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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캠핑,기타자료/북한산 둘레길

서울 한양도성 걷기 ①] 조선 땅에 살며 순성(巡城) 한 번 안 할 수 있나?

by 시리우스 하우스 2012. 5. 4.

 

[발견이의 도보여행 | 서울 한양도성 걷기 ①] 조선 땅에 살며 순성(巡城) 한 번 안 할 수 있나?
  • 글·윤문기 (사)한국의 길과 문화 사무처장·발견이의 도보여행 운영자
18.6km 서울 한양도성 따라 걷기의 즐거움

서울 한양도성 걷기길이 한 바퀴 완전히 연결되었다. 서울 한양도성은 조선의 도읍지였던 한양을 에워싸고 있는 성곽으로 내사산(內四山)이라고 부르는 인왕산 338m, 북악산(백악산) 342m, 낙산 125m, 남산 262m의 능선을 따라 축성됐고, 그 길이는 장장 18.6km에 이른다. 이 서울 한양도성은 조선 왕조 때 꾸준하게 정비되고 보수돼 왔지만 일제강점기 때 도시계획이라는 구실로 여러 곳의 성벽이 헐렸다. 또 전차 노선이 생기면서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주변도 훼손됐다. 광복 후 한국전쟁과 무분별한 도시화의 여파로 성곽 훼손이 계속됐다. 그러다가 1975년부터 1982년까지 서울 한양도성 복원사업이 대규모로 이루어졌고 이후에도 혜화문과 광희문의 복원을 비롯해 부분적으로 보수 공사가 계속됐다. 2000년 이후 서울 한양도성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서울 한양도성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양도성 길을 다음과 같이 6회에 걸쳐 소개한다.


1 순성놀이의 즐거움
2 1구간(숭례문~정동거리~인왕산~창의문)
3 2구간(창의문~북악산~숙정문~혜화문)
4 3구간(혜화문~낙산~흥인지문~광희문)
5 4구간(광희문~남산~숭례문)
6 서울성곽 주변의 걷기명소들(부암동과 성북동)


▲ 서울성곽에서 600년 도성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북악산 구간).

서울성곽은 600년 그 자리를 지키고 솟아 멀고 모호했던 조선과 근현대사의 시간을 손에 잡힐 듯 눈앞에 끌어다 준다.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으로 시작된 조선의 개국역사와 한양을 수도로 낙점하며 서로의 의견이 갈려 고심했던 정도전과 무학대사의 활기 넘치는 이야기가 그 안에 오롯하다. 임진왜란, 인조반정, 중종반정, 병자호란 등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비사가 그 공간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풍수지리와 유교 교리에 맞춰 설계되고 지어진 서울성곽은 조선을 통째로 에워싼 화수분 같은 이야기 샘이나 다름없다.


파면 팔수록 더 진귀하고 신기한 역사이야기들이 성곽 돌덩이 사이와 사대문, 사소문 사이로 쏟아져 나왔고, 알면 알수록 내밀한 역사가 솟구쳐 걷는 이의 마음속으로 흘렀다. 도무지 얼마나 많은 역사, 비사, 야사가 그 안에 숨어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조선을 알게 되니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찾게 되고, 고려와 삼국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진다. 결국 순성하는 이들은 핍박과 설움의 시대를 거쳐 희망과 극복의 역사를 써내려간 내 나라 조국을 사랑하는 데까지 이르고 만다.


필자가 가끔 걷기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서울성곽을 걸으며 그곳에 담긴 이야기를 하면, 같이 걷던 중년의 회원들은 어느새 할아버지 무릎에 앉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되어 구슬 같은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이야기에 집중한다. 시간만 다를 뿐 같은 공간에서 벌어진 일들을 들으니 그때의 현장이 상상 속에서 그대로 살아나는 것이다. 그렇게 서울성곽을 걷는 일은 옛 것을 비추어 새 것을 알게 하는 힘으로 걷는 이들을 기쁘게 한다. 각 구간의 성돌이 품은 그 시간의 흔적들과 공간감은 오늘날에도 수백 년간 지속된 순성놀이로 그대로 살아나고 있다.


▲ 서울 성곽길 개념도

순성놀이는 수백 년간 내려온 전통 걷기문화
순성놀이란 서울성곽을 따라 도성 안팎을 걷는 놀이를 말한다. 실학자 유본예(1777~1842)의 ‘한경지략’과 유득공 (1748~1807)의 ‘경도잡지’를 통해 순성놀이가 오래된 한양의 풍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순성놀이를 ‘봄과 여름철에 성안 사람들이 짝을 지어 성 둘레를 따라 한 바퀴 돌면서 성 안팎의 경치를 구경하는 멋진 놀이’로 설명한다.


산악지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축성된 서울성곽을 걷다 보면 각 산의 정상 부근에서 눈부신 조망을 만난다. 또한 조선시대 도성의 5대 명승지로 알려진 삼청, 인왕, 백운, 청학, 쌍계 등을 거쳐 가게 되므로 진정한 산천유람의 의미를 주고도 남았을 것이다.


한양을 사방에서 둘러싼 내사산(인왕산~북악산~낙산~남산)의 자연적인 지형을 따라 축조된 한양도성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수도 방어형 산성이다. 이러한 희귀성과 역사성을 앞세워 서울시에서는 서울 한양도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 서울시청 내 여러 부서로 나누어진 서울성곽 관리기능을 새로운 전문팀으로 합쳐 좀 더 체계화된 관리를 하려 한다.


사적 10호로 지정된 서울 한양도성은 길이가 총 연장 18.6km에 달한다. 이 중 약 5km 구간이 완전 멸실되었고, 13km 구간이 온전히 남아 있거나 복원 중이어서 실감나는 성곽걷기를 돕는다. 끊임없는 난개발의 소용돌이로 점철된 서울의 근현대사를 비추어보자면 성곽의 7할 이상이 남았다는 것도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르겠다.


▲ 서울 도심을 에워싼 성곽에서 조선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인왕산 구간).

구간별 책임자를 성돌에 새긴 공사책임제 실시
태조 5년(1396)에 축성을 시작한 서울 한양도성은 49일 만에 공사를 마무리했다. 당시 평지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며 산악구간만 돌로 쌓았다. 하지만 워낙 공사기간이 짧았던 탓에 몇 개월 후 다시 2차 공사를 했으며, 이때 사대문과 사소문도 함께 완공됐다.


성곽을 지을 때는 전체를 97구간으로 나누어 북악산 정상부터 동쪽으로 돌아가며 천자문의 하늘 천(天)부터 조상할 조(弔)까지를 각각의 구간이름을 붙여 각 군현별로 공사책임을 맡겼다. 이때 공사를 담당했던 고을의 이름, 공사일자, 책임자의 이름 등을 성돌에 새겨 넣었는데, 지금도 곳곳에서 그러한 각자성석을 살펴볼 수 있다. 이후로 세종(1422) 때 흙으로 쌓은 구간을 모두 돌로 고쳐 쌓았으며, 숭례문을 완전히 해체하여 새롭게 지었다. 또한 숙종 30년(1704)에도 약 5년간에 걸쳐 대대적으로 고쳐 쌓았다. 지금도 성곽을 걷다 보면 태조, 세종, 숙종 당시의 축성기법이 혼합되어 있는 성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외의 왕조 때에도 치세가 편안할 때는 성벽을 고쳐쌓거나 문을 보수하고 고쳐짓는 일이 다반사였다. 비교적 근대에 고쳐진 것으로는 흥인지문(동대문)으로 고종 5년에 완전히 새롭게 보수했다. 이 때문에 흥인지문은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목조건축물로 꼽힌다.


서울 한양도성에는 풍수지리에 입각해 각 방향으로 네 개의 대문과 그 사이에 소문을 두었다. 각 방위별 대문의 이름은 남대문(숭례문·崇禮門), 서대문(돈의문·敦義門), 북대문(숙정문·肅淸門), 동대문(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유교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으로 꼽는 오륜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따서 이름을 지었으나 북대문인 숙정문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그 대신 숙종 때 축성된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의 홍지문(洪智門)에 ‘지’자가 들어갔고, 도성의 중심인 보신각(普信閣)에 ‘신’자를 넣어 이를 완성했다.


▲ 1 삼삼오오 성곽을 따라 걷는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인왕산 구간). 2 야간 경관조명을 해 놓아서 밤에 걷기에도 좋지만 남산 신당동 구간은 조명 설치가 잘못되어 불빛이 오히려 걷는 이들의 눈을 찌른다.

조선시대 전통을 따르려면 시계방향으로 순성
50리에 가까운 성곽을 한 바퀴 순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구한말과 지금이 많은 차이가 있다. 1916년에 있었던 순성놀이 기록에는 7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으나 지금은 11시간 정도 걸린다. 성곽이 끊어져 돌아가게 되고, 건널목을 건너는 등의 도심구간 통과 시간이 추가된 이유도 있을 것이고, 걷기가 주요 이동 방식이었던 당시에 비해 문화적, 인류학적으로 크게 달라졌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서울성곽 순성을 할 때는 도성의 정문인 숭례문을 출발점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어느 방향으로 순성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딱히 정론이 없지만 조선시대 전통을 따르면 시계방향으로 걷는 것이 맞고, 반대방향은 오르막 경사가 조금 낮지만 내리막 경사가 급하다. 하루에 전 구간을 걷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각 구간의 성벽과 성문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를 짚어가며 걷는 것이 좋음을 감안하면 보통 네 구간으로 끊어 걷는다.


첫 번째 구간은 숭례문~소의문~돈의문~인왕산~창의문을 거치며 5.3km를 걷는다. 서울 한양도성의 정문인 숭례문에서 출발하면 곧 걷게 되는 정동길에는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 월암근린공원을 지나 홍난파가옥~권율장군 집터를 지나면 인왕산 성곽구간을 만나고 이곳을 지나면 인조반정 당시 반란군이 난입한 창의문이 나온다.


▲ 1 성곽 여장의 총안으로 바라본 성북동(와룡공원 구간). 2 건물 축대로 사용된 성돌도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장충동 멸실 구간).

두 번째 구간은 창의문~북악산~숙정문~혜화문을 지나며 4.7km에 이른다. 창의문에서 북악산 정산인 백악마루까지는 꽤 급한 경사를 그리며 성곽이 놓여 순성구간 중 가장 힘이 든다. 다만 정상 백악마루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아름다움은 많은 사람들의 찬탄을 끌어낸다. 일부 구간인 창의문안내소에서 말바위안내소 사이는 신분증이 있어야 통행이 가능하다.


세 번째 구간은 혜화문~낙산~흥인지문~광희문을 거치는 3.2km이다. 네 개로 나누어진 순성놀이 구간 중 가장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곳으로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성곽을 따라 걷는 야간걷기의 명소라고 추천할 수 있다. 또한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면서 발견된 성곽과 이간수문을 복원해 색다른 정취를 전한다.


네 번째 구간은 광희문~남산~숭례문으로 5.4km에 달한다. 장충동 구간은 최근 신라호텔에서 점유하던 구간의 일부를 성곽 탐방로로 내놓음으로써 걷기가 한결 편하고 자연스러워졌다. 반면 국립극장 부근부터 시작되는 남산 구간은 계단이 많아 무릎이 편치 않은 순성꾼에게는 스틱 지참을 권장한다.


▲ 야간걷기에 가장 용이한 구간은 낙산이다. 경사도 완만하고 경관도 아름다워 처음 걷는 이들은 경탄을 금치 못한다.

순성놀이의 난이도를 보자면 내사산의 경우 등산 초급 수준이며, 걷기로는 일부구간을 제외하면 대체로 초중급에 해당한다. 운동화만 신어도 별 무리 없이 길을 걸을 수 있지만 인왕산과 북악산 구간은 비교적 경사가 있는 편이어서 옷차림이나 신발, 식수에 신경을 써야 한다.


다음 편에는 첫 번째 구간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서울성곽 각 부분 명칭과 축조기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사)한국의 길과 문화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서울 한양도성 걷기’ 소책자 PDF를 국, 영, 일문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또한 발견이의 도보여행 www.MyWalking.co.kr 에서 서울성곽 탐방로 및 전국의 걷기여행 코스 상세지도를 볼 수 있다.