보다 시야가 뚜렷하다. 작은 통나무집엔 노루목대피소라는 간판이 있다.
숨 돌리는 사람이 여럿 있는 억새밭 안부엔 벤치며 간이 화장실이 있다. 광교산 능선에 화장실이 셋 있는데 그중 하나다. 어수선하게 솟은 송신탑이며 군시설물을 옆으로 돌아간다. 오랜만에 기온이 오른 탓에 길은 온통 진흙탕이다. 나름 최선이라 여겨지는 곳을 디디며 균형 잡기에 급급하다. 진흙탕을 올라 만난 봉우리는 백운산(562.5m)이다. 너른 터와 벤치가 쉬었다 가라 유혹한다. 못 이기는 척 배낭을 놓고 간식을 풀자 귀여운 텃새들이 주변을 맴돈다. 먹을 걸 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류재열씨가 손으로 한 조각 떼어 치켜들자 곤줄박이가 다가와선 부리로 낚아채 간다. 영리한 생존방식 때문인지 한겨울에도 통통하게 살이 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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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수원 광교산 숲길. 편안한 육산이라 종주초반 몸을 풀기에 적당하다. 아래)백운산에서 바라산으로 이어진 산길. 남쪽 사면은 흙이나 진흙탕이고, 북사면은 빙판길인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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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이후 계속 고도를 버린다. 다시 고도를 올리려면 숨깨나 차겠지만 이것이 능선종주다. 자기 힘으로 아무리 높은 데까지 닿았어도 버리고 내려와야 새로운 산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가끔 사람이 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산이 사람 속을 보고 있구나 느낄 때가 있다. 눈과 얼음이 점령한 백운산 북사면을 한동안 내려서다 고분재부터 오르막이다. 눈길, 빙판길, 흙길, 진흙탕길이 골고루 인사치레를 하는 통에 다리 근육의 피로도가 거리에 비해 심하다.
바라산은 산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작은 봉우리다. 나무에 걸린 팻말이 아니었다면 봉우리인지 모르고 지나쳤을 만한 수준이다. 반면 류재열, 손옥종씨는 바라산이 좋다고 얘기한다. 남부7산 종주는 저녁 9~10시쯤에 시작하는데 여기서 보는 북서쪽 야경이 좋단다. 백운저수지와 인근의 카페 불빛이 곱다는 것이다. 다시 빙판 내리막이다. 남에서 북으로 가는 길이라 산을 오르는 남쪽 사면은 대개 질퍽하고 내려서는 북쪽 사면은 얼어 있다. 백운산 지나면서부터는 마주치는 등산객 없이 조용하다. 붓골재 사거리에서 한껏 움츠린 능선은 청계산으로 이어가기 위해 산을 일으켜 세운다.
턱까지 차오르는 오르막이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직 청계산은 멀기만 하다. 425m봉엔 숨가쁜 호흡을 알고 있었다는 듯 벤치가 있다. 우담산이라는 작은 팻말도 있다. 하오현 갈림길과 방송중계탑을 지나 하오고개로 내려선다. 얼어붙은 내리막에서 꽈당 미끄러진다. 통증보다 바로 앞에 솟은 시커먼 덩치가 더 신경 쓰인다. 15km를 걸었고 시간은 오후 2시, 적당히 지친 일행에게 시비라도 거는 듯 청계산 국사봉이 벌떡 섰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위 육교를 지나 다시 산 입구다. 청계산의 땅에 들어섰다. 텃세라도 부리듯 청계산은 시작부터 바싹 선 경사를 과제로 준다. 한 땀 한 땀 장인이 정성들여 바느질을 하듯 한 발 한 발 산을 딛고 일어선다. 오르막 끝에 거대한 골리앗이 덤벼보라고 위협한다. 철골 구조물인 송전탑이 골리앗마냥 포악해 뵌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걸음이 느려진다. 이런 깔딱고개에선 산에 빨려들 듯 몰입할 수 있어 좋다. 백지상태의 머리와 터질 듯 폭발하는 박동소리, 잊고 지내던 원초적인 나를 만나는 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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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우면산의 정상 역할을 하는 소망탑 전망대. 서초구 일대의 야경이 화려한 곳이다./아래)남부7산 최고봉인 관악산. 괄괄한 성격의 힘센 바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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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용인과 수원 경계를 지나고 성남과 의왕 경계다. 성남시계 종주 안내판이 곳곳에 서 있어 길찾기에 도움을 준다. 국사봉 꼭대기에서 숨을 가라앉히며 간식을 먹는다. 평일이라 막걸리를 파는 노점은 문을 닫았다. 청계산은 막걸리 산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곳곳에 장사치들이 자릴 잡고 있다. 육산이라 하지만 광교산에 비하면 바위도 많고 오르내림도 심하다. 강남의 산답게 마주치는 사람도 많고 장비나 옷차림도 화려한 색깔의 브랜드로 쫙 빼입은 이들이 여럿 보인다.
반듯한 나무데크에 4m 높이의 큰 표지석이 있는 이수봉. 자연스런 맛은 없으나 앉아 쉴 곳이 많아 숨돌리긴 제격이다. 군 시설물이 있는 청계산 정상을 우회해 사면으로 이어간다. 얼은 바위에 좁은 사면길이라 속도가 더디다. 돌아오른 망경대가 청계산 정상이다. 바위 절벽 위에 서니 안개가 짙어 선명한 풍경은 없다. 과천 서울대공원이 어렴풋이 보이고 서울 쪽은 희미하다. 뒤쪽의 응봉 줄기가 멋지다. 야생동물의 무늬처럼 지능선의 흘러내림과 눈의 여백이 야성적이다. 육산으로 이미지가 굳은 청계산이지만 바위 꼭대기라 압권의 경치로 사람을 홀린다. 실제 정상은 경치가 더 좋겠지만 망경대 뒤쪽은 군 시설물이 있어 여기까지가 경치의 마지노선이다.
매봉 부근 역시 장사치들의 자리에서 막걸리 냄새가 진동한다. 아마 토양이 막걸리에 절은 것일 테다. 대도시 산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기엔 지나치게 너저분하고 가게가 많다.
오후 5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매봉 이후로는 내리막이라 속도를 낸다. 원터골 갈림길을 지나자 마주치는 사람 없이 정적이다. 옥녀봉에 이르니 이제야 오늘 산행이 마무리 되어 간다는 게 실감이 난다. 걷는 데 이골이 난 다리는 의식하지 않아도 절로 움직인다. 검은 실루엣으로 선 나무들 너머 도시의 불빛이 화려하다. 어둠을 헤쳐 양재동에 닿으니 6시 43분이다. 오늘 산행을 끝내고픈 마음은 굴뚝같지만 우면산 입구까지 가야 내일 산행이 편하다는 류재열씨의 말에 따른다.
퇴근하는 양복쟁이들 속에 땀내 절은 등산복의 사내들이 지난다. 건물 사이를 지나 지름길로 우면산 입구에 닿았다. 수원드림팀이 안내하지 않았으면 길찾기가 산에서보다 더 힘들 뻔했다. 도심구간이라 해도 반드시 걸어간다는 게 장거리 마니아들의 철칙이다. 우면산 입구 태봉주유소에 닿으니 8시 11분이다. 27.3km를 걸었다.
양재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우면산 입구에 닿았다. 어제 온종일 걸은 사람들답지 않게 밝고 기운 넘친다. 남들이 일하는 평일에 산 타는 알싸한 재미 탓도 있다. 우면산은 남부7산에서 가장 낮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과 강남구 양재동에 걸쳐 있는 313m의 동네 뒷산이다. 정상은 군 시설물이 있어 소망탑이 정상을 대신한다. 부자동네의 뒷산답게 등산로와 이정표 정비가 잘 돼 있다. 운동기구와 전망대가 있는 소망탑에서 서울을 바라본다. 가까운 데는 헐벗은 나무가 말라비틀어진 낙엽을 매달고 있고 먼 데는 안개와 스모그로 뿌옇다. 여기선 야경이 볼 만하겠다.
군 시설물을 우회해 산을 이어간다. 약수터가 여럿 있고 정돈된 체육시설이 있다. 곳곳에 쓰러진 나무가 많은 건 지난해 태풍 곤파스의 피해로 인한 것이라고 류재열씨는 얘기한다. 그는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홀로 남부7산 종주에 나섰다가 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다친 줄도 모르고 힘겹게 완주한 그는 부상 이후 남부7산을 찾기는 처음이라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광교산이나 청계산에 비해 쉬운 우면산을 빠르게 통과해 강남순환도로 공사현장 옆으로 해서 사당역으로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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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관악산 사당능선의 바윗길을 오르는 손옥종(오른쪽), 류재열씨. 서울 남부의 빽빽한 빌딩숲과 산줄기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 아래)청계산 정상 망경대. 군 시설물이 있어 실제 정상을 대신한다. 암릉 위에서의 경치가 탁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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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산세의 남부7산 최고봉
관음사 입구에서 관악산에 든다. 관악체력센터를 지나자 바위산의 위용이 서서히 이빨을 드러낸다. 가야 할 산이 앞에 벌떡 섰다. 우회길도 있지만 하이라이트인 암릉 구간을 지나칠 순 없다. 어렵지 않은 바윗길이지만 언 곳이 있어 손발이 조심스럽다. 태극기가 꽂힌 바위에 올라 뒤돌아보니 지나온 산줄기와 아파트숲이 빼곡하다. 바윗길 난이도가 약간 높아지려는 찰나 철계단이다. 관악구에서 만든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새 길이다. 계단 위에는 데크로 널찍하게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거칠게 튀어나온 바위산 줄기와 각지게 솟은 도시의 빌딩숲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어제보다 맑아 시야가 트였다. 등산객도 훨씬 많다. 오름길 앞뒤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친구 누구가 무슨 수술을 받았다는 얘기, 어느 브랜드 등산복은 너무 저렴해 보인다느니, 누구 아들이 이번에 사고쳤다느니…, 귀담아듣지 않으려 해도 줄을 서서 오르니 자연스럽게 들린다. 어느새 속으로 맞장구를 치고 있는 스스로를 본다. 관악산은 수도권 시민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실로 서민적인 산이며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산세는 서민적이지 않다. 포효하는 호랑이 이빨마냥 날카롭고 위협적인 산세다. 걸어서 산을 오를 때 관악산의 위협적인 산세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사당에서 연주대로 이어진 능선이다. 하마바위며 마당바위 같은 기암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바윗길이다 보니 평일이라도 간간이 정체되는 곳도 있다. 아이젠을 차고 오른다. 언 데와 마른 데가 번갈아 나오지만 암릉구간이라 사소한 실수도 주의해야 하기에 아이젠을 벗을 수 없다.
관악문을 올라서니 쏟아질 듯 압도적인 바위산이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눈이 쌓여 산은 더 깊이 있고 수려해졌다. 오르막이 나오다 평평해지고 하는 식이라 호흡을 조절할 여유가 있다. 마지막 고비인 쇠사슬 구간을 트래버스해 서니 깨끗하고 큼직한 바위 꼭대기인 연주대다. 일망무제의 전망대로 부족한 것은 기상관측소 레이더와 송신철탑이 시야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일에도 등산객으로 북적이는, 찾는 사람들 수로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꼭대기다. 시설물을 우회해 학바위능선을 타고 삼성산으로 간다.
무너미고개를 지나 남부7산의 마지막 산인 삼성산을 오른다. 관악보다 스케일은 작지만 못지않은 바위들이 숙제처럼 기다린다. 손발을 다 써 바위가 내는 문제들을 성심껏 풀어 오른다. 트인 곳에서 뒤돌아서니 관악산의 힘센 산세가 불꽃처럼 타오른다. 바라만 봐도 기운이 충전되는 듯 기운 넘친다.
삼성산 정상은 군 시설물이 있어 우회한다. 거북바위에는 막걸리 파는 할머니가 낮술에 취해 단골 등산객들과 목청 높여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후부터는 펑퍼짐한 산세라 속도 내어 걷는다. 손옥종씨에게 스피드의 비결을 묻자 “남들은 산에 와서 운동한다는데 우린 산에 오기 위해 운동을 따로 한다”고 한다.
운동장바위를 지나고 삼거리에서 시흥 쪽 줄기로 갈아타자 얼른 종주를 마치고 싶은 맘이 든다. 한적한 숲길, 별다른 경치도 없으나 산은 쉽게 끝을 보여주지 않는다.
석수능선이 용의 꼬리처럼 좁고 길게 이어진다. 오른쪽으로는 서울 시흥동 아파트촌이 빼곡하고 왼쪽은 안양의 석수동 제2경인고속도로다. 남은 힘을 쏟아 부어 날머리인 석수역에 닿자 뉘엿뉘엿 하늘이 물들고 있다. 47km를 완주했다는 성취감에 악수를 나눈다. 서울 남쪽에 사는 일곱 산의 싱싱한 펄떡임이 심장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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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길잡이 Guide
강남과 경기 남부의 인기산을 연결한 올스타 종주
총 47km 바위산과 육산이 적당히 섞여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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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대 반딧불이화장실~(3.6km)~형제봉~(2.6km)~광교산~(4.5km)~바라산~(4.2km)~하오고개~(3.3km)~이수봉~(1.7km)~망경대~(2.5km)~옥녀봉~(2.7km)~트럭터미널~(2.2km)~우면산 입구 태봉주유소~(1.7km)~소망탑~(3.6km)~사당역 삼성아파트~(1.2km)~관음사 입구~(2.3km)~마당바위~(2km)~연주대~(2.4km)~무너미고개~(2.8km)~찬우물 약수터~(3.4km)~석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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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교산 정상. 왼쪽으로 철탑이 솟은 곳이 백운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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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이북에 ‘불수사도북’이 있다면 한강 이남에 ‘수도권 남부7산’이 있다. 산이름을 따 ‘광청우관삼’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으나 남부7산이 일반적이다. 남부7산은 ‘ㄱ’ 자 모양의 종주 코스다. 광교산~백운산~바라산~청계산~우면산~관악산~삼성산을 이으면 ㄱ 모양이 된다. 코스가 완벽하게 능선이 이어지는 건 아니다. 청계산에서 우면산을 이을 땐 도심을 지나고 물길도 지난다. 우면산에서 관악산을 이을 때도 도심을 잠깐 지난다. 총 47km다. 장거리산행에 익숙한 발 빠른 선수들은 12시간 정도면 넉넉하게 완주한다. 일반 등산인은 16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들머리는 삼성산 석수역이나 광교산 반딧불이화장실, 어딜 잡아도 상관없다. 보통 저녁에 출발해 다음날 해가 떠 있을 때 산행을 마친다. 그래서 산행은 대부분 야간산행이다. 주말 낮에 시도할 경우 등산인파가 많아 제 속도를 내기 어렵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별도의 식사는 준비하지 않는다. 행동식을 중간중간 먹으며 체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해야 한다. 행동식은 떡, 과일, 말린 과일, 초코바 등을 먹으며 가볍게 간다. 무게는 장거리 무박산행의 가장 큰 적이므로 줄인다. 도심의 산이므로 위급상황에는 1시간이면 탈출이 가능하다.
수원드림팀의 경우 사당역에 닿으면 아침 6~7시인데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고 관악산을 오른다. 일시 종주가 아닌 구간 종주의 경우 최대 4일에 나눠 걸을 수 있다. 광교산에서 올라 하오고개까지 1구간, 청계산 2구간, 우면산과 관악산 무너미고개 3구간, 삼성산 4구간이며 체력에 맞게 이틀이나 사흘에 나눠 걸을 수도 있다.
대도시 산답게 이정표가 있어 길찾기는 쉬운 편이나 곳곳에 암초처럼 놓치기 쉬운 곳들이 있다. 특히 도심구간을 지날 때 둘러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들머리인 반딧불이화장실은 경기대학교 서문 옆에 있다. 계단을 잠깐 오르면 바로 능선이며 산줄기따라 북쪽으로 간다는 큰 틀을 따르면 된다. 군데군데 군 시설물이나 송신탑이 있어 사면으로 우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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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교산 줄기와 청계산을 잇는 하오고개 육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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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 정상은 오른쪽으로 살짝 떨어져 있어 정상에 갔다가 다시 왔던 길을 60m 되돌아가서 다시 북쪽으로 간다. 하오현 갈림길에서는 왼쪽의 하우현성당 방향으로 가지 말고 오른쪽 하오고개로 가야 한다. 방송 송신탑이 있는 곳에서 왼쪽 계단을 내려가면 하오고개 육교다. 육교에서 왼쪽 길로 170m 가면 청계산 입구다.
청계산은 이정표가 많으므로 가야 할 봉우리와 목적지만 기억하고 있다면 길찾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매봉에서 옥녀봉으로 갈 때 오른편의 원터골로 하산하는 길이 능선처럼 보이는 곳이 몇 곳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옥녀봉에서 트럭터미널로 나오면 농협양곡유통센터를 지나 엘지전자와 코스트코가 있는 큰 도로에서 왼쪽의 횡단보도를 건넌다.
길 건너 골목으로 직진해서 설렁탕집이 나오면 골목으로 진행하다 도로가 나오면 왼쪽으로 꺾어 길을 따라간다. 교육문화회관에서 안으로 들어가 왼쪽의 골프연습장 사이로 직진하면 파란 통유리창이 있는 건물이 보이고 이 건물 왼쪽으로 들어가면 문화예술공원으로 이어진 철문이 나온다. 공원에 들면 직진하다 조각이 있는 곳에서 쪽문으로 나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에 SK태봉주유소가 있다.
주유소 왼편에 우면산 입구 계단이 보인다. 우면산도 이정표가 잘 돼 있으나 서초동으로 연결된 길 위주로 안내가 되어 있고 사당역으로 가는 길은 제대로 된 이정표가 거의 없으므로 독도에 주의해야 한다.
유점약수 지나 계단을 올라서면 공터가 있다. 여기서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가야 한다. 부대 정문에서 임도를 따라 가면 오른편 능선 산길이 나온다. 이후 남태령역 방향인 서쪽으로 능선을 타고 직진하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작은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강남순환도로 공사현장을 지나면 임도를 만나는데 여기서 송전탑 지나 왼편의 산길로 내려서면 철물점 같은 집으로 내려선다. 우성아파트와 삼성아파트 사이로 내려와 대로에서 횡단보도 건너 에쓰오일에서 오른쪽으로 가서 르메이에르 강남타운에서 왼쪽 길로 직진하면 관음사 입구다. 관음사 입구 실내 배드민턴장 있는 데서 산길로 들면 관악산이다.
관악산은 이정표가 많고 능선이 뚜렷한 편이다. 다만 연주대와 깔딱고개 지나서 연주암으로 내려가지 말고 학바위능선으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야 한다. 학바위능선 길은 뚜렷한 이정표가 없고 사람들이 다닌 길만 있으므로 독도에 주의해야 한다. 삼성산은 능선이 누운 채로 퍼져 있어 길찾기에 헷갈릴 수도 있다.
무너미고개에서 임도가 있는 데로 올라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가다 거북바위에서 다시 산으로 든다. 이후 장군능선을 따라 가다 민주동산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석수능선으로 간다. 이 능선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으므로 초행자는 주변 등산객들에게 물어 방향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석수능선은 계속 직진하다가 ‘석수역 500m’ 이정표에서 능선을 버리고 내려가면 산행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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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면산 들머리인 SK태봉주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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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들머리는 경기대 수원캠퍼스 반딧불이화장실이다. 수원역 4번 출구로 나와 13번과 13-3번 버스를 타고 ‘광교산 입구’에서 내리면 된다. 30분 정도 걸린다.
날머리인 삼성산 석수능선을 내려오면 덕수아파트가 있고 직진해서 큰 길로 가면 육교 건너 석수역이다. 우면산 입구 태봉주유소에서 구간을 나눌 경우 양재역 7번 출구 앞에서 18번 마을버스를 타고 ‘서울시품질시험소 한국교총’에서 하차하면 우면산 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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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당역 오뚜기기식당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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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일시 종주로 저녁에 출발해 완주할 경우 주력이 빠른 이는 아침에 사당역을 지나게 된다. 남부7산 종주에 익숙한 수원드림팀 회원들이 추천하는 단골집으로 오뚜기식당(02-521-7404)이 있다.
르메이에르 강남타운에서 관음사로 올라가는 길에 충북슈퍼가 있고 바로 옆이 식당이다. 간판이 없고 창문에 식당 글귀가 적혀 있다. 아침 6시30분부터 식사 가능하며 주메뉴는 백반(5,000원)이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오는 국이 다르다. 우면산 입구 태봉주유소 옆에도 맛집이 있다. 우면동 봉평메밀막국수(02-572-6465) 식당으로 만두와 비빔막국수(7,000원)가 별미다.
/ 글 신준범 기자ㅣ사진 김영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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